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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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울음이 한발 늦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것뿐’일지라도

우리는 이 마음을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어제 자 뉴스에서 ‘신생아 변기에 넣어 숨지게 한 20대… 불로 사체 태우려고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속상한 것은 검찰이 “피고인들이 아직 어리고 전과가 없다”며 A씨에게 징역 5년과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B씨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체를 의도적으로 유기하려든 이 파렴치한 이들에게 내릴 수 있는 형량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참으로 관대한 세상이다. 무슨 말로 이 작은 새를 위로할 수 있을까. 제페토 시인의 시 한 편으로 이 가여운 생과의 이별을 애도해볼 뿐이다.

 

 

 

먼 곳에서 날아와

이승에 발끝 적시고 날아간 새.

 

 

다시 오는 날에

세상이 있을지 모르겠다.

 

 

남아나지 않는

인연이 섧다.

 

 

/ <작은 새> 25p

 

 

 

 

소풍 전날 밤 같은 시간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

 

 

 

   『우리는 미화되었다』는 시 형식의 댓글을 통해 세상의 많은 사연과 소통하는 댓글 시인 제페토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는 코로나19, 이산가족 상봉, 끝나지 않은 5.18의 진상 같은 굵직한 이슈들 사이로 백남기 농민의 죽음, 살인적인 업무와 모욕에 치여 세상을 등진 아파트 경비원, 동물 학대 같이 마음이 흔들리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댓글 창을 열어 글을 쓰곤 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댓글의 순기능과 부작용을 오래 지켜봐온 그는 ‘댓글은 손쉬운 유희가 아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목소리’임을 통감하며 조심스럽되 때로는 날카롭게 오늘을 시화한다. 특히 그의 시 속에는 여리고, 힘이 없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시선과 위로가 담겨 있다. ‘이놈의 세상 만날 그대로’라고 한탄하면서 비록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울음이 한발 늦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것뿐’일지라도 ‘산다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희망을 넌지시 건넨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지다가도 이내 나를 둘러싼 혹은 내가 감싸 안아야 할 자리들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게 된다.

 

 

껍질이 있는 것은 내부가 있다.

벗겨지면 아플 수밖에.

 

 

피가 배어나는 몸으로는

천사의 포옹도 두려울 터

 

 

함부로 다가가지 않을 때

비로소 개인의 영토는 보전된다.

 

 

국경선을 넘지 말 것.

경계병을 오판하지 말 것.

 

 

그녀는 지난날 총상을 입은 적 있어

지금껏 잠 못 이룰뿐더러

다쳐본 이의 무기란

전에 없이 사나운 법이니까.

 

 

/ <서리> 53p

 

 

 

 

 

 

   최근 개그맨 박지선 씨가 세상을 떠났다. 화장을 하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피부질환의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혹여 이 때문에 악성 댓글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그녀를 표적삼아 무자비한 촉수를 드리운 활자 괴물들에 그간 난도질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뒤늦게 염려해본다. 마찬가지로 2019년 10월 14일, 설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설리는 사망 8일 전에 SNS 라이브를 통해 “욕하는 건 싫다. 이런 데 문자로 남는다는 게. 그 사람의 감정이 안 보이니까 조금 무섭다. 따뜻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제페토 시인은 <야수들>을 통해 ‘짐승에게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사람을 다치게 한다’며 시를 띄운다. 그리고 그는 의심한다. 저들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을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미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본다.

 

 

 

짐승에게 있는 것이

우리에게도 있어

사람을 다치게 한다.

 

 

그는 달아나는 표적이었다.

옅은 미소만 비쳐도

몰려가 목을 물고

발톱을 찔러 넣지 않았던가.

 

 

우리의 형상은 신뢰할 만한가?

나는 의심한다.

앞발과 주둥이에 피 마를 날 없는 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슬프다.

우리는 미화되었다.

 

 

/ <야수들> 105p

 

 

 

바깥세상은 조련사보다 무섭고

나는 도망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길들여진다는 건 그래서 더러운 거야.

 

 

작은 꽃을 보았지.

이름 모를 나무와 정갈한 잎사귀와

아, 바깥 하늘엔 쇠창살이 없더군.

