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민의 한양읽기 : 궁궐 상 홍순민의 한양읽기
홍순민 지음 / 눌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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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편 격인 도성 편은 실록 내용을 그대로 편집해 놓은 것 같아 지루했는데 궁궐 편은 아주 재밌다.

단순히 궁궐의 구조나 전각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궁궐을 조성할 당시 사람들의 사고체계나 상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함으로써 서문에 나온 저자의 말처럼 입체적으로 조선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듯 하다.

궁궐의 외형에 관한 책은 너무 많이 나오고 인터넷 검색만 하면 무수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궁궐이 어떤 사상이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지어졌는지,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의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지식 같다.

흥미진진하게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궁궐을 방화한 것이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처럼 백성이 저지른 게 아니라 왜군, 특히 가토 기요마사의 짓이다고 추정해야 식민사학의 극복인가는 동의할 수 없다.

그 외 심증만으로 경운궁 화재를 러일전쟁 당시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에 의한 방화라고 의심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외 부분은 궁궐과 그 안에서 삶을 영위했던 옛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했다.

특히 부록으로 실린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정의는 쉬우면서도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육십간지의 앞 글자인 간에 해당하는 글자를 숫자 4부터 대입하면 맞는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역사를 워낙 좋아하고 연대를 외우면 비슷한 시대의 사건들을 같이 공부할 수 있어 어지간한 사건들의 발생년도는 거의 외우고 있긴 한데 (심지어 화가들의 생존 연대도 외우고 있다) 이 법칙에 맞춰 보니 힘들여 외울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갑신정변은 간지인 갑이 숫자 4와 대응하니 1884년, 을미사변은 다음 숫자인 5와 대응하니 1885년, 정미의병은 간지인 정이 네번째이니 7과 대응해 1907년 이런 식이다.

정말 신기하다.

빨리 하권을 읽어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116p

우리 문화가 여러 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까닭에 중국 문화와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149p

건물을 이해하고 그 느낌, 아름다움을 감상하고자 할 때 너무 부분에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전체적인 인상, 느낌을 잡아야 한다.

172p

이중환은 당시 세력을 잃은 남인 계열에 속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야인으로 지냈다. 택리지는 그의 주요 저작으로 풍수적 자연지리를 넘어 인문지리서로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한 책이기는 하지만 택리지 역시 한 개인의 저작으로서 야사가 안고 있는 자료적 한계가 간간히 눈에 뜨인다. ... 역사적인 진실은 믿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176p

자신의 의견으로는 찬성이지만,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매우 조심스럽고 다소 무책임하다고 할 태도였다. 하륜 같은 사람이 그토록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무학이 그런 태도를 취했던 것은 당시 불교의 형편과 그의 처지와 관련이 있다.

208p

비변사에서 계를 올려 아뢰었다. " ... 지금 왜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고 전국이 텅 비고 고갈되어 있어서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궁궐을 짓는 일은 지금 할 일이 아니며 사람들의 마땅치 않게 여길 것입니다."

214p

그 이전에도 터를 정하고 건물을 짓는 데 이러한 설들을 참고한 경우가 자주 있기는 하였지만, 그보다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신료들의 판단이 주를 이루고 그러한 풍수설, 길흉설 등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보조하는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광해군 7년 이후 크게 벌어졌던 궁궐 영건 사업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술사들의 의견이 주류를 이룰 정도였다. 

250p

헌종 연간에 이미 흥선대원군은 종친의 핵심 인물이었다. 다만 왕권이 극히 약했던 그 시기 종친의 위상 역시 보잘것없었기에 종친의 핵심이라 해도 별 영향력은 없었다. ... 흥선대원군이 권력에 접근하게 된 일차적인 계기는 임금의 생부라는 자격을 매개로, 고종을 임금으로 결정한 대왕대비 신정왕후와 결탁한 것이었다. ... 경복궁 중건을 위한 이 영건도감이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는 기반이 되었다. ... 경복궁 중건 사업을 통하여 임금의 권위가 높아졌다기보다는 흥선대원군의 실권이 커졌다. ... 흥선대원군의 실각은 이러한 고종의 정치적 성장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292p

사랍답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후대로 이어지고 그렇지 못한 것은 사라진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쌓여서 문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축적되는 속성을 갖는다. ... 문화는 그 문화가 빚어낸 삶의 꼴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구속력을 갖고 있다.

298p

문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설정하는 인간 집단은 민족이라고 하겠다. 민족이란 어떤 집단인가?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흔히 언어라고 말한다. ... 같은 말을 쓰면서 같은 공간에 모여 살다 보면 하나의 정치 체제, 달리 말하자면 한 국가를 이루게 되고, 자연히 서로 물자를 사고 팔면서 비슷비슷한 소비 생활을 하는 경제권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살아가는 모습, 곧 생활 습관이나 풍습을 같이 하게 된다. 그 안에서 혼인 관계를 맺고, 그 결과 혈통을 공유하고 비슷한 외모를 갖게 된다. 이렇게 어느 정도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면 다른 집단과는 구별되는 "우리" 의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 집단이 민족이다. 

300p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을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진 것으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며, 사회의 문화적 전통의 일부로, 인위적인 것들이 주가 되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304p

안목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안목의 출발점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 직접 현장에 가서 답사를 하면 느낌이 생기게 마련이다. ... 이렇게 관심이 안목의 출발점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새로운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안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과 느낌에 뒤이어 이해가 따라야 한다. 관심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면 그것에 관해서 온갖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 안목은 관심과 느낌에 더하여 정보와 지식을 밑거름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느낌과 지식은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과 지식을 키우고, 그것이 쌓이면 자기 나름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느낌과 지식이 어우러진 인식이 생겨난다. 인식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안목이 제대로 서게 된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여행을 가서 느낌이 생기면 제대로 알기 위해 돌아와서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쌓는다. 그러면 여행지에 대한 관심과 느낌이 지식으로 배가되어 인식의 외연이 확장되고 그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이번에 교토를 다녀온 것도 그렇다. 유홍준씨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교토편을 보면서 교토의 문화재에 관심이 생겼고 직접 가서 보고 많은 느낌을 갖게 됐으며 다시 돌아와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아, 그 때 봤던 게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깨닫고 있다. 나는 아직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체계를 갖추는 인식의 상태까지는 못 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 자체가 삶에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다)


<오류>

102p

제용감, 내자시, 사섬시 등 왕실에서 쓸 물품을 조달하는 관서들이

->사섬시가 아니라 내섬시다.

220p

인조는 자신의 잠저인 이현궁으로 옮겼다가~

->인조의 잠저는 상어의궁이고 이현궁은 광해군의 잠저였다. 반정으로 폐한 뒤 인조는 자신의 어머니 연주부부인을 이현궁으로 모신 후 계운궁이라는 궁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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