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카프카 대표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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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는 현대인들의 표상이다. 숨겨진 자아의 표출이다.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져들다가 문득 머리 한쪽으로 스쳐지나가는 벌레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벌레라고 하지만 그런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은 '버러지'이다.

기력이 쇠한 부모의 아들로서, 하나뿐인 착한 누이동생의 오빠로서 최선을 다해 가장의 역할을 해온 그레고르는 어느 날 새벽 출근을 앞두고 자기가 벌레로 변해버린 걸 깨닫는다. 그처럼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해온 가족에게, 혹은 전도유망한 세일즈맨으로서 더 빨리 달릴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게 자신이 사실은 그저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벌레 한 마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기라도 했다는 듯.

그는 벌레가 되어 주변을 관찰한다. 한때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었던 그들이 자신의 무엇을 사랑했는지, 왜 사랑했는지, 혹은 언제까지, 어느 부분을 사랑했는지를 관찰한다. 그것이 과연 사랑인지 아니면 그냥 필요인지. 필요에 의한 인간의 관계의 원죄는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쳐본다. 그는 결국 절망한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절망의 끝은 자기상실, 죽음이다. 

이 책은 <변신>으로 대표되는 카프카의 대표작품선이다. <프로메테우스> <포세이돈> 등의 마치 잠언과도 같은 짧은 이야기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나 <선고> 같은 본격적인 단편들이 실려 있어, 오로지 <변신>만 읽어왔던 이들에게 카프카에 대한 조그만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중 <포세이돈>은 이런 내용이다. 태초부터 바다의 신이라 정해진 포세이돈은 한 시도 쉬지 않고 깊은 바다 속에서 물에 관한 모든 계산을 한다. 그는 어떤 바다로도 나가보지 못했다. 바빠서. 하지만 물에 관한 일이 아닌 것은 생각만 해도 메스꺼워지는 그는, 세상이 몰락하기 직전에 세계의 바다를 둘러보는 것이 소망이다.

도대체 바다를 여행한 적 없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실존은 뭘까? 

이처럼 실존에 대한 깊은 고뇌, 세상을 비틀어 봄으로써 깊은 진실에 도달하는 그의 시니컬함, 통찰력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에게서 사형을 선고 받는 어이없는 남자의 불행을 다룬 <선고>도 마찬가지다. 사람살이의 가장 근본, 무언가 붙들고 지탱해야 할 뿌리는 도대체 무엇인 걸까? 

카프카의 글은 전혀 생뚱맞지 않다. 이처럼 기괴함에도 그의 작품은 판타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느낀다. 어떤 면으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귄터 그라스가 카프카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술적 사실주의. 정말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마치 내 이야기 같기도 하다. 또는 너의 이야기.

책 표지를 장식하는 카프카의 눈빛이 가슴에 아로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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