 

 

사람들이 온다. 불길한 물건을 들고 있다.

꼭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면 견디어낼 수 있을까.

 

 

곧 알게 되겠지.

 

 

/ <외출> 중에서 141p

 

 

 

 

 

 

   제페토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자연이 품고 있는 기꺼운 친절에 참 감사하게 된다. ‘봄부터 피어나 대지를 뒤덮는 저 꽃들이 실은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겨울 낙오한 작은 목숨들에게 바치는 조화가 아닐까(<봄의 도리>)’ 지나고 쓰러진 생명들을 도닥이고, ‘사는 맛을 알지 못해 울기만 하는 당신을 위해 당도 높은 기쁨으로 속을 채워두고 싶다’고 고백하는 지리산 산청의 곶감과 백수의 처지를 위로하며 ‘온종일 맞아도 맷집 좋은 나는 너를 떠나지 않겠다(<전봇대>)’고 말하는 저 전봇대에게서도 온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언어가 아닐까. 댓글이라는 공간에 이처럼 다정한 언어를 불어넣는 시인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그렇게 꾹꾹 마음으로 눌러쓴 그의 글귀가 모두에게 따뜻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부디 세상의 슬픈 사연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본다.

 

 

 

이 도서는 ‘수오서재’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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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 미쳤지, 내가 퇴사를 왜 해서!
장예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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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장예원이 전하는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

있는 그대로의 나대로, 진짜 행복을 좇아가는 맑고 아름다운 청년의 이야기!

 

 

 

   주말 아침, SBS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을 시청하고 있는데 MC인 장예원 아나운서가 하차 소식을 전해왔다. 오랫동안 <TV 동물농장>을 시청해온 애청자로서 그녀의 눈물에 덩달아 나까지 울컥해졌다. 비록 그녀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무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나보다. 그런데 얼마 뒤, tvN에서 새롭게 방영하기 시작한 <세 얼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데다 시청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라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중심을 잡고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이 그렇겠지만,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꿈을 좇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도전이 새삼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한 권의 에세이로 독자들에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대로, 진짜 행복을 좇아가는 맑고 아름다운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서.

 

 

 

그래도 나 꽤 잘 살고 있는 거겠지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는 SBS 간판 아나운서라 불리던 아나운서 장예원이 아니라 8년 차 직장인으로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이에 따른 여러 고민들, 그러는 사이에 잊고 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첫 장에서부터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좇아온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게 되면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방송 일을 시작했지만 대중의 사랑과 관심만큼 비례하는 악플들, 반짝 주목받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될까 봐 두려운 마음, 시청자가 기대하는 모습과 실제 성격의 괴리감 사이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듯했다고 고백한다. 그건 방송에 대한 열정과는 다른 문제였다. 때문에 그녀는 매번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인다. 보이는 삶에 젖어들기보다, 나를 위해 살아가기를.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진짜 행복을 좇으려고 노력하기를. 남의 시선에 사로잡히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내기를. 물론 그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으며 퇴근한 뒤에는 친구와 맥주 한잔으로 고민을 나누는 그 작은 것들이 있기에 ‘그래도 나 꽤 잘 살고 있는 거겠지’ 하고 위로해본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고 소소한 일상에서나마 삶의 행복을 찾아나가던 그녀는 문득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지금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불행한 건 아니지만,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어졌다. “인생은 유한한 여정이기에 현재를 만끽해야 한다는 것, 성공, 명예, 돈보다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미나 작가의 책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에서 읽은 이 구절이 그녀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른이라는 나이, 안정된 직장, 부모님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닌, 때로는 조금 불안정하더라도 거기서 오는 긴장감을 즐겨보는 것.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보자고 말이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나를 자극하는 영감을 찾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보려는 도전 정신.

망설이지 마요.

시간이 없으니까. / 148p

 

 

새로운 세상에 가보고 싶다면

지금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아야지.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다니지 않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너는 행복한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행복할 건지’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사원증이 거치적거린다면 놓으면 될 뿐.

중요한 건,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너를 미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해.

