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본, 일본의 한국 - 이천 년 한일 교류의 현장을 가다
허문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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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이 쓴 일본 속의 한국 유산인 줄 알았는데, 동아일보 기자들이 쓴 취재기다.

14명의 기자들이 각 주제별로 글을 쓴 독특한 형식의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앞어 유홍준씨 책과 도자기 이야기, 교토 이야기 등을 읽을 때 산만했던 지식들이 하나로 정리되는 느낌이다.

확실히 기자들이 쓴 책이라 그런지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는 듯 하다.

표지는 개성있고 좋은데 책에 실린 도판은 화질이나 크기가 작아 아쉽다.

일본에 이렇게 많은 한국의 유산이 있는지 새삼 깨달았고 가장 가까운 나라인 만큼 많은 교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좋은 관계 속에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과 교토 1만년>이라는 책에 나온 바대로 일본과 한국은 정치와 사회 체제가 매우 유사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에 국제적 협력이 매우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적 교류가 좀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번 겨울 휴가 때 교토와 오사카에 다녀왔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인상깊은 구절>

363p

1719년 사행록인 <해유록>에서 신유한은 오사카에소 교토까지 요도가와 강(강이 가와이니 요도 강이라 해야지 않을까?)을 따라 인부들이 밧줄로 끄는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변 제방이 잘 정비돼 있으며 건물이 정교하고 깨끗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한탄스럽다. 부위영화가 잘못되어서 이런 흙으로 빚은 꼭두각시 같은 자들에게 돌아갔으니..."

전쟁을 일으킨 야만의 나라에 이렇게 부가 축적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류>

42p

왕인 박사는 또 고대 일본 귀족들이 짓거나 암송했던 전통 정형시 와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905년 발간된 노래집 <고금화가집>은 <나니와쓰의 노래>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왕인 박사를 '와카의 아버지'라고 적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금화가집>의 저자가 왕인 박사를 와카의 창시자로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시집인 <만엽집>을 보면 와카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잘 보여주는데, 후대 사람인 왕인이 와카를 창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83p

고닌 왕의 정실 부인은 45대 쇼무 왕의 딸로, 고닌 왕과는 9촌 사이였다.

->고닌은 덴지의 손자이고, 쇼무 왕의 딸은 덴무 왕의 현손이므로 9촌이 아니라 8촌 간이다.

115p

선광왕의 4대손인 경복왕의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선광의 증손이 경복왕이므로, 선광의 4대손이 아니라 3대손이다.

262p

일본 무사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미나모토노 요시미쓰가 신라선신당 앞에서 성인식을 치르고 아예 성을 '신라'로 바꾼 것이다.

->앞서 읽은 <서울과 교토의 1만년>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으로 당시에도 이상해서 찾아보고 오류임을 확인했던 부분이다.

미나모토 가문과 신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당시 무사들이 성인식을 한 신사를 이름 앞에 밝힘으로써 소속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신라사부로는 한자로 신라삼랑인데, 신라신사 앞에서 성인식을 한 미노모토 가문의 셋째 아들, 즉 三郞이란 뜻이다.

큰 형은 하치만 신사에서 성인식을 해 이름 앞에 하치만 太郞, 둘째 형은 가모 신사에서 해서 가모 次郞, 막내 요시미쓰는 신라 신사에서 해 신라 三郞인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국에서 이런 부분을 꼼꼼히 확인해 보지 않고 마치 정설인 양 방송하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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