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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 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
안창모 지음 / 동녘 / 2009년 12월
평점 :
덕수궁 전각 소개 정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알차다.
덕수궁은 가장 최근에 지어진 일종의 근대식 건물이기도 해 대한제국의 역사와 함께 한 궁궐이라 생각보다 이야기꺼리가 많다.
막연히 덕수궁이라고 하면 임진왜란 이후 월산대군 사저가 임시 거처로 쓰이고 고종이 아관파천 후 머물렀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한제국 천명 이후 수난의 근대사와 함께 했음을 새삼 알게 됐다.
궁궐을 지을 당시 역사적 상황과 건축 과정을 잘 버무려 흥미롭게 풀어낸다.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잘 읽었다.
다만 "백성에게 군림하지 않고 백성의 삶 한가운데 자리 잡은 궁궐이 바로 대한제국의 황궁인 경운궁이었다. 고종이 민국을 지향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국체는 제국의 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향하는 바는 민국에 있었고, 제국으로서 민국을 지향한 대한제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라는 식의 막연한 평가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취임한 것이 백성에게 군림하지 않았고 민국을 지향했다고?
대한제국은 명백히 황제의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전제군주제였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과는 이름만 똑같을 뿐이다.
이런 식의 근거없는 역사적 평가는 비전공자의 한계인가 싶다.
궁궐 건설하고 10여 년 만에 식민지로 전락했으니 냉정하게 보면 황제국이 되는 의례적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국력이 소진됐을 것인가.
문화유산으로서 덕수궁은 소중하나 역사적 주체들에 대한 평가는 좀더 엄정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235p
고종 초기에 대원군이 집권하며 경복궁 중건 사업을 벌이면서, 경희궁의 전각이 경복궁 중건에 사용된 것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 동안 풍수지리적으로 왕기가 서려있어 한일 병합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경희궁 터에 경성중학교가 세워졌다는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오류>
49p
협소한 행궁을 넓히기 위해 계림군(성종의 셋째 아들)의 집을 행궁에 편입하였다
->계림군 이유는 월산대군의 손자로, 성종의 아들인 계성군의 양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