그걸 찾는 과정이 인생이야. / 185p

 

 

 

   원하는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재수를 감행하고, 자기소개서 첨삭을 부탁하기 위해 교수님을 수십 번 찾아가고, 뉴스에 나오는 이메일 주소를 보고 같은 학교 출신 아나운서 선배에게 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할 만큼 열심이었던 시간들. 그렇게 원하는 꿈을 얻었지만 이에 따르는 여러 가지 회의와 고민들. 어쩌면 그건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을 갉아내는 줄도 몰랐던 우리의 마음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돌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몸의 한계는 있어도 마음의 한계는 없다고. 너의 가능성은 많아.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지금의 모습이 아닌 세월이 흘러 흘러간 뒤의 모습도 그리면서 살아.’ 그녀가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던 메일의 한 글귀가 내 마음까지 도닥인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 마음이 아프다고 솔직히 말하는 데도 이렇게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빙판에 외롭게 서 있던 그녀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 것처럼, 이제는 나도 괜찮은 척을 그만두기로 했다. 튼튼한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나는, 또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 54p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 최우식이 말한다. 미술학원 다닐 때 물감이 아까워서 조금씩 썼더니, 중간에 반도 못 쓰고 버렸다고. 마음이란 물감과 같아서, 아끼다간 굳어버린다고. 쓸 수 있을 때 마음껏 써봐야지. 이제는 아끼지 않기로 했다. / 119p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내 앞에 펼쳐진 긴 레이스에서 지치지 않도록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꾸준히 달려 나가고 싶다. 지금 당장 앞날을 계획하지 않아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나를 믿는다!” 고. 아직도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불안해하며 어른이라는 삶의 무게에 적응하느라 버겁지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대로 나를 위해 쓰이는 삶을 살아보기로 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좀 덜 무거워지겠지, 좀 힘들어도 더 좋은 것들이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 금세 찾아올 거라고 믿어보는 거다.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는 그런 따뜻한 상상을 하게 한다.

 

 

 

오로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람들. 그들이 동물권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제도가 바뀌고,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고는 스튜디오에서 온 마음을 다해 전달하는 일뿐. 그들과 함께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 일조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 40p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전형의 공통점은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하는 다양한 질문을 하나로 묶어보면 결국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답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매력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뽑아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 79p

 

 

 

   이 외에도 책에는 방송국에서 겪게 되는 여러 일화들, 동생과 나눈 따뜻하면서 애틋한 시간들, 연애에 대한 관점들 등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어쩐지 친한 친구나 동생이 하는 얘기처럼 편안하게 읽힌다. 덕분에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녀를 나도 응원하게 된다. 내가 그녀의 책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만큼, 그녀도 독자들로부터 더 큰 응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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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알아두면 시리즈 2
디아나 헬프리히 지음, 이지윤 옮김, 황완균 감수 / 지식너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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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에 관한 가장 유용한 정보만을 한 데 모아놓은 의약 상식서!

이 책은 상비약처럼 두고두고 책장에 꽂아두고 찾아볼 필요가 있다!

 

 

 

   머리가 묵직하고 지끈거리는 것이 두통이 시작될 기세였다. 상비약을 담아두는 서랍을 열어보니 두통약이 한 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설명서에는 두 알을 먹으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아직 두통이 심한 것도 아니고 예방차원에서 먹는 거니 한 알 정도만 먹어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확실히 한 알로는 효과가 부족했나보다. 그날 밤새 나는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약을 대할 때면 우리는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긴다. 꼭 설명서에 적힌 개수대로 먹어야 하는지, 식전과 식후 중 어느 때에 먹어야 좋을지, 사용설명서를 버리는 바람에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없는데 먹어도 되는 건지, 설명서에 적힌 유사 증상이 보이면 그냥 먹어도 되는 건지. 때마다 약국에 가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또 새로운 약을 구매하자니 어쩐지 아까운 마음도 들어서 몇 번이고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런저런 통증으로 인해 여러 개의 약봉지를 한꺼번에 달고 사시는 어른들이 있는데, 병원이나 약국에서 주의사항을 제대로 주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몸에 좋다고 먹는 약, 아파서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 각종 영양제들을 달고 사는 우리들. 정말 괜찮은 걸까?

