최악의 짝꿍 - 니이미 난키치 아동문학상 수상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11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정문주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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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에게 짝꿍이 누가 되느냐는 건 그야말로 중차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소메야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악의 짝꿍이다. 소메야는 툭하면 침을 뱉고, 남의 답안지를 훔쳐 보며, "하루키 것 안 따라했어요."를 "하루치, 안 따라했쪄요."라고 발음하는 아이다. 성격도 나쁘고, 지저분하며, 나이값을 못하는 아이. 모든 면에서 우등생인 가오루가 소메야와 짝이 되자 아이들은 '가오루, 안 됐다!'라는 동정의 눈빛을 보낸다. 

이 이야기는 가오루와 소메야가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만지기만 해도 손이 썩는다는 전설의 아이와 짝이 된 가오루는 소메야가 싫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소메야를 밟거나 욕을 해대지 않을 뿐이다. 아마 그건, 가오루의 엘리트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일 터. 하지만 가오루에게도 비밀과 아픔이 있다. 그것이 소메야와 짝이 되고, 그 아이와 이것저것 함께 하게 되면서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칭찬받는 아이,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부모님에게조차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등생으로만 살아온 자신의 벽을 깨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날 이미 우등생이 아니게 되어 버린 가오루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가고, 소메야는 생전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혼자 발을 내디딘다. 먼 시골로 가오루를 찾아가는 것이다. 글을 잘 읽지도 못하고, 발음도 똑똑하지 못한 소메야가 가오루를 찾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우정이, 사랑이 그 일을 하게 했다. 

아마, 가오루와 소메야는 평생지기가 될 것이다. 힘들게, 자신을 버리고 얻은 친구는 평생을 가는 법이다. 최악의 짝꿍을 최상의 친구로 바꿔놓은 아이들이 대견하다. 어릴적 우리반에도 소메야 같은 아이가 있었고, 내가 그 짝꿍이 된 적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가오루처럼 짝꿍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고 그저 '베푼다'는 느낌으로 대했다. 그 아이와 나는 평생지기가 되지 못했다. 이 책으로 그 짝꿍을 떠올리며, 뭔가 가슴이 뭉근히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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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어떤 관청이 있었을까? - 나랏일 돌보던 곳, 관청 이야기,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역사 깊이 읽기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넓게 보기 1
박영규 지음, 구연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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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본격적인 분야사로 나온 책이다. '우리 역사 깊이 읽기' 시리즈의 첫 번째. 조선시대의 관청과 관리, 그들의 역할만을 다룬 분야사이다. 사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위한 역사서에 조금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통사 위주이거나 분야사라고 해도 매우 허술하여 제대로 된 분야샤 책이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선 반가웠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어찌나 꼼꼼하고 치밀한지 방대한 양의 지식과 그것을 쉽게 전달하는 간략한 문장 구성이 딱 좋았다. 

책의 서문에, 어른들께 여쭤 봐도 대부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관청, 관리들에 대한 정보를 담아 조선이라는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보여 주려 한다는 글이 쓰여 있는데 기획의도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어른들도 잘 몰랐던'이라는 말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사극을 보다가 아이가 궁금한 점이 생겨 물어보면 아예 모르거나 잘못 된 정보를 주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어른들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 그리 샅샅이 배우지 못했거니와 분야사는 더구나 그랬다. 그러니, 모른다고만 하거나 지식인에 물어보라는 말을 매번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제부터는 이 책을 함께 찾아보면 된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관청이 있었을까?>는 수많은 관청과 직책을 다루고 있고, 그렇다보니 한 기관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짧아 얼핏 사전과도 같은 느낌으로 읽힌다. 사전이라는 느낌은 두 가지 상반된 작용을 한다. 관련 항목을 망라하여 찾아보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과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단점이다. 이 책은 그 중간에 있지만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매우 실용적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도 맞고, 어른들에게도 효과적인 참고서가 되겠지만, 재미는 없다. 그럴 것이, 줄거리가 있는 책이 아니고, 끊어진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맥을 느끼며 읽겠으나 나만 해도 도저히 다 기억 못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좀 아팠다. 

