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의 재구성 - 히트하는 영화의 진실 혹은 거짓
김희경 지음 / 지안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읽은 책이다
책 읽을 때는 비행기 만한 곳이 없는데 그래도 장시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버스도 괜찮은 독서 공간이다
좀 흔들리기는 하지만 일부러 쉬운 책을 골랐는데 생각처럼 아주 쉽거나 재밌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영화를 분석한 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저자가 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헐리우드 영화를 분석해서 쓴 책이다
그래서 우리 실정과 좀 다르기 때문에 지루한 부분도 있었고 눈에 확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저자의 말대로 한국 영화계는 헐리우드를 모델로 따라가기 때문에 참조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기서 언급되는 거의 모든 영화들이 국내에서 개봉됐다는 점만 봐도 헐리우드와 한국 영화계의 밀접한 관련성을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민감한 소재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작년에 나온 책이라, 즉 스크린 쿼터 폐지 논란이 아직 본격화 되기 전이라 넘어간 걸까?
그래도 영화계 최대 이슈라 할 만한 사안인데, 기왕이면 언급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직까지 스크린 쿼터제 유지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잘 안 서는 독자 입장이라 더욱 그렇다

 

역시 제일 놀라운 부분은 스타들의 몸값이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상업적인 국가 같다
스타들의 몸값이 오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에이전시 때문이라고 한다
키워 줬는데 배신했네, 이런 감정적인 발언은 끼어들 구멍이 없는 것 같다
모든 계약은 당사자가 아닌 에이전시 직원들을 통해 이뤄지고 그들의 협상 능력에 따라 개런티가 결정된다
스타들이 나온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천정부지로 계속 올라가고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실패보다는 흥행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은 대단히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특별히 좋다 나쁘다는 의사 표명을 안 하지만, 분위기 상으로는 영화 찍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스타들의 높은 몸값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들의 몸값은 2500만 달러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우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멜 깁슨, 줄리아 로버츠, 해리슨 포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략 10여 명이 있고, 아래 등급으로 2000만 달러를 받는 배우로는 조니 뎁, 니컬라스 케이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까지 잘 알려진 배우들 (초등학생도 들으면 알만한 배우들) 이 제일 높은 개런티를 형성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뜻밖에도 여자 배우는 줄리아 로버츠와 캐메런 디아즈 두 사람 뿐이었다
이름에 비해 흥행작은 별로 없다는 니컬 키드만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자료였다

 

배우들에게 2500만 달러를 지급하면 감독들은 얼마나 받을까?
스필버그 같은 유명한 감독들은 보통 1000만 달러 정도를 받는데 피터 잭슨이 킹콩을 찍으면 2000만 달러를 받아 감독들 역시 인플레 현상을 겪을 것 같다고 한다
감독과 배우가 초기 비용으로 이렇게 엄청난 돈을 가져가 버리면 나머지 스태프나 조연 배우들은 뭘 먹나?
한 편의 유명 영화를 찍으려면 보통 1억 달러가 드는데 1/3을 주연 배우와 감독이 가져가 버리니 제작비는 물론 마케팅 비용이 한정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나머지 사람들에게 갈 파이는 갈수록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의 개런티가 5억+알파이고 전도연,장진영 등이 3억+알파라고 한다

 

물론 스타들은 영화를 보러 오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영화 내용을 전혀 모르는데 뭘 보고 극장까지 오겠는가?
특히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를 화면에서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책에서 지적한 바대로 스크린 속의 스타가 바로 나라고 착각을 하게 되고 꿈의 나라로 빠져 들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톰 행크스나 짐 캐리, 해리슨 포드 등은 얼마나 기막힌 연기를 하는가!
당장 나만 해도 톰 행크스나 짐 캐리 나오는 영화는 꼭 본다
그런데 재밌는 건 배우 보고 선택한 영화는 간혹 이건 아니잖아, 할 때도 있지만, 감독 보고 선택한 영화는 거의 다 괜찮다는 점이다
확실히 영화의 분위기나 스타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감독이지 배우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감독보다 스타가 두 배 이상 개런티를 받는 걸 보면, 역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원함이 분명하다
(왜 갑자기 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오를까?)