 

 

 

알아두면 쓸모 있는 약에 관한 상식들

 

 

 

   『약,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는 의학 기자이자 약사인 저자가 잘못된 상식과 부족한 정보가 넘치는 의약 분야에서 사람들이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쓴 책이다. 통증, 감기, 소화 불량, 변비, 불면증, 피부 트러블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필요한 의약 정보들을 비롯해 여러 의약품들에 대한 지식과 자가 치료의 팁을 전수한다. 다만, 책을 읽기에 앞서 모든 통증과 질병에 딱 맞는 처방이 있지 않다는 점과 이 책의 정보를 함부로 적용하지 않기를 강조하는 만큼 아프거나 의심이 생길 때는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의 상담을 우선시 할 것을 당부한다.

 

 

 

   평소 꽤 건강한 편이라 자부하지만 그런 나도 유독 두통만큼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집 비상약 서랍장에는 두통약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통약을 워낙 자주 먹다 보니 이에 대한 부작용은 없는지 항상 먹기 전에는 망설여진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약품은 한 알만 복용하면 된다는데 어떤 약품은 두 알을 복용하라고 하고, 두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증에 두루 사용되는 약품이다 보니 이에 대한 문제점이 없는지 늘 의심되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책에서도 ‘통증에 관한 약 상식’을 가장 우선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진통제를 무분별하게 복용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부프로펜을 의사 처방이 필요한 고용량으로 복용할 경우 심근 경색과 뇌졸중 등 다양한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하면 심정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디클로페낙은 이부프로펜보다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진통제가 또 다른 두통을 낳는 부작용도 있다. 규칙적으로 진통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언젠가부터 통증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서 작은 통증에도 고통스럽게 반응한다. 이로 인해 진통제를 더 많이 복용하여 악순환이 발생하고, 이 악순환은 만성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가끔 한 알씩 먹는 사람이라면 이와 무관하지만, 나흘이 넘도록 통증이나 열이 있다면 꼭 병원에 가기를 당부한다. 한 달에 열흘 이상 진통제를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예방 차원에서 혹은 운동할 때 통증을 참기 위해 진통제를 먹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이에 주의해야겠다.

 

 

 

복용량이 많을수록 효과가 세다는 원칙은 진통제에도 적용될까? 그렇다. 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복용한 약성분은 체내에서 결합할 수 있는 모든 수용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 복용하는 양은 부작용의 여지만 늘릴 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1회 최대 용량 이상을 복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권장 용량보다 적게 복용해도 안 된다. 특정 용량 미만에서는 효과가 전혀 없거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 아스피린을 1외 용량(300mg) 미만으로 복용하면 혈액 응고에만 작용하고 통증에는 작용하지 않는다. / 28p

 

 

나는 두통이 생기면 큰 컵으로 물을 한 잔 마신다. 수분 부족으로, 단순히 탈수 때문에 두통이 생길 때가 있다.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 따뜻한 음식이면 제일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단것을 먹는다. 당이 떨어져서 머리가 멍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10분 정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혈중 산소가 늘어나면 두개골이 깨질 듯 아픈 증상이 줄어든다. / 34p

 

 

 

 

 

