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가 안동김씨 표정있는 역사 4
김병기 지음 / 김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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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를 정국을 주도했던 세도정치의 대명사 안동 김씨 가문이 항상 궁금했는데 마침 이 주제의 책이 있어 반가웠다.

세도정치라는 이미지가 워낙 나빠서 그런지 비판하는 글만 보다가 일방적인 비난에 그치지 않고 왜 세도정치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과, 개개인의 삶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내용이라 신선하다.

특히 정조가 왜 김조순을 사돈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흥미롭다.

세도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바로 김조순이고 정조의 죽음 이후 안동 김씨에게 정국이 넘어가게 됐지만 김조순 개인은 비교적 기개있는 사대부였고 주위를 잘 조정하는 온화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유서깊은 사대부 가문이면서 개인적인 특성이 더해져 정조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순원왕후의 한글 편지를 읽었을 때도 느낀 바지만, 수렴청정을 행했던 대비들은 근본적으로 중국의 여태후나 서태후처럼 권력욕이 강한 여인들은 아니었던 듯하다.

뒤로 물러나 있는 전형적인 조선의 조신한 여성들이라고 할까.

책에 따르면 정순왕후 역시 친정의 원수갚음이 끝나고서는 딱히 세도를 부릴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

순원왕후 역시 가문에 의해 세도정치가 행해졌을 뿐 개인적으로는 권력욕 보다는, 남편과 자식 넷 모두를 먼저 보낸 불행한 삶이 더 와 닿는다.

대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왕들이 단명하고 어린 왕이 즉위해도 왕실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책에도 나온 바지만 세도정치는 단지 왕의 권위에 기대는 일시적인 권력 독점 현상이었을 뿐, 조선처럼 역성혁명을 일으킬 실제적인 힘이 없었다.

당장 대원군이 즉위한 후 일순간에 안동 김씨 가문이 무너져 버린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상깊은 구절>

96p

하지만 송시열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사는 길이었으며, 그 시대를 살았던 선비들의 길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오늘날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꽉 막히고 답답한 것이라 해도. 격렬한 투쟁과 지독한 싸움은 싸우는 자의 위치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보면 허무한 것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중요한 가치이자 이상이었다. 따라서 송시열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게 자신의 뜻을 고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127p

흔히 실학을 지지한 개혁군주로 일컫어지는 정조이지만 실제로 그의 통치를 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특히 문체에 있어서 그러했는데,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문체반정이었다. ... 정조의 문체반정은 청나라 문자의 옥처럼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해할 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당대의 문체를 왕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뜯어고쳤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로 지독한 정책이었다.

135p

정순왕후 김씨는 비록 대리청정을 통해 정권을 잡았고 스스로 女君을 자처했지만 친정의 원한을 갚겠다는 인념 이외에 정치에는 별다른 욕심이 없었던 듯하다. 1804년 6월 23일 조정 조회 때 도착한 언문교지를 본다면 정순왕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평을 상당히 신경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조금은 의외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모든 오욕과 비난을 무릅쓰고 정권을 잡고 휘두를 만큼 담대한 여인도 아니었던 것 같다.

139p

흔히 후궁이라고 하면 어쩐지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후궁들이 사대부의 딸 중에 간택되어 입궁하곤 했다.

144p

김조순이 어디까지나 사대부이자 양반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문집인 <풍고집>에서는 사대부이자 외척 그리고 세도가로서 자신의 입장을 고뇌하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척신이라고 해도 현명한 사대부의 자세를 지킨다면 사대부이다."

... 국구가 된 뒤에도 실권 있는 직책은 맡지 않고 제조직과 영돈녕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바꿔 말하면 그는 나서서 드러내놓고 권세를 누리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나라 안에서 그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 그를 평가한 문헌들은 김조순이 아랫사람에게 너그러웠으며,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세도정치를 펼쳐 조선을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현재의 편견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172p

... 세도정치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라고는 해도 나라의 주인은 여전히 왕이었고, 상징이든 어떻든 권력의 향방을 쥐고 있었다. 누가 왕의 배필이 되고 외척이 되느냐가 왕비 친정붙이의 몰락과 번성을 초래하는 열쇠가 되었다. ... 결국 세도정치란, 양반들이 나라의 전권을 장악하고 누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왕이 제 역할을 못하는 특수상황에서 그에 기생한 권신 가문들이 왕을 대신하는 정치체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세도정치가 가장 타락한 정치형태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어떻게 본다면 가장 사대부다운 정치체제였다. 따라서 혼자서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새로운 외척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왕을 잃으면 맥없이 힘을 잃고 무너졌다. 흥선대원군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이후 어떻게 안동김씨가 몰락했는지를 보면 그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83p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김병기는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렀다.

"우리는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고 살아왔으므로 사직과 함께 존망을 같이해야 하니 너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 대원군은 김병기를 미워하기는 했지만 그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213p

아직까지도 친일파 청산과 관련하여 말이 많지만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행하며 삶을 불살랐던 인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단군 이래 최대의 국가번영을 누리면서 세계와 어깨를 겨루며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류>

72p

세종의 6대 손으로 뒷날 영의정에 올랐던 이경여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이경여는 세종의 7대손이고, 아들인 밀성군의 6대손이다.

81p

김상헌은 슬하에 아들이 없어, 아우 김상관의 아들 김광찬을 양자로 삼았다.

->김상헌은 김극효의 4남이고, 김상관은 차남이므로, 아우가 아니라 형이다.

83p

28세 때는 중시 을과에서 또다시 장원을 했다.

->중시 을과가 아니라 문과 중시에서 을과로 합격했다.

84p

서인들은 인선왕후를 장렬왕후의 둘째 아들(인종)의 아내로 보아 대공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종이 아니라 효종이다.

159p

안동김씨가 이미 다음 대의 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던, 순조의 손자라는 뜻으로 仁孫으로까지 부르게 했던 이하전이 아닌 이원범을 다음 대의 왕으로 정하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세도정치가 계속되려면 왕이 똑똑해서는 안 되었다.

->다른 책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이하전은 덕흥대원군 가인 도정궁의 사손으로 당시 왕가와는 혈연관계가 없고, 이원범은 헌종과 7촌 사이로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 당연히 1순위로 왕위에 추대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부러 멍청한 왕을 골라 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170p

김문근은 6창 중 하나인 김창협의 현손으로 같은 안동김씨라고는 하지만 김창집의 후손이었던 김조근, 김좌근과는 조금 갈래가 달랐다.

->김문근은 김창집의 외아들 김제겸의 셋째 아들인 김원행의 증손으로 김창집의 후손이다. 다만 김원행이 김창협의 아들 김숭겸의 양자로 가서 족보상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김문근은 김성행의 손자인 김이순의 양자로 가기 때문에 족보상으로도 김창협이 아닌 김창집의 후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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