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랑 흑구랑 책읽는 가족 29
이금이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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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나왔던 이금이 작가의 첫 창작 동화집이 3번의 개정과 개정마다의 거듭되는 인쇄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김재홍 화백의 그림이 곁들여져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1991년이면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때에, 우리 두 딸이 모두 세상에 없었고, 나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다. 더구나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 1984년이라니 책 내용이 자칫하면 빛 바래기 십상이겠다는 걱정이 사실은 들었다. 그런데 작가는 머리말에서 '바래지 않는 이야기로 오래 남길......'이라고 썼다. 아마 그건 빛 바래지 않는 이야기임을 에둘러 전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빛 바래기는커녕 영롱히 빛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점을 십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마치, 긴 세월로 검증된 고전이나 명작을 읽을 때처럼 마음 깊숙한 데서 따뜻함이 차올라오는 그런 이야기들. 가슴을 쥐어뜯으며 슬퍼하거나 고개를 젖혀 가며 깔깔 웃게 하지 않지만, 잔잔한 미소나 혹은 눈썹 끝에 맺히는 작은 방울의 눈물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이야기들이다. 

어느 순간, 망토 입고서 아빠 손 잡고, 기차 타고 할머니댁을 찾아갔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올라왔고, 8살 우리 아빠가 가족을 찾아 맨발로 헤매 다녔다던 6.25의 어느 날이 선하게 떠올라왔고, 젊은 아빠가 몸을 던졌던 월남의 전장이 떠올라왔고, 엄마 손잡고 아빠가 내리는 열차를 바라보던 어린 내 모습이 다시 떠올라왔다.  

그랬다. 그땐 모든 것이 조금, 아주 조금은 더 맑았던 듯하다. 공기도, 나뭇잎도, 시냇물도, 콧물 범벅이 된 채로 놀던 우리들도. 순식간에 먼 시절로 나를 보냈다가 데려왔다가 하는 힘을 가진 책. 내게 너무 아름답게 다가온 이 책으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맑은 물 한 방울이 보태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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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고개 친구들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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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의 현실을 생각해 보려 하면 그것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가난함과 부유함, 도시와 농촌의 문제, 가정폭력 혹은 그 근원, 이혼, 남녀 성 차별, 권위와 폭력을 앞세운 학교 혹은 기가 눌린 학교 등등. 더 넓게는 지구상의 전쟁과 폭력, 비인간화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의 파괴, 즉 환경문제 등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 눌리고 찌들리는 우리 아이들이 있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을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래 두 번째 읽었다. 아이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긍정적 시선을 통해, 이 작가는 희망이라는 싹을 작품 속에 숨겨두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앞서 말한 문제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독자는 희망보다는 착찹함에 휩싸여 버리고 만다. 이슈화되어 언론에서 마구 떠들어대는 기간이 지나면 여전히 거기 있는데도 외면해 버리는 온갖 문제들이 이 책에서는 '여전함'이라는 팻말을 들고 웅숭거리며 서 있다. 

꽃섬고개 언저리에는 우리 집처럼 낡은 개량 한옥과 삼사 층짜리 다세대주택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고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며 시멘트 블록 집과 판잣집이 올막졸막 모여 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우리 동네를 빈민촌이라고 한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 주변이 다 우리 동네와 비슷비슷했는데 어느 날부터 학교 뒤로 병풍처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꽃섬고개를 반달 모양으로 둘러싼 아파트는 우리 동네로 지나던 바람 길을 막고, 햇볕을 가로막아 버렸다. 나는 아파트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아무리 아파트가 비싸다 해도 바람과 햇볕마저 독차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11쪽-

빈민촌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꽃섬고개. 비슷했던 풍경을 그나마 선을 긋듯이 갈라버리고 햇볕과 바람을 독차지하는 아파트. 거기 사는 사람들. 가난한 자들이 끝없이 변두리로 변두리로 내몰리는 모습은 산업혁명 이래 두드러지는, 지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무지 어찌 해 볼 수 없는 슬픈 모습이다. 대안이 뭘까, 대안이 뭘까. 

꽃섬고개에는 민주화투쟁을 하다 자신과의 모순을 견디지 못해 가족을 저버린 아버지의 딸, 선경이가 살고, 베트남 전쟁에서 마음에 병을 얻어 폭력적이 되어 버린, 결국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는 아버지의 아들, 한길이가 있고, 장애를 지닌 부모의 딸 영미가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오히려 누구보다 바르다. 성당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부방이 학원을 대체하는 그들의 의사소통의 터전이다.