  환절기에 본격적으로 감기가 유행하는 계절이다 보니 ‘감기에 관한 약 상식’ 편에 특히 관심이 간다. 책에서는 감기를 완화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비강 스프레이 사용법이 눈에 띈다. 사실 비강 스프레이는 코의 점막을 상하게 하여 오히려 해롭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저자 역시 콧물감기용 비강 스프레이를 며칠간 연속해서 뿌리면 코 점막이 망가지고 약품에 내성이 생길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강 스프레이는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감기를 수월하게 견디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스프레이 성분이 점액을 쉽게 흐르게 하고 코 전체의 공기 흐름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비강염이나 중이염에 잘 걸리는 사람들이라면 사용 시 주의점에 유의하면서 유용하게 사용해보시기를 권장한다. 이 외에도 코감기가 걸렸을 때에는 증기 들이마시기를 추천한다. 끓인 물이 담긴 볼이나 냄비 위에 얼굴을 들이대고 10분 동안 숨을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는 방법이다. 이때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머리에 수건을 덮으면 좋다. 또 기침 때문에 한숨도 못 자서 괴로운 밤에 적당한 약이 없다면, 꿀을 한 숟갈 먹거나 건조한 공기가 기침 발작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방에 젖은 수건을 널어놓을 것을 제안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미지근한 물 한 컵이 장을 깨운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물을 마시는 시간과 온도는 장 활동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물을 적게 마시는 사람은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 사람보다 배변이 힘들 뿐이다. 물을 안 마시면 쓸데없이 소화 작용을 방해한다. 그저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만으로도 하루 동안 먹은 식물성 섬유 혹은 식이 섬유가 팽창하여 대변의 부피가 커진다. 식이 섬유가 가장 많은 과일은 말린 자두나 무화과다. / 96p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산 분비가 많아진다. 그래서 속쓰림은 자율 긴장 이완 훈련, 야콥슨식 근육 이완 훈련 혹은 마음 챙김 명상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급한 경우에는 아몬드 한두 개를 꼭꼭 씹어 삼키거나 저지방 우유 한 잔을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시는 게 최고다. 둘 다 위산의 공격을 약화시킨다. 아몬드도 우유도 구할 수 없을 때는 물 한 잔을 마신다. / 137p

 

비판텐의 텍스판테놀 성분이 상처 치료를 돕는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텍스판테놀은 재상피화, 즉 피부 세포의 재생을 촉진한다. 인위적으로 상처를 낸 피부 샘플과 비교한 연구에서 텍스판테놀 성분이 작용할 때 상처가 더 빨리 봉합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 169p

 

 

 

   이 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생리통이 심한 사람의 경우 오메가-3 지방산을 섭취하고,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소파에 눕거나 ‘온 파스’를 속옷이나 티셔츠에 붙여 누워 있기를 추천한다. 볼 안쪽에 상처가 났다면 먼저 홍차로 입을 헹궈보기를 바란다. 홍차에 함유된 탄닌의 수축 작용이 점막 외피층을 오그라들게 만들어 상처를 빨리 낫게 돕는 것인데, 간편한 티백을 이용해 끓는 물에 몇 시간 동안 진하게 우린 차로 입을 헹궈보자. 이 외에도 책에서는 삼키기 어려운 캡슐을 수월하게 먹는 법, 약국에서 의약품과 의약품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법, 약 사용 설명서 읽는 법, 약차 마시는 방법 등 알아두면 쓸모 있는 꿀팁들을 제공한다.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약 복용법, 주의해야 할 약의 유효기간, 의약품 폐기법 등은 우리가 의약품을 다룰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중요한 정보인 만큼 이 책을 통해 꼭 확인해보시기를 추천한다.

 

 

 

150여 명의 실험 참가자 중 열에 아홉이 이 방법으로 성공했다. 심지어 2cm(!)가 넘는 캡슐도 이 방법으로 삼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크기는 캡슐만 가능했고 알약에는 잘 안 통했다.

방법은 이렇다. 캡슐을 혀 위에 올리고 물을 한 모금 입에 문다. 그런 다음 물을 삼킬 때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 입 안에서 물에 둥둥 뜬 캡슐이 목구멍을 단숨에 넘어가서 식도까지 수월하게 통과한다. / 31p

 

 

기존의 평범한 기계적이고 생물학적인 그리고 화학적인 정화 시설에서는 많은 약 성분들이 그대로 살아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4번의 정화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중 한 단계는 약 성분 분자들을 파괴할 수 있는 오존 시설이어야 한다. 이러한 시설은 비싸기 때문에,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도 끈질긴 인내력과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한 한 약을 적게 먹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앞서 말했듯이 남은 약을 절대 변기나 하수구에 버려서는 안 된다. 생활 쓰레기로 버려서도 안 된다. 의약품을 폐기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약국에 비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리는 것이다. / 231p

 

 

 

 

 

 

   ‘세상에 오로지 유익만을 가져다주는 햇살 같은 약은 없다.’ 저자는 약을 사기 전에 이 약이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물어보기를 거듭 당부한다. 그리고 아스피린부터 식물성 생약까지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기를 바란다. 약의 기능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남용하거나, 주의사항과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오용하는 경우도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약은 제대로, 정확히 쓰일 때 효과를 발휘한다. 잘못된 의약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의심이 간다면 항상 의사나 약사에게 확인하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약을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점검하고 각종 증상에 알맞은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이 도서는 ‘지식너머’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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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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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에 닥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아주 긴박한 호소!

