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와 보물이 있는 옛 절터 이야기 - 옛 절터에서 전하는 역사 탐방
김남용 지음 / 일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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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코너에 있던 책이라 최근에 나온 건 줄 알았는데 잘못 꽂아졌던 모양이다.

무려 2005년에 발간된 책이라 미륵사지 금제사리봉안기에서 무왕의 비로 사택왕후가 나온 내용이 없고, 선화공주 이야기만 있다.

제목대로 폐사가 된 옛 절터 중 국보와 보물이 있는 곳을 답사한 책이다.

책 표지는 촌스럽지만 본문의 사진 도판은 정말 훌륭하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프로 사진작가 못지 않게 탑이나 절을 잘 살려 주고, 도판 질이 무척 선명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신라와 고려 때만 해도 불교가 국교인 때라 많은 절들이 창건됐으나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쇠퇴하면서 역사적인 고찰들이 스러져 간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또 서양처럼 석조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절터가 사라졌고 석탑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한강가에 유명한 폐사지가 왜 그렇게 많나 했더니만, 세금으로 내는 쌀의 창고가 있던 곳으로 남한강을 통해 서울로 운반했던지라 매우 번성했다.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등이 당시의 융성했던 문화를 전해 준다.


<오류>

165p

황룡사 목탑의 1층에 일본, 2층에 중화, ... 5층에 응유, 6층에 말갈, ... 9층에 예맥을 각각 배정했던 것은 이들 이웃 나라의 침략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웃하고 있는 고구려나 백제가 빠져 있는 것은 황룡사 구층목탑의 건립이 삼국 통일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라가 3국 통일의 의지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5층의 응유가 바로 백제이고, 9층의 예맥이 고구려다. 당시 신라인들에게 오늘날의 민족의식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다.

224p

당시 실력자였던 최우의 두 아들인 최항, 최이 등이 혜심의 제자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최우가 개명한 이름이 최이고, 그 아들이 최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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