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내면의 여백이 아름다운 나라 타산지석 8
장미영.최명원 지음 / 리수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편하게 읽은 책이다
모든 책들이 이렇게 술술 넘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250페이지 정도 되는 중간 분량의 책인데 내용이 말랑말랑 해서 2시간도 못 되서 다 읽어 버렸다
앞서 읽은 "그대로 두기" 나 "레니 리펜슈탈" 등의 책은 외국 이름과 지명 때문에 거의 한 자 한 자 눈에 바르면서 지나가느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역시 이 책은 독일 이야기지만 한국인이 쓴 거라 쉽게 술술 넘어간다
어떤 책이든 번역서는 문장의 어색함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듯 하다

 

책을 읽을 때 가능한 한 편견없이 대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앞서 읽은 "독일문화읽기" 와 비교하게 됐다
앞서 읽은 책이 독일 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같은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두 책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독일문화읽기" 가 독일인들의 가치관이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썼다면 ( 더 정확히는 독일인들의 민족주의 부활을 비판함) 이 책은 독일인의 생활 습관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썼다
그래서 더 내용이 말랑말랑한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책의 저자들은 독일의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신문을 열심히 보지 않은 듯 싶다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한 언급이 너무 없어서 좀 놀랍다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이 쓴 미국 생활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비단 이 책만 그런 건 아니고, 여태까지 내가 읽은 독일 관련 서적들은 거의 다 그렇긴 하다
그러고 보면 박노자의 노르웨이 이야기는 분석력이 뛰어난 편이다
물론 그가 노르웨이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로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미국에 관한 책은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다른 유럽 관련 체험기는 비교적 드문 편이고 그나마 프랑스나 영국이 좀 있지, 독일 체험기는 워낙 적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제목도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역시 딱 유학생 수준에서의 피상적 고찰들 뿐이라 내용이 너무 말랑말랑 해서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그러나 편집도 잘 되어 있고 역시 이국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책장은 쉽게 잘 넘어갔다
적어도 "독일문화읽기" 보다는 훨씬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이 얘기하는 신나치주의 부활의 징조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높은 실업률을 외국인 노동자 탓으로 돌린다거나, 독일민족제일주의 같은 위험한 발상법들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읽은 책에서는 독일이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과거 청산에 철저하다고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유학한 이들의 시각이 사뭇 다르다
또 "독일문화읽기" 에서 지적 스노비즘이라고 비판했던 독일인들의 학문적 욕구를, 이 책에서는 교양시민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옆 나라 프랑스에서 혁명을 일으켜 군주정을 갈아 엎었을 때 독일은 이른바 계몽군주라는 미명 하에 진리 탐구의 자유만 허용하는 식의 교묘한 통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군주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독일인들이 특별히 학문 탐구에 열성적이었던 배경에는 그 외의 모든 정치적 자유가 금지됐기 때문에 그나마 열려 있던 지식에의 욕구라도 채우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역사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저자는 독일의 시민 계급을 교양있는 중산층으로 명명한다
독일 전역에 음악회가 번창하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대표되는 독일 서점가의 번성도 대단하고 특히 시나 소설을 낭독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강성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로든 수준있는 문화가 여러 사람들에게 향유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독일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대학생들이 한정없이 대학에서만 머무르려고 하니 차라리 수업료를 부과하자는 것이 확실히 요즘의 이슈인 모양이다
이 책 외에도 여러 책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 봤다
완벽한 사회 복지정책의 표상이라고 할 무상교육 제도가 삐걱거리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인간은 이기적인 동기가 있어야만 발전하는 존재일까?
어쨌든 교육열 높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대학 등록금 무료가 계급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환상적인 대안으로 들린다
(늘 하는 말이지만,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일의 숲 이야기는 가슴 설레는 부분이었다
프랑스도 그렇지만 독일도 산이랄 게 없고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이고 울창한 숲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책할 곳도 많고 숲길을 이용한 자전거 정책도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떼제베를 타고 프랑스 시골을 달릴 때 (예약 미스로 야간 열차도 못 타고 비싼 돈 주고 주간 열차 탔을 때) 산은 없고 죄다 들판만 있어 깜짝 놀랜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산 없는 풍경은 상상할 수 없는데, 확실히 유럽은 숲이 바로 우리의 산과 비슷한 정서를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게르만 신화들은 숲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독일인들은 녹생당까지 만들 정도로 환경 보호에 더 열심인지도 모른다

 

맨 마지막에 실린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 얘기는 가슴이 뜨끔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차관을 빌릴 때 지급보증을 해 준 것이 바로 파독 근로자들의 월급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독일로 떠난 우리의 근로자들이 조국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만 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당시 독일로 떠난 근로자들은, 특히 간호사들은 집안의 유일한 희망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안 들어도 훤할 것이고,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근로 환경은 좀 나았지 않았나 싶은 점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좀 더 선진적인 근로 환경을 제공해야 할텐데 참 부끄럽다
어쨌든 그들의 노고에 대해 고국이 새롭게 그 의의를 되새기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재밌게 읽은 책이다
독일 문화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여다 보면 좋겠다
너무 거창한 기대는 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면 유쾌하게 2시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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