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메이드의 일상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41
무라카미 리코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번역된 책을 보면 주제의 다양함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리고 서양에 대해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견당사를 보내서 중국 문화를 흡수하던 역사가 생각난다.

한국도 서구 지향적이긴 하지만 이런 미시사를 보면 역시 비교가 안 된다.

앞서 발간된 <영국 귀족의 생활> 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주고 내용도 알차다.

제목이 좀 자극적이라 가벼운 내용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다.

빅토리아 시대의 최하층 노동 계급이라 할 수 있는 하녀들, 이른바 메이드에 대한 드문 고찰이라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보면 호텔 접시닦기의 끔찍한 생활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접시닦기라는 직업은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극소수의 우아하고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운 일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노동 조건 속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공산주의가 실패하긴 했지만 당시 상류층과 노동계층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공산주의 이론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한국도 60,70년대 배경 드라마를 보면 가정부가 흔하게 등장한다.

인건비가 싸고 젊은 여자들이 달리 일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메이드로 일했을 것이다.

요즘도 워킹맘이 베이비시터와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긴 하지만 인건비가 너무 올라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다.

확실히 19세기와 20세기 초를 지금 시대의 눈으로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6p

상류계급은 원칙적으로는 노동과 돈과 관련된 일에는 손을 대지 않고,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이나 이자를 받으면서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교나 스포츠나 자선, 국회의원이나 치안 판사 등, 공공을 위한 무상의 명예직에서 시간을 소비했다.

55p

<자기가 먹을 건 자기가 벌자>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자> 이것이 소녀들이 메이드가 되는 최대의 목적이었다.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항시적으로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는 삶을 강요한 데다가 아이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은 불안정했으며, 가족 모두가 조금이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곧바로 일을 하는 게 당연했다.

58p

공장, 가게, 오피스 등 새로운 직업은 돈으로 맺어진 근대적인 계약관계다. 명확한 근로시간, 행동의 자유도 보장되었다. 메이드도 고용 관계와 금전을 바탕에 두고 있긴 했지만, 옛 시대의 주종관계 인식이 사라지지 않아 심신이 같이 구속되는 일이었다.

79p

나는 스컬러리 메이드가 어떤 일을 하는 잘 알고 있었다. 인종 중에서 최하층의 존재 -모든 사용인의 찌꺼기, 사용인의 사용인. 그리고 영원한 scapegoat인 것이다.

95p

특히 자주 인용한 구절은 불공평하게 보이는 이 세상도 신이 정한 질서 안에 있다며, 주인의 권위를 강화하고 아랫사람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05p

레이디들은 소녀 시절부터 <비천한 노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란 탓에 요리의 기초도 몰랐다. 그러한 그녀들이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만약 <신의 질서>에서는 자신이 위에 있다고 믿는다 해도, 몸뚱이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기술을 가진, 가족의 식생활을 쥐고 있는 요리사에게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권력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113p

자신은 가족의 일원이며, 마님의 일부이자, 그리고 인생이라는 표현의 공동제작자이다. 불합리한 중노동을 불평하지 않고 생애를 바친 상급 사용인들은 이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170p

<90년대 초에 생활 형편이 조금 나아질 일이 생겼다. 주급이 15실링으로 오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물가도 오르고 가지고 싶은 것도 늘어서 약간 오른 수입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 이 시기에는 물가가 상당히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실생활은 여전히 어려웠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아이들이 많았고, 유아사망률도 높았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무사하게 자란다면 아이들이 일손을 도아주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때문에 메이드들이 얼마 되지 않는 급료를 처음으로 손에 넣으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본가로 용돈을 보내는 일이었다. 특히 돈을 벌어야 하는 아버지가 실업을 반복하는 경우, 일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본가의 가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175p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중류계급의 여주인은 경험이 없는 여성을 일정 기간 고용하고는 해고하는 식으로 지출을 억제했지만, 유복한 고용주들은 경험이 풍부한 성인 사용인을 높은 연봉으로 붙잡아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234p

활자 문학의 세계에서는  <사용인을 유혹하는 주인님>을 그린 작품들이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는가 하면, 총체적으로 봤을 때 메이드들이 교제했던 상대는 같은 계급인 남성이 많았다. 따라서 문학에 쓰인 것처럼 어느 집에서든 당연한 듯 만연한 <악덕>은 아니었던 것 같다. ... 현실은 로맨스 소설처럼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시골의 메이드가 백작부인이 되거나 사냥터지기의 딸이 공작과 맺어지는 일은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46p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관대하게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다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즉 대다수 메이드들이 나고 자란 전원지대에서는 정해진 상대와 결혼을 전제로 충분한 교제기간을 거친 다음, 아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결혼을 결심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었던 듯하다.

249p

동화에서라도 나올 것 같은 <신데렐라 결혼>처럼 보이지만, 옛날 이야기와 달리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참한 데어리 메이드였던 과거를 가진 <레이디 페더스턴하우>는 풋맨에게 조소를 당했는데, 해리 경은 그를 해고했다. 하지만 집안에서라면 몰라도 사교계의 구석구석까지 그의 위광이 미치지는 못했다. 사냥터지기에게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한 걸까?>라며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 레이디스 메이드인 내니트 호킨스를 애인으로 삼아 동거하다가 이윽고 1792년에 결혼한다. 사교계는 계급사회의 질서를 깨부순 준남작 부부를 거절했고 그 또한 세상을 거부했다.

265p

<만약 한 번 코스가 결정되면,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러면 안 돼.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야 해>

269p

하급 메이드는 결혼함과 동시에 퇴직했으나, 상급 사용인의 대다수는 독신으로 남아 일에 전념했다. ... 특권이 늘어나면서 만족도가 높아져, 결혼보다 일을 우선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심리. ... 이 가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노후의 안정을 위해 저금하고, 작은 집을 사는 것이 커리어를 선택한 그녀들의 유일한 목표였다. ... 대다수가 오래 일하면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는 내용으로, 여주인을 험담하는 내용은 아주 적었다고 한다. 신경을 써주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지탱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74p

특히, 사용인계급의 최상층으로, 귀족이나 지주의 대저택에서 일하던 상급 사용인들은 주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계급사회 구조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하여, 주인과 일체화된 시선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 보수적이었던 잉글랜드 귀족은 사용인을 보석처럼 다루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들이 마치 '쁘띠' 상류층(snob) 행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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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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