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 조희룡 - 19세기 묵장의 영수 테마 한국문화사 12
이선옥 지음 / 돌베개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세기 여항 문인의 대표격인 조희룡에 관한 연구서다.

꽤 많은 그림들이 전해오는 듯 하다.

좋은 도판으로 실컷 감상했다.

김정희에게 난 치는 법 등을 배웠으나 궁극적으로는 전혀 다른 미감을 선보여 과거에는 경시되었으나 최근 19세기 중인 예술가들이 주목받으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호산외기>라는 중인 전기를 남겼고 그 외 다수의 문집이 있다.

김정희와의 친분 때문에 3년이나 임자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김정희가 이른바 서권기 문자향이라는 정신을 강조한 반면, 조희룡은 수예론이라고 하여 예술적 재능을 중시했는데 매우 현대적인 예술관 같다.

1789년생이라면 다비드나 앵그르 같은 신고전주의 시대 화가들과 비슷한 연배이니 화가가 단순한 기예가 아닌 예술 그 자체로써 인정받던 서구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매화를 매우 즐겨 그렸고 홍매대련도나 매화서옥도 등은 은은한 색채와 어울어져 정말 매혹적이다.

매우 부유했다고 자주 언급되는데, 뭘 해서 재산을 모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 궁금하다.

얼마 전에 읽은 현재 심사정은 사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나가지 못해 평생을 궁핍하게 살아 집 근처를 떠나보질 못했다고 했는데 조희룡은 비록 유배로 좌절됐으나 중국 방문 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희를 통해 청나라의 문화사조를 받아 들였고 자기화 시켜 예술 세계를 넓혀 나갔는데, 교류가 매우 제한적인 당시 상황이 재능있는 예술가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인상깊은 구절>

320p

그동안 감정 있는 사람들과의 부대낌에 지쳤는지, 조희룡은 감정 없는 사물과의 사귐을 참다운 사귐이라고 하였다. 그가 사귐을 맺은 사물들이란 벼루, 붓과 같은 문방구나 서화, 골동품, 매화, 난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과의 애틋한 조우의 순간을 시로 쓰거나, 그간 자신이 즐겼던 시와 그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그는 강가에 거주하며 맑게 수양하는 삶을 살았다. 책상머리에는 <유마경>을 두고 날마다 향을 피우고 반복해 단정히 외우느라 속세 사람과 더불어 쓸데없는 말을 언급할 겨를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잡념을 끊고, 득실을 한결같이 보고, 영예와 모욕을 잊은 채, 여유 있고 한가롭게 애오라지 한 생애를 마쳤다." 그는 그렇게 78세의 수를 누렸다.

323p

조희룡이 십여 년 전 금강산 유람 중에 여러 명스오가 이름 없는 언덕들을 보고 깨달은 바를 <이향견문록> 서문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그는 이름난 봉우리와 이름 없는 언덕들 중에서도 빼어난 것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단지 미처 잘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인 것이다.

334p

시서화를 두루 잘하는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조희룡의 일생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부러운 삶이다. 그러나 신분의 차별이 분명했던 조선시대에 낮은 벼슬의 어중간한 양반으로서 지배 양반의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는 그 나름대로의 억울함과 분노로 괴로웠다. 그러나 문인 예술가였기에 그는 글로 써 기록하였다. 그의 분노는 시가 되고 그림이 되어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