이 책은 이유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거친 바람 소리가 휘휘- 휘몰아칠 때마다 창문은 요동을 쳤다. 이따금 바람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듯할 때면 집 전체가 뒤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피며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8호 태풍 바비에 이어 9호 태풍 마이삭까지, 연이은 태풍 소식에 나는 불안한 마음을 쉬 잠재우지 못하고 내내 뒤척였다. 2017년 포항 지진, 2020년 코로나19,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풍의 경로, 이제는 일과가 된 미세먼지 농도 확인하기.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두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곧, 내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땅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며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더더욱 살기 힘든 환경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나의 할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아버지도 낙타를 탔고, 나는 메르세데스를 몰고, 아들은 랜드로버를 굴리고, 그의 아들도 랜드로버를 굴릴 것이지만, 그다음 세대의 아들은 낙타를 탈 것이다.” 1960년대 말, 석유의 발견으로 아랍에미리트에 퍼진 희열이 훗날 국민을 괴롭힐까 걱정한 셰이크 라시드의 말이 이토록 실감났던 적이 또 있을까. 아니, 낙타를 탈 수 있는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낙관적이다. 『우리가 날씨다』(부제:아침식사로 지구 구하기)의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말한다. 상실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대멸종의 시대,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라고.

 

 

 

우리가 홍수이고 방주이다

 

 

   점점 강해지는 대형 태풍, 더 심각해지는 해수면 상승, 가뭄과 물 부족, 점점 넓어져 가는 오염 해역, 대규모 해충 발생, 죽어 가는 숲, 매일같이 사라지는 수백 종의 생물. 우리의 실존을 뒤흔드는 비상사태와 전 지구적인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저 멀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처럼 이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이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여전히 추상적이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 명제 앞에서 지극히 무관심하다. 엄밀히 따지자면, 믿고 싶지 않은 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이렇듯 진짜 전 지구적 위기는 ‘고정된 무관심 편향’이며 우리는 ‘탄소 배출을 영(0)으로 줄인다 해도 과거의 행동들이 초래할 죽음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경험할 것이다. 행성은 우리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더는 살기 좋고 아름답고 쾌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경험하기 시작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현대 세계와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수천만 년에 걸쳐 진화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잘 맞지 않거나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열망, 공포, 무관심에 이끌리곤 한다. 우리는 당장, 바로 그 자리에서 필요한 무언가에 더 끌린다. 지방과 설탕을 좋아한다.(이런 것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다.) 정글짐에서 노는 아이들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본다.(정작 아이들 건강을 더 크게 위협하는 요인은 무시하면서.) 그러면서도 치명적이지만 저기 멀리 있는 것에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 30p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을 일종의 자살로 본다면, 우리의 자살은 그로 인해 죽게 될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가 아닐 거라는 사실 때문에 더 소름끼친다. 이미 기후변화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기후변화로 미래에 죽게 될 인구는 아이티나 짐바브웨, 피지, 스리랑카, 베트남, 인도, 방글라데시처럼 최소한의 탄소발자국을 만들어 내는 지역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로 죽었고,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죽을 것이다. 지략이 아닌, 자원이 부족해서. / 222p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도타기’라고 강조한다. 성희롱에 대한 부적절한 처리에 항의했던 구글 지원들의 국제적 파업 물결처럼,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백신 시험에 자원한 선구자들처럼, 2차 대전 당시 해질녘이면 집안의 모든 불을 소등하고 지지와 연대와 참여를 보여주었던 미국의 해안 도시 시민들처럼,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파도타기라는 감정에 동참했을 때 비로소 해낼 수 있었던 것들에게서 희망을 엿본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파도타기를 시작해야 할까? 책에서는 우리가 기후변화를 논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 행성은 농장’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축산업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 하지만 기업들은 우리가 쓰는 것들을 만들고, 농부들은 우리네 먹을거리를 재배하잖아.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짓는 거라고. 게다가 기후변화가 국가와 기업의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도 국가와 기업들의 정책 변화를 끌어낼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 것 같아. 또 나쁜 놈들을 비난하는 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행동이야.

