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들의 얼굴페인팅처럼 밝고 활기차다. 저자 윤미나는 번역 일을 하며 강원도 산간에서 생활하다가 ‘허기를 채우려고’ 동유럽의 삼국을 여자동행 한 명과 발로 누볐다 ‘여행지에서는 그 지긋지긋하던 삶이 나를 도발한다’면서.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는 곳, 바로 동유럽이 아닐까? 저자는, 체코에서는 프라하, 크로아티아에서는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 슬로베니아에서는 류블라냐와 블레드를 돌아다니며 독자의 부러움을 끌어낸다. 인터넷에도 다 나와있는 지도 대신에 다소 흐릿하긴 해도 직접 보면 분명 아름다웠을 사진을 함께 실었다. 장소와 사람에 대한 감상을 대부분이었어도, 문득문득 선명하게 생에 대한 시선이 잡혀온다. ‘체코-프라하, 구시가지 안에서는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걸으면서 줌인 해 들어가는 세계는 모든 것이 더 크고 진하게 개인적으로 보인다’, ‘크로아티아-두브로니크가 호기심 많고 팔팔한 처자라면 베네치아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파이다.’ 크로아티아 항구의 푸른 야경을 보며’자신의 기지를 과신한 탓에 사이렌의 존재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어져버린 오디세우스의 냉혹한 도취와 몰입을 보고 속수무책으로 말려든 것이라고, 사랑에 빠진 자는 목소리를 뺏겨버린다.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사랑의 대상이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슬프게 말하기도 한다. 번역작가다운 유머도 살아있다, ‘물론 돼지입장에서 자신의 발을 우적우적 먹는 건 괜찮고 무릎은 좀 미안하다는 식의 태도는 심히 괘씸할 것이다(프라하의 유명식당 바비큐를 먹으며).’ 여행을 떠나게 된 동기는 잘 잡히지 않지만 느려터진 봄을 기다리다 지친 독자들에게 동유럽 한 켠을 누빈 한국 처녀의 여행기가 칼칼한 굴라쉬처럼 개운하게 적셔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