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노란색의 예쁜 표지만큼이나 내용도 훌륭하다
어쩌면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소비형태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시도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자료 의존적이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쓴 책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서구의 유명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친다는 점이 늘 아쉽다

 

소비란 무엇인가?
소비가 단순히 재화의 효용을 없애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 확장된 뜻이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소비라고 하면 흔히 낭비와 연결되어 도덕적으로 나쁜 의미와 연결되기 때문에 더 뜻밖이었다
소비가 곧 위세품, 즉 지위의 과시, 혹은 다름의 표지자라는 것은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소비는 곧 비축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더불어 문화를 발전시키며 공동체 사회에서 정을 베푸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예의범절이나 선물이라는 것도 사실은 비합리적인 소비처럼 보이나 사람들간의 정을 표현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행위들이다
또 예술품이야 말로 먹고 사는 데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 지극히 소비적이고 낭비적인 사치품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 부르고 인류가 이룩해 온 고귀한 정신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야, 즉 내일을 위한 비축품 (여기서는 이걸 낭비로 부른다)이 든든해야 비로소 고차원적인 것, 즉 예술 (이것도 역시 낭비로 볼 수 있다) 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치를 상류계급의 지위추구로만 본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론은 절반만 맞는 셈이다
또 크게 보면 소비 혹은 사치, 낭비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 중 하나다

 

이 책에서는, 진보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부르주아적인 명성과 소비를 누리는 좌파 지식인들을 비꼰다
"혁명을 팝니다" 에서 비판한 반문화와 비슷한 개념이다
또 끊임없이 남과 다른 차이, 차별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보면, 좌파 지식인들의 평등 이론이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어 조기 교육이 대표적인 예다
영어가 힘인 사회에 살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은 조기 유학을 보내 자녀를 네이티브 스피커로 만든다
반면 없는 집 애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사회의 하위 구조를 형성한다
계급이 대물림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리를 끊어야 할까?
저자는 영어 조기 교육을 공교육에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어 사대주의니 민족 자주성이니 운운하면서 공교육의 영어 조기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조기 유학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의 자식들을 계속 하층민으로 고정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다

 

저자는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을 들어 미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소비는 상류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매고 있는 루이비통 가방을, 조금만 애를 쓰면 평범한 한국의 직장 여성도 얼마든지 맬 수 있다
물질의 소비가 특정 계층의 차이 표지 기능을 상실해 가기 때문에 상류층은 문화의 소비를 통해 다름을 드러낸다
더구나 이 문화적 감식안이란 것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교육과 훈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교양이나 예술적 심미안 등은 어려서부터 고급 교육을 받아 온 전형적인 상류층의 가장 훌륭한 표지자 노릇을 할 수 있다
벼락부자 보다 재벌 2세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갑자기 떼돈을 번 사람은 문화적 우월성을 누리기 힘들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고급 문화를 익히고 교양과 매너 등을 몸에 익힌 재벌 2세는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죄다 재벌 2세가 차지할 수 밖에!!

 

그래서 부르디외는 계급의 차이를 줄이는 방편으로 미술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비단 미술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 인문학 전반의 교육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즉 공교육에서) 인문학 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면, 즉 예술을 향유할 능력을 기른다면 지식과 문화라는 상징자본이 계급성을 띄게 된 오늘날 (또 물질적 소비가 거의 평등해져 버리기도 한) 계급적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고 강조한다
수요일 하루는 학교에 가지 않고 루브르 미술관에 모여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프랑스 초등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나 역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무리인 것 같다
우선 한국 상류층의 표시가 과연 미적 심미안, 예술적인 감각인지 의심스럽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상징자본이 한국 사회에서 위세품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클래식 음악은 고사 직전이라고 징징대고 출판의 위기는 어떻게 왔는가?
상류층이 되기 위해 명품을 구입하듯 상류층으로 보이기 위해 인문학도 열심히 추구해야 할 게 아닌가?
하다못해 지적 허영심을 과시하기 위해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교양강좌라도 나가고 의무적으로라도 음악회나 미술관에 가야 할 거 아닌가?
상류층처럼 보이기 위해, 혹은 상류층을 지향하기 위해 열심히 루이비통 가방은 사들이지만 (한 달간 라면만 먹더라도 말이다) 비싼 음악회에 가거나 책을 사기 위해 굶는다는 사람은 못 봤다
오히려 책 많이 읽는다고 하면 구식케케먹은 사람, 쿨하지 못한 사람, 따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 사회에서 프랑스의 상징 자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그렇지만 학교 교육에서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교육을 강조하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계급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나 역시 단순한 암기 위주가 아니라, 실제로 예술을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현장 교육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일주일에 하루 쯤은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면 얼마나 신나겠는가!!
상징 자본의 소유가 위세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죽은 학문이 아니고 계급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훌륭한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소비 성향과 그 의미를 분석한 훌륭한 책이다
비단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소비는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소비를 죄악시 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욕구,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구) 를 부정하는 피상적인 고찰일 뿐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보는 기분이 든다
더불어 위선적인 이른바 진보 지식인에 대한 일갈도 일면 시원한 구석이 있다
(아마 불편해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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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8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6-11-0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백수라서 시간이 많아요...
문화 때문에 옷 못 사 입는 사람이 바로 저 같은 부류인데 (아주 심한 건 아니지만) 책에서 나온 것 같은 상징자본으로 생각되기는 커녕 어설픈 인문주의적 성향 때문에 놀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