요즘 너도 나도 입에 올리는 구호가 있더라. 우리 시대의 비공식 구호랄까. “뭔가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뭔가 해야 한다고 되풀이해 말할 뿐 진짜로 뭔가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뭘 해야 할지 모르거나,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 거지. / 180p

 

 

“오늘날 수백억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산업혁명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있지만, 지구의 광합성 능력은 (……) 숲이 사라지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그들은 가축의 호흡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전 세계적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온실가스의 21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추정치를 인용한다. 후속편에서 굿랜드와 앤행은 이렇게 덧붙인다. “동물의 호흡과 토양 산화작용에서 대기 중으로 흘러가는 탄소는 연간 광합성으로 흡수되는 양을 1~20억 톤가량 초과한다.” / 279p

 

 

 

   최근 기후 조절에 식단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존스 홉킨스 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의 고기와 유제품 섭취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비농업 부문에서 배출량을 크게 줄인다 해도 전 세계 평균 온도는 2도 이상 오를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월드워치 연구소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축은 연간 325억 6400만 톤의 이산화탄소 등가물을 배출한다고 한다. 이는 연간 전 세계 배출량의 51퍼센트에 해당하며 차, 비행기, 건물, 발전소, 산업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 문제는 농장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평균 농장의 규모는 두 배가 되고 자동화, 공장화 되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우리의 행성은 농장화되었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거의 매일, 거의 매 끼 동물성 식품을 먹는다.

 

 

 

   하지만 간편하면서 양질의 영양을 제공하는 고단백질 식탁 문화를 단숨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자신이 목청 높여 반대했던 공장화된 고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곧잘 먹었음을 시인한다. 그만큼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의 식습관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지구를 구하기에 충분치 않겠지만,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지구를 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책의 말미에 “화석연료의 한도를 정하여 기후변화를 되돌리기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제 에너지 기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재생 에너지 기반 시설을 갖추려면 적어도 53조 달러의 비용에 적어도 2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그때쯤이면 기후변화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을” 거라는 말은 처절하리만큼 현실적이다. 그나마 동물성 제품을 대체품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온실가스 배출을 급속히 줄이면서 동시에 땅을 비워서 더 많은 나무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기 중 탄소 초과분을 가둘 수 있게 하는 이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뿐더러, 너무 늦기 전에 기후변화를 되돌릴 유일한 실용적 방법이 될 거라는 조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절박한 실천법이 아닐까.

 

 

 

아빠는 이 방에서 자랐고 할머니는 이 방에서 돌아가셨어. 이 방은 우리 집이었고, 우리 가족의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품고 있지. 하지만 우리를 위해 지어진 것은 아니야. 우리보다 먼저 여기 살았던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떠나면 다른 사람들이 살겠지. 우리는 그 사람들에 대한 의무가 있단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우리 형과 내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가 하셨던 일들에 대해 어떤 의무감을 느끼듯이,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 할머니가 우리에게 의무감을 느끼셨듯이 말이야. / 269p

 

 

 

 

 

 

 

  이렇듯 『우리가 날씨다』는 전 지구에 닥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긴박한 호소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객관적인 자료수치를 통해 분석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왜 우리는 알면서도 믿지 못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자기 질문과 고민들을 통해 우리들을 끊임없이 독려한다. 훗날 나의 아이들이, 조금 더 먼 미래의 아이들이 “도대체 왜 당신들은 우리 세대의 희생을 선택했나요?” 하고 묻지 않을 수 있기를. 인류의 대멸종을 가속화할 것인가, 여기서 멈추게 할 것인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지금이라도 당장 우리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반드시 느껴보시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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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 세계가 친근한지 적대적인지는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에 달려 있다. / 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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