하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이어 읽으려는 노력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읽은 것들이 머리에 남지 않았다고 하여 좌절하지 말고 한번 주욱 훑듯이 읽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기를 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고, 아이 손에 쥐어 주었다. "부담 없이 그냥 한 번 보아 두어라." 이렇게 말하면서. 이후 나올 분야사들도 갖춰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보다는 내가 더 흥미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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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 마음이 자라는 나무 17
알렉스 쿠소 지음, 아이완 그림, 윤정임 옮김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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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눈먼 소년. 미로는 '눈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친구들이 "미로."하고 부르면 "야, 눈나쁜 아이."라고 부르는 셈인데, 부르는 이나 받아들이는 이나 그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미로는 자기 눈이 멀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일로 자조적이 되거나 남에게 공격적이 되거나 하지 않으며, 친구들도 특별히 봐 준다는 분위기가 아니라 함께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도와준다. 한마디로 소년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호들갑이 없다. 심지어 동네의 팔뤼슈 할아버지는 잡아온 물고기의 내장을 발라내는 일을 미로에게 맡기거나 툭하면 "네 눈엔 내가 늙은 게 안 보이냐?"고 묻기까지 한다.  

팔뤼슈 할아버지는 미로에게 친구이자 자신의 먼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미로나 뤼카, 집시 소년 니노, 그리고 미로의 여자친구가 된 륀까지도 팔뤼슈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묶여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살아온 날과 현재뿐 아니라 살아갈 날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트인 마음. 그건 마치 바다와도 닮았다. 어부인 팔뤼슈 할아버지는 미로에게 눈멀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자괴감을 없애주고, 바다에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매한가지라는 걸 가르쳐준 인물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미로와 동행한 낚시에서 곰치를 잡으려다 손을 물린다. 그리고 병원에 실려간다. 미로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함께 느꼈다. 아마 곰치는 늙음, 가난, 외로움, 질병, 사고 따위를 상징하는 인생의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자신이 늙고 병들었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미로는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원래로 돌려놓고 싶어한다. 할아버지의 단 하나의 혈육인 누이동생들 찾아나서보기도 하고, 퇴원 후 양로원에 들어간 할아버지를 탈출시키려 친구들과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동네 이웃 할아버지를 마치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아이  미로.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과 상대를 아는 것에는 어느 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미로가 팔뤼슈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그 아이와 할아버지 사이에 어느 만큼의 장애물이 되었을까? 그 반대이다. 미로의 시각장애가 오히려 두 사람이 더욱 결속할 수 있는 접착제가 되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열네 살 미로의 첫 입맞춤이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어떤 장애를 받았을까? 아마 반대로 미로는 온몸으로 소녀의 입술을 느꼈을 것이다. 

미로는 자신이 보아야 할 것들을 다 본다. 몸의 눈에 방해받아 진실을 보지 못하기 십상인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 깊은 것들을 본다. 진실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안으로 느끼는 것이므로. 그래서 미로에게 눈멂은 장애가 아니라 타인과의 굵은 결속의 끈일 뿐이다. 하지만 미로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했듯이, 그 아이의 삶에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숱한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미로의 눈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우는 일이 그에게 많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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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대표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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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는 현대인들의 표상이다. 숨겨진 자아의 표출이다.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져들다가 문득 머리 한쪽으로 스쳐지나가는 벌레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벌레라고 하지만 그런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은 '버러지'이다.

기력이 쇠한 부모의 아들로서, 하나뿐인 착한 누이동생의 오빠로서 최선을 다해 가장의 역할을 해온 그레고르는 어느 날 새벽 출근을 앞두고 자기가 벌레로 변해버린 걸 깨닫는다. 그처럼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해온 가족에게, 혹은 전도유망한 세일즈맨으로서 더 빨리 달릴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게 자신이 사실은 그저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벌레 한 마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기라도 했다는 듯.

그는 벌레가 되어 주변을 관찰한다. 한때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었던 그들이 자신의 무엇을 사랑했는지, 왜 사랑했는지, 혹은 언제까지, 어느 부분을 사랑했는지를 관찰한다. 그것이 과연 사랑인지 아니면 그냥 필요인지. 필요에 의한 인간의 관계의 원죄는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쳐본다. 그는 결국 절망한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절망의 끝은 자기상실, 죽음이다. 

