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술가 -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사 서울대박물관 수요교양강좌 시리즈 1
안휘준 외 지음 / 사회평론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서울대학교 수요강좌라는 프로그램에서 일반인 상대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직장 때문에 이런 좋은 강좌를 한번도 들은 적이 없어 아쉽다.

강사들 면면이 화려하다.

현역 서울대 교수들이 일반인 대상으로 이런 격조높은 강연을 무료로 진행하다니, 정말 의미있는 일 같다.

너무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도판이나 편집 상태가 조악한 점이 아쉽다.

산수화는 거의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렵고 색이 들어간 수묵담채화나 뒷부분에 실린 현대 화가들의 작품은 볼만 하다.

내용 자체는 아주 알차고 유익하다.

우리 역사에 남을 유명화가들이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금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생긴다.

정선과 김홍도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작품이 너무 익숙해 별 감흥이 없었는데 책에 실린 도판들을 보면서 얼마나 위대한 화가인지 새삼 느꼈다.

정선의 산수화는 과연 관념산수화와 진경산수화가 무엇이 다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이고 개성있고 김홍도는 못하는 주제가 뭐였나 싶을 정도로 온갖 방면에 능력을 발휘했던 듯 하다.

그림과 한시가 어우러진 수묵화가 비록 제대로 이해는 못하지만 보는 즐거움이 크다.

조희룡의 화려한 매화 그림이나 서옥도 등도 매우 감각적이다.

현대 화가 편에 실린 김환기와 장욱진 그림도 무척 인상깊게 봤다.


<인상깊은 구절>

91p

술을 좋아하는 활달하고 파격적인 일면을 지녔다는 점에서 최북이나 장승업과 비교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명국은 두 사람처럼 기행과 일탈적 행위를 일삼지 않았으며 60평생 동안 화원이라는 직분을 잊지 않고 도화서라는 제도 안에서 국가의 일정한 회화 업무를 묵묵히 담당하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98p

공재도 격물치지게 있어서 마음 밖에 별도의 理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바깥 세계의 사물을 실제로 경험하고 증명함으로써 실제적인 이해를 추구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성리학과 예론은 물론 천문, 지리, 의약, 음악, 패관소설, 병서, 공장, 기교 등 다방면에 걸쳐 학식을 넓히게 되었다. 이는 마음 수양에 중점을 두고 있던 당시 성리학의 일반적 학문 경향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형상과 같은 이는 공재의 학문에 대해 그 번잡함을 경계하면서 비판과 충고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공재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격물치지론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자 방법론으로서 근대적인 사고를 형성하는 중요한 인식론이었다.

138p

조선 후기에 갑자기 윤두서, 정선, 조영석, 심사정, 이인상, 강세황 등 기라성 같은 선비화가들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서화에 대한 선비 계층의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은 조선 후기 화단이 풍성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 이것은 17세기까지 조선화단을 장악하였던 최고의 화가들이 김명국과 이징 같은 직업화가들이었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은 이전의 직업화가들이 그린 기교가 넘치고 격조가 떨어지는 그림 대신에 선비 특유의 아담한 정취와 예술적 품위가 드러난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 새로운 자료를 통하여 배울 수 있게 된 중국의 문인화풍에 관심을 가졌다.

174p

심사정은 조선 후기 남종산수화를 이끌었던 문인화가로서 당시 문인들이나 감식가들로부터 "그림에 '아치', '운치', '고상함'이 있으며, 우리나라 천 년간에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 그에 대한 평가는 좀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심사정을 중국적 색채가 짙은 화가로 말하고 있다. 그 말의 의미가 조선의 경치나 인물이 아닌 것을 그렸다는 뜻이라면 조선시대의 많은 작품들, 심지어 정선의 작품조차도 중국적 냄새를 풍긴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심사정에 대한 당시의 높은 평가는 그가 추구했던 회화의 세계가 그 시대의 미적 기준과 일치했으며, 그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210p

강세황은 문인화의 보편적 가치를 이상으로 삼아 한국적 문인화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였다. 일생 문인화의 본질을 추구한 그 자리에 조용하고 담담하며 고상한 강세황 개인의 문인화가 뿌리내렸다. 그의 그림에 나타난 맑고 담박하며 상쾌하고 시원한 기운은 바로 한국적 '담박,소쇄'로서 그가 본보기로 삼았던 중국 문인화의 그것과 차별성을 가진다. 이러한 차이는 일차적으로 공간 구성, 붓과 먹의 사용, 채색의 성질 등 그가 구사한 개성적 양식에서 오는 것이며, 그 그원은 그의 체질인 한국적 미감에 닿아 있다. 

254p

회화와 같은 예술세계는 산림처사나 고관대작의 일상과는 별개의 것으로 그것을 담당하는 인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그림이 사대부 문화의 한가한 취미로 취급되고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반발하여 회화예술의 독자적 의의를 강조한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은 예술세계에 몰입하는 전문학의 견해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조희룡의 예술관은 당시 문인들의 회화관과는 크게 구별되는 독특한 것으로, 그의 화풍의 변화과정과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 이는 예술의 효용을 인격을 수양하거나 학문을 닦는 데에 두었던 유교적인 예술관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 것이다.

355p

이들 세대들은 주로 화면에서 서양과 대비되는 동양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그 이후의 세대들이 집단적인 정체성보다는 개개인의 정체성 탐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과 대조가 된다. 김환기의 경우 자연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은 한국의 산과 달, 바람, 구름, 나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그의 일기에 나타나 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376p

마치 수묵산수화를 보는 듯한 이 작품은 고고한 모습으로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학이나 초막의 인물, 강이 등장해 도상학적으로나 작가적 심상으로나 전통적인 문인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장욱진의 태도는 그림 그리기를 일종의 취미로 인식하였떤 문인들의 태도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양식적인 면에서 문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에 있어서는 서구식의 작가 개념에 해당하는 모더니스트였다. ... 서구의 새로운 사조에 빨리 적응하여 그들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한국의 미술을 세계화하는 지름길이라고 믿었던 시대에 장욱진의 동화적인 이상적인 세계는 과거를 따라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또한 보통 300~400호의 거대한 작품과 영웅적인 태도가 대접을 받던 시대 속에서 장욱진의 '작고 예쁜' 그림들은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류>

169p

호응박토도 (胡鷹搏兎圖)

->오랑캐 胡가 아니라 호걸 豪가 맞지 않을까? 검색해 보니 두 가지 한자가 다 나오긴 하는데 豪가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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