그곳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자라난 아이들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 줄 줄 알며, 결국 더불어 사는 삶,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용감하게 소신을 지켜가는 삶을 선택한다. 선경이는 영미가 낳은 한선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기며 함께 키우고, 한길이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험난한 길로 들어선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작가가 이 책을 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001년 12월. 오태양이라는 한 청년이 오계수계를 받은 불교도로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공개 선언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그 기사를 본 나는 한동안 멍해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 평화의 길을 선택한 그 청년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바쳤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결단코 손에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면야 모르겠지만, 저들은 손에 총을 들고 있는데 우리만 맨손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면 나도 할말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진정성만은 인정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양심적이지 않은 병역거부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만큼, 양심적인 병역거부에 대한 유연한 생각들이 있어야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이 책의 한길이 같은 아이가 선택한 길이라면 말이다. 

갑자기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바보 이반이 왕이 되어 사는 나라로, 큰 악마의 사주를 받은 이웃 나라가 쳐들어오는데, 바보 나라의 국민들은 그저 울며, 원하는 건 다 줄 텐데 왜 사람을 죽이느냐고 할 뿐 무력 대응을 하지 않는다. 죽이고, 약탈하는 데 지친 이웃 나라 군인들은 대응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기가 질려 모두 총을 버리고 달아나고 만다. 너무 심한 이야기일까? 

한낱 독자일 뿐인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갖가지 문제들. 그러나 문제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많은 우리들에게 이 책은 환기가 되어 주고, 양심을 건드리며, 또한 건강한 꽃섬고개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런 아이들이 있는 꽃섬고개에는 세상 구원의 희망이 깃들어 있다. 어쨌든 참 예쁜 아이들. 아주 조금씩 내비치는 로맨스의 주인공들, 선경이와 한길이의 아름다운 결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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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동시집
김용택 동시집, 이혜란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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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고향 마을 임실의 덕치초등학교에서 40여 년간의 교단 생활을 마치며 이 책을 펴냈습니다.' 

이렇게 시인의 소개가 되어 있다. 그 앞에는 작품이나 수상경력이 적혀 있지만 이 대목만 자꾸 되뇌게 된다. 고향의 초등학교, 40여 년, 교단 생활, 책.
시인의 마음이 어떤 빛깔일지 잡혀온다고나 할까.
소개를 읽고 시를 들춰 읊조리면서, 나는 순식간에 고향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신작로라는 말이 낯설지 않던 시절. 그 시절의 내가 책 속에서, 시 속에서 걸어나오고 뛰어나오고 했다.

학교 버스  

구불구불
동네까지 가는 길은
심심하다.
길가에 느티나무도
심심하다.
길을 건너던 개구리도
심심하다.
길에 내리던 소낙비도
심심하다.
아이들이 지나가면 바라보던 먼 산도
심심하다.
논에서 일하던 할아버지도
심심하다.
타박타박 걷는
아이들 발소리가 사라진 길은
정말 심심하다. 

걸어 걸어 가는 학교길은 천지에 놀거리, 해찰할 거리, 볼거리이고 하염없이 붙들고 뭐라 뭐라 조잘대는 길인데, 버스로 부릉 하고 가버리면 그 모든 것은 그야말로 심심해진다. 아이들 발소리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옆모습이 보이는 듯한 시.
읽고 나도 책장에 꽂지 않고 자꾸 만지작거리는 김용택 동시집.
그분의 남은 40년도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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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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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책이다. 묘하다고 한 것은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의 느낌이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가 또 달라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첫 인상은 제목만 보고서 <원미동 사람들>과 닮은 내용일까 싶었다가, 첫 몇 장을 읽고서는 '오호~ 색달라, 색달라.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해.' 이랬다가, 다시 '이분이 신라 사람들을 희화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는 책이 매우 진지하다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희화화'가 맞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면 말이다. 특히 연작소설의 마지막 이야기 '천관사'에서 원효대사의 법회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희화화의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그의 법석이 마치 약장수를 방불케했기 때문이다. 혹세무민의 현장에 선 느낌. 

어느 분이 이 책의 평가가 갈린다는 귀띔을 해주셨는데, 이해가 됐다. 갈리기도 하겠구나 싶은.