이 책은 <변신>으로 대표되는 카프카의 대표작품선이다. <프로메테우스> <포세이돈> 등의 마치 잠언과도 같은 짧은 이야기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나 <선고> 같은 본격적인 단편들이 실려 있어, 오로지 <변신>만 읽어왔던 이들에게 카프카에 대한 조그만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중 <포세이돈>은 이런 내용이다. 태초부터 바다의 신이라 정해진 포세이돈은 한 시도 쉬지 않고 깊은 바다 속에서 물에 관한 모든 계산을 한다. 그는 어떤 바다로도 나가보지 못했다. 바빠서. 하지만 물에 관한 일이 아닌 것은 생각만 해도 메스꺼워지는 그는, 세상이 몰락하기 직전에 세계의 바다를 둘러보는 것이 소망이다.

도대체 바다를 여행한 적 없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실존은 뭘까? 

이처럼 실존에 대한 깊은 고뇌, 세상을 비틀어 봄으로써 깊은 진실에 도달하는 그의 시니컬함, 통찰력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에게서 사형을 선고 받는 어이없는 남자의 불행을 다룬 <선고>도 마찬가지다. 사람살이의 가장 근본, 무언가 붙들고 지탱해야 할 뿌리는 도대체 무엇인 걸까? 

카프카의 글은 전혀 생뚱맞지 않다. 이처럼 기괴함에도 그의 작품은 판타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느낀다. 어떤 면으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귄터 그라스가 카프카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술적 사실주의. 정말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마치 내 이야기 같기도 하다. 또는 너의 이야기.

책 표지를 장식하는 카프카의 눈빛이 가슴에 아로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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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법칙 메타포 9
낸시 월린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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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라는 책이 먼저 나왔을 때, 한 구석이 뜨끔했었다. 내 모습에서 조금 과장되게 덧칠하면 그 책의 나쁜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음 때문이었다. 이 책도, 슬프게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매우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며, 실제로는 아이를 '생존' 그 자체로만 살아가게 하는 매우 불안정한 정신을 지닌 엄마.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는 아이, 적어도 아이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해본 부모는 의외로 많을 것이다. 다만 그게 지속적이냐, 한 번이냐, 혹은 간헐적이냐의 차이일 뿐. 

아마 자식을 위협하는 엄마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병자이므로. 그래서 자식이 어느날 자신을 떠나 버리거나, 도리어 위해를 가하거나, 밀쳐버리면 심한 배신감에 몸을 떤다. 그리고 지독한 증오를 품는다. 

매슈와 캘리와 에미는 어떻게 하든 엄마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간절힌 원하는 형제자매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로 생존해 나가므로, 결코 자신들 중 하나의 위험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다른 막내 에미에 대한 매슈와 캘리의 절박한 보호본능은 간절하고 질기다. 

그들이 어느 날 자신의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한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해내는 머독 아저씨를 보고 집착이라 할 정도로 매달리는 것, 역시 생존의 법칙이었다. 도와 줄 어른이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머독은 이 아이들 때문에 매우 불편한 입장에 빠지고, 자신이 '남의 집' 아이들 일에 개입하는 일로 고민한다.  

실제로 아래층에 사는 이모와 친아버지, 머독의 역할은 생각보다 미미하다. 그들은 아이들의 절박함을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으며, 그저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슬픈 일은, 그런 마지못한 원조의 손길이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그처럼 가혹하고 힘들다. 약자. 

끊임 없이 회피하다 맞닥뜨리는 삶의 진실이라. 

매우 고통스러운 책이고, 현실이고, 또한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통렬한 책이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하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난데없이 우산을 휘두르던, 제정신이 아닌 듯한 초로의 남자에게 무방비로 얻어맞던 젊은 여성이 떠올랐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근처의 누구도 그 남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남에게 원조의 손길을 내미는 일, 혹은 적어도 자신의 가정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되돌아보고, 삶의 방침을 재정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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