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 왕초 PD와 1만 2800km 중국 인문기행을 떠나다
윤태옥 글.사진 / 책과함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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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다. 

홍군의 대장정은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전혀 몰랐는데 답사기 형식으로 쓰여져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현대사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가급적 안 읽는 편이다.

특히나 인터넷 논객이랍시고 설전을 쏟아내는 요즘의 경망스러운 세태를 혐오하는 나로서는 그나마 가장 최근의 현대사를 접한 셈이다.

왜 장제스가 패할 수 밖에 없었는가, 마오쩌둥이라는 혁명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중국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앞에 소개된 마오쩌둥이 버려진 아내들 이야기에서는 같은 여자라 그런지 분노의 감정이 일기도 했다.

미투 운동 같은 요즘 분위기로 본다면 혁명 동지였던 아내를 둘씩이나 버리고 대장정 기간 동안에 어린 여자를 취하는 마오쩌둥의 행동은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고향에서 처음 결혼한 아내는 3년 살다 죽고 말았는데 단 한 번도 부부관계를 맺지도 않았다고 평전에서 말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자!

축첩이 자유로웠던 시대적 한계로 이해해야 할까.

전통적 남성 특유의 뻔뻔함이 보이는 것 같아 혁명가도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대장정을 이끈 위대한 영웅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인간적인 매력도 느꼈다.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 정권을 잡은 이후의 실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아쉽고 다른 책도 같이 읽어 보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23p

"양민 3000명을 오인해서 죽이더라도 공산당원 한 명을 죽이면 된다!"라며 멸공을 독려하던 장제스의 군대가 독기를 품고 들이닥칠 곳에 가족과 동지를 남겨두고 떠나는 장정, 그것이 대장정의 출발이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잔류자로 구분되었다. 마오쩌둥의 어린 자식도 동생 부부와 함께 잔류해야 했고,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96P

현지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이런 사람들의 희생과, 그 희생을 기록해둔 후손들이 있기에 지금의 중국이 있는 것이 아닐까. 권력에는 그늘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현실로 마주하고 있는 중국은, 결코 음모의 밀실정치나 선전선동, 개인 숭배로 만들어진 우스꽝스러운 나라가 아니다. 시대의 광풍 속에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두 다리로 서 있는 나라.

116p

이들은 홍군이나 지방 유격대 전사의 가족들에게 조직의 이름만큼 무참한 보복을 가했다. 토지와 재산을 빼앗긴 원한이 있던 터라 국부군보다 훨씬 잔인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걸리는 대로 보복을 했다. 장제스는 소비에트 지역의 모든 백성들은 이미 적화분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이러한 보복 행위를 방관하거나 두둔했다.

142p

그에 비하면 강제로 징집된 국민당 군대는 많이 달랐다. 촌락별로 징집 인원이 할당되었고, 도주할까 봐 밧줄로 묶어 끌고 가기도 했다.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압송하는 풍경이었다. 장교와 일반 사병의 차별이 심했고 일상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이렇게 몸에 밴 폭력성 때문일까, 국민당 군대가 진주하면 하급 병졸까지 주민에게 행패를 부리곤 했다.

186p

엇보다도 중국이라는 국가는 고난의 대장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결합체임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대장정은 결코 80년 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이고, 중국이라는 국가의 실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음을 축약해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232p

질주... 병력과 화력의 열세를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한 것이 바로 홍군의 질주였다. 중국의 장정 기념관들은 마오쩌둥의 '귀신같은 작전 지휘'를 칭송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홍군 전사들의 '목숨을 건 구보'가 승리로 이끈 더 큰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 홍군 전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무엇인가 있었기에 이런 극적인 승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념?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홍군의 지휘부나 간부였다면 모를까, 병사 대부분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324p

기념관 옆의 홍군 사령부 자리에 살던 주민들은 홍군들에게 땅을 내주고 이 산동네로 올라왔다. 혁명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주는 것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가난한 인민으로 살고 있었다.

335p

적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국의 백성 89만 명을 홍수로 쓸어버린 장제스의 군사작전이었다.

337p

"소련과 독일의 무기 전부를 가져와도 메뚜기 떼를 다 죽일 수 없다"는 탄식이 나왔다.

348p

장제스 측의 발상은 "백성이 굶어 죽으면 그래도 중국 땅으로 남아 있지만, 군대가 굶어 죽으면 일본 땅이 되니 어쩔 수 없었다"는 한 관리의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그 땅은 장제스의 것이 아니라 마오쩌둥의 것이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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