 

어쨌든 한 사람이 죄다 가져가 버리는 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부익부 빈익빈, 혹은 1등이 죄다 독식하는 문제는 영화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송강호는 영화 자체의 제작비가 커졌는데 주연 배우가 5억 가져가는 게 무슨 그런 큰 잘못이냐고 항변했지만 (왜 러닝 개런티 얘기는 빼 먹는 거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이 줘 버리면 그만큼 다른 곳에 들어갈 비용은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파이가 커져도 한정없이 클 수는 없는 것이고, 1년에 백만원으로 산다는 스태프들의 어처구니 없는 박봉도 생각해 볼 문제다
또 주연 배우 캐스팅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흥행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증명되어 온 가장 전형적인 영화를 원하게 될 것이다
수준이 있네 없네 해도 맨날 반복되는 조폭 코미디 영화처럼 말이다
어떤 면으로 봐도 한 사람의 독식은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영화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인기 있으면 또 만드나 보다 했는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속편 만드는 걸 프랜차이즈 영화라고 하는데,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처럼 한 편으로 만들기 어려워 기획 단계부터 속편을 준비하는 거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속편들은 전편의 재탕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아닌 기획의 승리가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말이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창의성이나 발전 지향적인 점은 찾기 힘들고, 전편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지루하고 틀에 박힌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만 해도 스피드2, 미이라 2 등 재미없는 속편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전편의 성공으로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영화를 또 만드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배트맨 시리즈나 리셀 웨폰 시리즈, 스파이더 맨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 마치 연속극이나 되는 양 시리즈물의 양산은 결국 창의적인 새로운 양식의 영화를 밀어내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한다
우리 영화만 해도 가문의 영광과 두사부일체 시리즈물은 아, 정말 너무 지겨워 이제 그만 좀!! 이라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다
꼭 속편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다 못해 소설이나 드라마의 각색이라도 해야 안심을 한다고 한다
일단 검증이 되야만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2004년 최우수 작품상 후보 중 오리지널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하나에 불과했다고 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가문의 영광은 또다시 4편을 기획하고, 마파도 역시 2편을 찍고 있다고 한다
안전한 속편 제일주의 보다는 보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실험물들이 많이 나와서 영화가 상업성 속에서도 예술을 추구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독립 영화들의 고군분투는 무척 반가운 얘기다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에 확실하게 흥행 요소를 갖춘 전형적인 영화 외에는 선뜻 투자를 안 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지라, 신인 감독이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감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비단 예술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스타일은 외면받기 일쑤다
더구나 "갱스 어브 뉴욕" 이 흥행성은 물론 아카데미에서 조차 외면받자 그 후로 실험적인 영화는 더욱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영화 보긴 봤는데 세 시간 가까운 시간에다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에 황당했던 생각이 난다
(아마도 디카프리오가 안 나왔으면 안 봤을 거다)
어쨌든 돈이 워낙 많이 들어가니 더욱 안전한 코드의 영화만 양산이 되고 실험적인 영화는 외면을 받아 설 자리가 좁아진다
그렇지만 헐리우드는 한국 영화계에 비하면 여전히 새로운 형식의 영화가 끊임없이 수혈되는 역동적인 곳이라고 한다
썬댄스 영화제나 독립 영화관 같은 곳이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를 준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독립 영화제나 그런 영화관들이 보다 활성화 됐으면 한다
한국 영화가 스크린 쿼터제 덕분에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막상 극장에 가 보면 죄다 흥행하는 영화 한 두 개만 걸어 놔 선택하고 말 것도 없는 게 현실이고 보면, 영화계에서도 무조건 보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픽사의 성공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몬스터 주식회사를 본 후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 후 니모를 찾아서나 아이스 에이지, 앤츠 같은 영화를 보면서 그 정교함에 감탄, 또 감탄을 했고 오히려 에니메이션은 적어도 서사 구조는 확실하기 때문에 어설픈 영화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시 미국인들도 이야기가 분명하고 그래픽이 정교한 애니메이션을 선호하게 됐고 더구나 영화의 주 관객층이 가족으로 이동하면서 아이들까지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당장 픽사에서 만든 여섯 작품들은 모두 100% 성공을 거뒀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제작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 마당에, 더구나 비싼 투자비 때문에 안전 제일주의로 대부분의 영화가 전형화 되는 마당에,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새로운 기대감을 품게 한다
아직까지 우리 영화는 애니메이션 분야가 약하지만 오히려 이런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걸 보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는 역시 돈을 벌어 들이는 매우 상업적인 분야임을 느꼈다
영화 투자는 거의 도박이라 할 정도로 손익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단순히 예술 운운하면서 개인의 취향에 맞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림이나 문학, 음악 등은 개인의 노력 만으로 예술성을 추구할 수 있지만 영화는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니, 영화의 상업성 추구는 그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필연적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는 또 하나의 예술 분야이고 단순히 대중 예술에 머물지 않고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는 매력적인 장르다
더구나 잘만 되면 수많은 관객들에게 그 예술성을 어필할 수 있으니 더욱 매력이 큰 곳이라 하겠다
영화계가 단순히 돈에 매이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는 매혹적인 분야가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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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0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상업주의를 벗어날 수는 없는 건데, 우리나라도 헐리우드도, 저 억소리 나는 몸값에 망연자실 할 때가 있어요. 도대체가 돈의 단위가 다르잖아요ㅡ.ㅡ;;;;

marine 2006-11-0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 쪽은 국민소득도 높고 그러니까... 그래도 좀 많긴 많죠? 대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이 안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