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 - 세계사를 뒤흔든 중동의 거대한 바람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저자가 전직 외교관이라 현대 이슬람 정치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다.

지금은 교수로 있어서인지 이슬람의 역사와 십자군 운동에 대해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간략한 이슬람 역사 얘기인가 하고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일목요연하게 이슬람의 시작부터 현재 IS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정리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2부의 십자군 이야기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라는 만화 형식의 책에서 가볍게 맛본 게 전부였는데 이 책을 통해 200년에 걸친 십자군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정말 재밌게 읽었다.

왜 이슬람이 몰락하게 됐나에 대한 다소 편파적인 평가들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매우 성실하고 잘 정리된 책이라 하겠다.


<인상깊은 구절>

123p

전제정치는 코란의 기본 이념에 배치되는 정치형태였으며 대부분의 신민들은 가난했고 농경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공정한 관행에 시달렸다. 창시자 무함마드가 그렇게 강조했던 '평등과 정의'는 이미 이슬람 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68p

무함마드는 종교 세력을 약화시켜 사회를 세속화하기 위해 종교재단의 재산을 몰수하고 울라마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시켰다. 난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울라마들은 서구식 개혁이라면 치를 떨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보다 보수화됨으로써 반 개혁에 앞장서는 세력이 되었다.

171p

리다는 샤리아의 개혁을 통해 현대화된 이슬람 국가의 창건을 주장했다. 리다는 학생들이 마드라사에서 법뿐만 아니라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함께 연마할 것을 주창했다. 이러한 방식의 교육을 통해서만 농경사회의 규범으로 출발한 샤리아아 현대적으로 새로운 종교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가니, 압두, 리다는 모두 투르크 족이 아랍으로부터 이슬람의 패권을 뺏어간 후부터 이슬람이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본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들의 생각은 아랍 민족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76p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은 사우디의 이러한 형벌이 고루하고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사우디가 석유로 벌어들인 부를 왕족 위주로 분배함으로써 빈부격차를 조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코란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180p

종교의 원류를 막론하고 원리주의는 일정한 특성을 갖는다. 원리주의자는 절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대문명에 깊이 실망하며 현대적인 사회구조가 자신의 믿음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또한 세속적인 요소가 자신이 믿는 종교에 침투하여 언젠가는 종교를 말살해버릴 것이라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원리주의자들은 자신의 투쟁이 생존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력을 다한다.

186p

일견 탈레반은 순수 이슬람사회를 구현한듯하나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 거의 모든 이슬람 원리주의가 코란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준수하고 초기 움마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목표와 현실은 딴판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원리주의자들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코란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원리주의자들은 종교적 이상주의자라기보다 정치적 편의주의자들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 될 것이다. ...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를 정치에 이용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 현대사회가 정교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은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엄청난 소요와 분규, 살육, 희생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슬람은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1400년 전의 유목민사회, 농경사회에는 그 사회에 맞는 규범이 있어야 했고 현대사회에는 이 시대에 맞는 규범이 있어야 사회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 이슬람 행동주의는 결코 농민이나 빈민의 혁명이 아니라 엘리트들의 놀음인 것이다. 행동파들은 혁신에 반대하는 울라마들을 증오했다. 행동파가 지향하는 것은 이슬람이 서양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미국과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몰아내는 것, 그리고 이슬람의 막강한 영향력을 회

복하는 것 등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혁명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혁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290p

살라딘은 처음부터 재물이나 복수를 위해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에게 예루살렘 회복은 신에 대한 의무이자 그의 신념이고 생의 목표였다. ... 살라딘의 관대함은 타고난 것이자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불필요하게 피를 흘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 아크레 함락 후 살라딘과 리처드 1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리처드 1세는 이슬람 포로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3천여 명의 군인과 가족들은 모두 살해되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살라딘이 포로들의 몸값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앞으로 있을 작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 리처드 1세는 전투의 선봉에 서서 손수 적을 베는 스타일이었으나 살라딘은 스타일이 달랐다. 살라딘도 전투가 벌어지면 화살이 빗발치는 선봉대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전투를 독려하는 용감한 지휘관이었으나 직접 싸움에 뛰어들어 적을 베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 피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전쟁을 좋아하지 않은 그가 십자군과 오랫동안 싸울 수 있었던 것도 신앙의 힘이었다. ... 살라딘은 지하드를 위해 힘과 건강은 물론 재물까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 살라딘은 재물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초연했다.


<오류>

69p

750년 마지막 칼리프 만수르 2세를 이라크에서 패퇴시킴으로써 마침내 우마이야드의 깃발을 쓰러뜨렸다.

->마지막 칼리프는 만수르가 아니라 마르완 2세다.

269p

2차 십자군은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왕비 엘레오노르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트가 참전한 제왕 중심의 원정대였다.

->콘라트 3세는 정식으로 황제 관을 받지 못해 로마왕 혹은 독일왕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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