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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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울음이 한발 늦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것뿐’일지라도

우리는 이 마음을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어제 자 뉴스에서 ‘신생아 변기에 넣어 숨지게 한 20대… 불로 사체 태우려고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속상한 것은 검찰이 “피고인들이 아직 어리고 전과가 없다”며 A씨에게 징역 5년과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B씨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체를 의도적으로 유기하려든 이 파렴치한 이들에게 내릴 수 있는 형량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참으로 관대한 세상이다. 무슨 말로 이 작은 새를 위로할 수 있을까. 제페토 시인의 시 한 편으로 이 가여운 생과의 이별을 애도해볼 뿐이다.

 

 

 

먼 곳에서 날아와

이승에 발끝 적시고 날아간 새.

 

 

다시 오는 날에

세상이 있을지 모르겠다.

 

 

남아나지 않는

인연이 섧다.

 

 

/ <작은 새> 25p

 

 

 

 

소풍 전날 밤 같은 시간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

 

 

 

   『우리는 미화되었다』는 시 형식의 댓글을 통해 세상의 많은 사연과 소통하는 댓글 시인 제페토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는 코로나19, 이산가족 상봉, 끝나지 않은 5.18의 진상 같은 굵직한 이슈들 사이로 백남기 농민의 죽음, 살인적인 업무와 모욕에 치여 세상을 등진 아파트 경비원, 동물 학대 같이 마음이 흔들리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댓글 창을 열어 글을 쓰곤 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댓글의 순기능과 부작용을 오래 지켜봐온 그는 ‘댓글은 손쉬운 유희가 아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목소리’임을 통감하며 조심스럽되 때로는 날카롭게 오늘을 시화한다. 특히 그의 시 속에는 여리고, 힘이 없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시선과 위로가 담겨 있다. ‘이놈의 세상 만날 그대로’라고 한탄하면서 비록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울음이 한발 늦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것뿐’일지라도 ‘산다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희망을 넌지시 건넨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지다가도 이내 나를 둘러싼 혹은 내가 감싸 안아야 할 자리들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게 된다.

 

 

껍질이 있는 것은 내부가 있다.

벗겨지면 아플 수밖에.

 

 

피가 배어나는 몸으로는

천사의 포옹도 두려울 터

 

 

함부로 다가가지 않을 때

비로소 개인의 영토는 보전된다.

 

 

국경선을 넘지 말 것.

경계병을 오판하지 말 것.

 

 

그녀는 지난날 총상을 입은 적 있어

지금껏 잠 못 이룰뿐더러

다쳐본 이의 무기란

전에 없이 사나운 법이니까.

 

 

/ <서리> 53p

 

 

 

 

 

 

   최근 개그맨 박지선 씨가 세상을 떠났다. 화장을 하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피부질환의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혹여 이 때문에 악성 댓글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그녀를 표적삼아 무자비한 촉수를 드리운 활자 괴물들에 그간 난도질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뒤늦게 염려해본다. 마찬가지로 2019년 10월 14일, 설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설리는 사망 8일 전에 SNS 라이브를 통해 “욕하는 건 싫다. 이런 데 문자로 남는다는 게. 그 사람의 감정이 안 보이니까 조금 무섭다. 따뜻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제페토 시인은 <야수들>을 통해 ‘짐승에게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사람을 다치게 한다’며 시를 띄운다. 그리고 그는 의심한다. 저들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을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미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본다.

 

 

 

짐승에게 있는 것이

우리에게도 있어

사람을 다치게 한다.

 

 

그는 달아나는 표적이었다.

옅은 미소만 비쳐도

몰려가 목을 물고

발톱을 찔러 넣지 않았던가.

 

 

우리의 형상은 신뢰할 만한가?

나는 의심한다.

앞발과 주둥이에 피 마를 날 없는 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슬프다.

우리는 미화되었다.

 

 

/ <야수들> 105p

 

 

 

바깥세상은 조련사보다 무섭고

나는 도망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길들여진다는 건 그래서 더러운 거야.

 

 

작은 꽃을 보았지.

이름 모를 나무와 정갈한 잎사귀와

아, 바깥 하늘엔 쇠창살이 없더군.

 

 

사람들이 온다. 불길한 물건을 들고 있다.

꼭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면 견디어낼 수 있을까.

 

 

곧 알게 되겠지.

 

 

/ <외출> 중에서 141p

 

 

 

 

 

 

   제페토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자연이 품고 있는 기꺼운 친절에 참 감사하게 된다. ‘봄부터 피어나 대지를 뒤덮는 저 꽃들이 실은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겨울 낙오한 작은 목숨들에게 바치는 조화가 아닐까(<봄의 도리>)’ 지나고 쓰러진 생명들을 도닥이고, ‘사는 맛을 알지 못해 울기만 하는 당신을 위해 당도 높은 기쁨으로 속을 채워두고 싶다’고 고백하는 지리산 산청의 곶감과 백수의 처지를 위로하며 ‘온종일 맞아도 맷집 좋은 나는 너를 떠나지 않겠다(<전봇대>)’고 말하는 저 전봇대에게서도 온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언어가 아닐까. 댓글이라는 공간에 이처럼 다정한 언어를 불어넣는 시인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그렇게 꾹꾹 마음으로 눌러쓴 그의 글귀가 모두에게 따뜻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부디 세상의 슬픈 사연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본다.

 

 

 

이 도서는 ‘수오서재’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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