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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 같은 생애
김복래 지음 / 북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위키 백과 덕분에 좀더 자세히 유럽 왕실에 대해 알게 된다.
프랑스 왕실 소개 책은 흔치 않아 이 책이 유용하긴 한데, 의외로 소소한 오류들이 많다.
프랑스 근세 왕실의 시작인 프랑수아 1세부터 루이 16세까지 발루아와 부르봉 왕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 쓴다.
<인상깊은 구절>
25p
프랑스의 직물짜는 가난한 여공은 국왕의 석방을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그 분은 만인이 우러러보는 우리의 사치품이야. 우리는 오직 그 분을 통해서 꿈을 꿀 수가 있지!"
257p
공화주의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누려온 특권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 소식이 왕실에 전해졌을 때, 왕비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교회, 교회, 그 다음은 바로 우리 차례일거야!"
258p
마리 앙투아네트의 절친한 친구였던 랑발 공비도 체포되었다. "왕비에의 충성을 부인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공비가 이를 거부하자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여러 번 쇠망치로 후려쳐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262p
왕비는 카페 왕조의 창시자인 위그 카페의 이름을 따서 지은 '카페의 과부'란 별명을 얻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마리 앙투아네트'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단순히 '앙투아네트 카페' 또는 '죄수 280호'라고 불렀다.
267p
영국 등 유서 깊은 유럽 왕가를 언급하는 경우에 국민들은 아직도 한결 같은 애정과 존경심을 표시한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 유럽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는 신성성의 존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케케묵은 왕권신수설의 신봉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의식 저변에는 왕국의 번영을 위해 신이 무엇인가 역사를 하리라는 내재적인 신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동의와 국민의 애정으로 한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왕국의 여명기부터 위대한 신이 직접 손으로 그들을 축성했다는 것, 또 국민이 그것을 알고 인정했다는 암묵적 동의를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 16세의 죽음은 '성속의 분리'를 위한 상징적인 피의 제식이며, 또한 세속적인 계약의 전주곡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혁명 재판정에서 공화정의 시민들은 가장 증오의 대상이었던 왕비를 마음껏 비웃고 욕하며, 기독교 왕국이 '탈신성화'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오류>
16p
"루이 12세는 곧 마음을 바꾸어, 자기 사촌인 프랑수아와 혼인시키기로 작정했다."
->루이12세와, 프랑수아 1세의 아버지인 샤를 드 앙굴렘이 사촌이다. 그러므로 프랑수아 1세는 루이 12세의 사촌이 아니라 5촌 조카이다.
53p
"카트린 드 메디치는 교황 레오 10세의 조카딸이기도 했다."
->카트린은 레오 10세의 조카손녀이다.
{"mean":["de1<br></br>[전치사]\n\t\t 「…에서[부터]; …에 대하여」의 뜻","de2<br></br>[전치사]\n\t\t 「…의; …에서; …에 속하는」의 뜻","de<br></br>[전치사]\n\t\t from, of의 뜻(*모음 앞에서는 d’)(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인명에 많이 쓰이며, 원래는 출신지를 나타낸다).","DE<br></br>[미] [우편] Delaware; [미해군] destroyer escort","D.E.<br></br>defensive end; Doctor of Engineering; driver education","des-<br></br>[접두사]\n\t\t DE-","부관\n \t\t\t副官<br></br>(군대의 참모 장교) aide-de-camp","배후 세력<br></br>de facto power","전속 부관<br></br>an aide-de-camp","별로 강조되지 않다<br></br>be[get] de-emphasized"],"word":"\n\t\t\t\t\t\tde1\n \t\t\t\n\t \t\n\t ","soundUrl":"http://dic.dn.naver.com/v?_lsu_sa_=3f784f5fed093666f592c19c313443f1dd9767d55c030f4062327a74bbfa67f1c45a67bd66059c7c590f6175b82f30422abb3b6baf03ef28dc58d6dceb461362d0e8c1be0116a33058ef8404690da403edf16bb3002203323cf96aca3acb51061d0f353d5448238b1695d0ad3718d357406f27d6975da148f067b47db8ba0e0d","phoneticSymbol":"[di,də]"}
60p
"어머니가 작고한 나바르 국왕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마리 드 클레브는 앙리 드 나바르 어머니인 잔 달브레의 조카가 되었다"
->마리 드 클레브의 어머니인 Marguerite de Bourbon은 1516년생, 나바르 국왕인 앙투안 드 부르봉은 1518년생으로 국왕의 여동생이 아니라 누나다.
97p
"앙리 3세는 그가 아끼는 총신이며 매제이기도 한 주아이유즈 공에게 군대의 지휘를 맡겼다."
->주아이유즈 공은 앙리 3세의 매제가 아니라 동서다. 주아이유즈 공은 앙리 3세의 왕비인 루이즈의 이복 여동생 마르그리트와 결혼했다.
100p
"브레타뉴 지방은 여전히 기즈 공과 마이옌 공의 동생인 메르쾨르 공작 필립 엠마누엘 드 로렌의 손아귀에 있었다."
->기즈 공의 동생이 마이옌 공이고, 메르쾨르 공작 필립은 이들과 6촌 관계다. 필립은 앙리 3세의 왕비인 루이즈의 이복 남동생이기도 하다.
178p
"멘 공작은 국왕과 멩트농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중 하나였다."
->멘 공작은 몽테스팡 후작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멩트농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던 듯 하다.
189p
"부르고뉴공은 손아래 형제가 둘이나 있었다. 바로 필립과 앙주공이다."
->루이 15세의 할아버지인 부르고뉴공의 형제가 바로 앙주공 필립과 베리공 샤를이다.
196p
"마리아의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는 1704년 폴란드 국왕에 즉위했다. 스위스 국왕 샤를 12세가 폴란드 영토를 점령하여, 1709년 스타니슬라우스는 권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스웨덴의 칼 12세가 폴란드를 침입하여 스타니슬라우스를 왕위에 세웠고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의 후원을 받은 아우구스투스 2세가 폴타바 전투 이후 다시 왕위에 올랐다.
195p
"섭정 오를레앙 공이 사망한 후 실권자가 된 부르봉 공은 젊은 국왕의 건강을 몹시 염려했다."
->부르봉 공이 도대체 누굴까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루이 앙리 1세 콩데 공이다. 콩데 공보다는 부르봉 공이라는 명칭을 더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긴 하다.
264p
"프랑스 혁명에 대항하여 싸우려던 레오폴드 3세가 그만 암살을 당하는 뜻하지 않은 비운이 생겼다."
->암살당한 이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