하기는 "지증왕의 양물이 한 자 다섯 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굳이 왕권 강화에 대한 상징으로 볼 것이 무언인가, 신라의 성골들은 정말로 보통 사람 몇을 합친 것만한 거구였을 거라고 볼 만한 기록이 여럿 있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다산이나 풍요로움을 남녀의 교합과 연관지어 공개된 교합의식을 신성시하는 풍속이 있었으리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수많은 자료를 검토한 결과라고 하면 무조건 희화화로 몰아부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더구나 작가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일단 매우 대담한 작가의 상상력 아래 이 책은 신라, 즉 신국의 성골 황족들이 거대한 몸으로 교합의식을 통해 비와 바람을 부르고, 화랑과 낭주들이 호탕하며 질펀하게 삶을 즐기는 이야기들이 정말 새로운 문체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불교와 당나라로 대표되는 새로문 문물이 신국의 전통 종교와 생활방식과 맞닥뜨리며 일으키는 엄청난 회오리와 연관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성골들은 거대한 몸을 끌고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성골이 아니었던 김춘추는 성골 황족의 마지막 옷자락을 붙들고 기어이 쓰러져 가며, 절과 신궁이 한 장소에서 다투다 결국 기복이나 우리 특유의 신명 또는 눈물어린 정서와 결합한 독특한 불교만이 남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가는 과정이 거대한 물결처럼 들썩인다.  

어쩌면, 신라에 성골의 자취가 사라지고, 이 나라가 더이상 신국이 아닐 때 신라는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우리 옛 이야기가 아니고 근대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상하이나 사막에 급속도로 세워진 도시 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한 것같은 소설. 그러나 문체는 얼마나 또 예스러우면서 빠른지. 아무튼 독자를 새로운 경지로 이끄는 것만은 틀림없다. 아마 심윤경 작가에게 익숙해지기란, 소설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힘들지 않을까 싶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연작 중 세 번째 이야기 '변신'에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선덕황제를 보고 백성들이 뭐라 표현할 말이 없고 그저 우러르는 마음이 복받쳐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다는데 우러를 것까지는 아니지만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는 면에서 이 책은 '이상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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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공부 못해 창비아동문고 244
은이정 지음, 정소영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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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그래."라는 말을 나는 무척 싫어한다. 누가 이 말을 하면 그를 심히 마뜩찮게 보며,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적어도 내 아이 입에서는 그 말이 안나오기를 바랐다. 이처럼 책임성 없고, 되는 대로 살겠다는 똥배짱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파렴치한 말이 어디 있나,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이 책은 그래서 내게 충격이었다. '<난 원래 공부 못해>라고? 누군 태어날 때부터 공부 잘하나? 열심히 공부해야 공부를 잘하지?' 이런 생각부터 확 들었다.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면 덩달아 "그 봐. 공부 못하면 공부 안해도 되잖아."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은 걱정까지 되었다. 

문제의 원래 공부 못하는 아이가 누굴까 하고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바로 찬이였다. 찬이는 산기슭에서 할아버지와 살며 흑염소, 토끼를 키워 식당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 비록 어쩔 수 없이 식당에다 키우던 동물을 먹을거리로 팔기는 해도 찬이는 무척 마음이 따뜻하고, 동물을 사랑한다. 공부는 못해도 동물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이며, 동물을 돌보는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의욕적인 선생님이 찬이네 학교에 부임해온다. 젊은 여자 선생님(멋진 연희 샘)은 그야말로 좋은 뜻으로 아이들의 학업 향상 프로젝트를 실시하지만, 아이들은 힘들어 하고 특히 찬이는 전혀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급기야 찬이와 찬이 친구 진경이는 찬이가 "원래 공부 못한다."고 선생님께 이야기한다. 

착한 연희 샘도 차츰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골 아이들이 미처 누리지 못하는 공부 기회나 학업 향상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을 반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 섭섭하고 안타까워서다. 하지만 어느새 오기까지 생겨버린 연희 샘의 노력은 점점 더 아이들을 지치게 하고, 찬이는 그처럼 좋아하던 선생님에게서 등을 돌린다.

이 이야기는 물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선생님이 찬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아이들의 공부도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물론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젊었던 시절, 정책도 사회도 불도저 식이어야만 했던 시절엔 '원래 그래.'라는 말은 그야말로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찬이가 꼭 공부를 통해 행복을 성취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는, 그런 생각. 

누구나 행복하자고 살아간다. 공부가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런 공부는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 산골의 찬이에게, 공부를 잘 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성과 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그야말로 헛수고이며 낭비일 수 있다. 인간은 천차만별이다. 남이 잘 하는 걸 내가 잘하란 법은 없다. 공부 잘 못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제로 들이미는 건 참 못할 짓일 수 있다. 

오늘, 이 책으로 공부만 들먹이지 않는 그런 어머니로서의 삶을 다시 한번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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