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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정유경 지음 / 시공사 / 2017년 10월
평점 :
유럽 왕조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게 바로 엘님의 블로그다.
자료가 방대하고 복잡다단한 유럽 왕조의 혈연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분이 책을 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과연 두 권째 출간이 돼서 반가운 마음에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1권은 블로그 글보다 밀도 면에서 떨어지는 듯 하여 아쉬웠는데 두 번째 책은 훨씬 잘 만들었다.
잘 몰랐던 중세 시대 유럽 왕조사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도판도 많이 실려 보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덴마크와 독일의 영토 싸움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이나 티롤이 합스부크르 가문으로 귀속되는 과정, 시칠리아 왕국 등에 대해 새롭게 알게 돼서 기쁘다.
프랑스인으로서 느닷없이 스웨덴의 군주가 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왕가의 조상이 된 나폴레옹의 군인이었던 베르나도트, 즉 칼 14세 요한의 이야기도 정말 흥미롭다.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누이인 마거렛 튜더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에게 시집가 제임스 5세를 낳고 손녀인 메리 튜더가 태어난다.
메리 튜더의 할머니인 마거렛은 남편 사후 아처볼드 더글러스와 결혼하고 여기서 낳은 딸이 마거렛 더글러스인데, 그녀가 시집가서 낳은 아들이 바로 메리 튜더의 남편인 단리경이다.
이 부부의 아들이 바로 제임스 1세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군주가 되니 이들 모두는 헨리 7세의 자손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왜 뜬금없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의 왕으로 지명했나 했더니 헨리 7세의 딸인 마거렛 튜더의 결혼에 의해 모두 한 자손이 됐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내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내공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104p
당시 친족 간 결혼이 많았던 이유로는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여성 계승자를 인정하는 관습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베리아 반도는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남성 위주의 상속법인 '살리카법'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지역이었으며, 오랜 기간 이슬람 세력과 투쟁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여성 후계자들에게도 왕위 계승권을 인정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세 시대에는 여성의 권리가 남성 보호자에게 귀속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여성이 상속을 받더라도 실질적인 지위는 여성 상속자의 남편에게 돌아갔다.
120p
이사벨은 카스티애와 레온의 여왕이었으며, 중세 시대 많은 여성들과 달리 스스로 국가를 통치했다. 페르난도 2세도 그녀의 남편으로서 카스티야와 레온의 국왕이었지만, 이사벨은 남편과 동등한 군주로서 통치했다는 점이 이전의 여왕들과는 달랐다.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는 숙원 사업을 이룬 두 사람에게 교황은 '가톨릭 공동 군주'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194p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은 나폴레옹 시대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유능한 임눌들이 엄청난 위치에 올랐으며, 많은 군인들이 나폴레옹의 의지로 군주나 귀족이 되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은 나폴레옹의 의지가 아니라 스웨덴인들의 선택에 의한 일이었다. 모두 베르나도트 자신의 경력과 운 덕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 시대에 가장 출세한 인물은 바로 나폴레옹과 마찰을 빚은 베르나도트였다. ... 하지만 칼 요한은 철저히 스웨덴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그는 나폴레왕과의 관계를 끊었으며 동맹군의 일원으로 행동했다. 이 벅분에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어느 정도 확고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칼 요한은 스웨덴의 군대를 이끌고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켰던 모국 프랑스의 영토로 진격했다. 당대 많은 프랑스인들은 베르나도트가 그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여기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배신감도 느꼈다. 하지만 옛 영광을 회복하고 싶어 하던 스웨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열광할 만한 일이었다.
257p
하지만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크나큰 대가가 필요했다. 주변 국가의 분쟁에 장기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전쟁을 자주 치르려니 군비가 엄청나게 들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세금의 상당 비율을 늘 군비로 사용했다. ... 게다가 왕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 이를테면 거대한 기념비나 건축물을 짓는 사업이나 권위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벌이는 호화로운 파티 같은 것들은 군비보다 낮은 비율이긴 했으나 훨씬 더 직접적으로 국민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344p
러시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상을 가진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하지만 레닌 등이 꿈꾸었던 이상적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이 그렇게나 혁명으로 바꾸려 했던 차르의 국가와 매우 닮아 있었다. 특히 일당 독재 체제를 근간으로 하기에 제정 러시아와 크게 유사했으며, 권력을 위해 자유를 억압했던 정황조차도 닮아 있었다.
<오류>
36p
로베르 1세의 적자들, 사실상 윌리엄보다 더 강한 계승 권리가 있다고 여겨진 숙부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맥상 로베르 1세의 형제들, 혹은 리샤르 2세의 적자들이 맞을 것 같다. 정복왕 윌리엄은 로베르 1세의 외아들이다.
123p
포르투갈에서는 이사벨의 시아버지였던 주앙2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마누엘이 마누엘 1세로 즉위했다.
->마누엘 1세는 주앙 2세의 동생이 아니라 매제이자 사촌이다.
173p
티롤의 마르가레테가 쫓아낸 남편 요한 하인리히는 프랑스 국왕의 조카였고~
->요한 하인리히의 누나 본 드 룩셈부르크는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왕비였다. 그러므로 프랑스 국왕의 외숙이던지, 프랑스 국왕의 매제가 맞다.
416p
아흐메드 1세의 손자였던 술탄 이브라힘이 후의 시대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브라힘 1세는 아흐메드 1세의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