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케하라 마모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이 책의 제목이 왜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 인지 모르겠다
제목이 하도 선정적이길래, 개념없이 쓴 이른바 추악한 한국인 따위의 책인 줄 알았더니만, 왠걸 굉장히 점잖고 나름대로 수준있는 책이다
논리구조를 갖추었고, 막연한 편견에 근거한 책은 아니다
더구나 한국에서 26년을 살았으니 일본 특파원 몇 년 하고 두 권이나 책을 낸 전 모씨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품절된 책을 굳이 구해서 읽은 까닭은,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였다
얼마 전 프랑스 기자가 쓴 한국인 관련 책을 읽어 보기도 했는데, 정작 가장 대립 관계에 있는 일본인은 한국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제목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이라고 붙였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출판사의 선정성에 화가 난다
이렇게 점잖은 비판을 두고 몰매를 때릴 한국인이 어딨겠는가?

 

대체적으로 외국인이 비판적으로 바라 본 한국인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가족 이기주의, 입시열풍, 학벌위주의 사회, 부정부패, 공공질서 의식 부족, 빨리빨리 근성, 끼리끼리 문화,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신의 부재, 체면 문화 등등 굳이 외국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역시 충분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병폐들이다
강준만이 쓴 "한국인 코드" 와 거의 일맥상통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은 비슷하다는 평소 생각에 비춰 볼 때 반드시 한국인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한국 사회가 갖는, 특히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 문화의 독특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 성장이 안정화 단계에 진입하고 더 잘 살게 되면, 사회 성숙도 역시 점차 올라 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크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어느 정도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가장 큰 특성은 가족 제일주의다
사회복지가 낮기 때문에 무슨 일이 터지면 사회가 일정 부분 책임져 주는 대신, 거의 모든 피해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척박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나서서 어느 정도는 보호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보증이 아닐까?
국가가 해 줘야 할 버퍼 시스템을 한국에서는 가족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제 가족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난민 돕자고 하면, 우리나라 가난한 사람이나 도와라는 식으로 세계인으로써의 보편적 동정심이 없는 것도 아직은 한국인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독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하고 결혼을 개인 대 개인의 결합이 아닌, 집안끼리의 동맹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핏줄에 대한 집착이나, 입양을 꺼리는 문화, 독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가족주의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은 학벌 문제와 연관시켜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저자는, 입시 교육을 비판하고 수험생을 왕같이 모시는 가족이나 사회를 비판했는데 출신대학이 향후 50여년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가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김상봉은 "학벌사회" 라는 책에서 학벌이 비단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 간단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재벌과 더불어 하나의 사회적 계급을 형성하는 한국 사회의 큰 병폐임을 이론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이 문제는 미친 교육열풍 따위의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될 성질이 아닐 듯 싶다

 

빨리빨리 문화나 교통질서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반성을 많이 했다
급한 성격이 한국인의 특성이라면 나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운전 중 끼어들기를 하는 까닭도 막히는 도로를 견디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끼어들기 하는 차량을 강도높게 비판했는데 솔직히 얼굴이 뜨거웠다
그래서 나는 운전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차라리 남의 차에 타고 있으면 책을 보던가 음악을 들으면서 아예 잊어버리고 있으면 되는데 내가 운전을 하면, 도로가 막힐 때 정말 인내심이 바닥나는 느낌이 든다
주차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해 주차공간이 없으면 차를 못 사게 만들자고까지 하는데, 꼭 그렇게 강제하지 않더라도 대중교통 이용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골프라는 스포츠의 특성이다
골프 하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만 칠 수 있다는 편견 때문인지 왠지 곱게 안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실 골프 중계방송을 보면 의외로 재밌다
특히 박세리 때문에 한창 TV에서 여러 경기를 중계해 줘서 꼭 LPGA가 아니라 할지라도 날을 새서 며칠간 대회를 관람하기도 했다
저자는 골프가 자질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꾸준한 연습이 필수인 매우 정직한 운동이라고 한다
변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연승을 올린다는 건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고, 그런 의미에서 박세리가 이룩한 결과가 얼마나 큰지 그 가치를 평가해 줘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대체 타이거 우즈는 얼마나 천재인 걸까?
책이 1998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박세리의 메이저 대회 2연승을 크게 칭찬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에 비교하여 타이거 우즈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

 

한국인이 스타 따라하기나 명품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것은 패션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을 가지고 돈을 투자하다 보면 취향은 고급스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명품을 좋아하게 되고, 스타들이 유행을 선도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온 국민이 우르르 따라가는 건 심하지 않냐는 것이다
나도 일리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패션감각이 낮은 사람일수록 무조건 비싼 게 좋은 거고, 명품으로 도배를 해야 멋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올 샤넬처럼 촌스러운 게 없다는 어느 패션 칼럼니스트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일본 방송을 표절할 수 밖에 없는 한국 PD들의 애환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시스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한국의 방송계 사람들을 많이 알기 때문에 그 고충도 이해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본 PD는 1년에 한 편만 제대로 만들면 되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 이른바 작품 수준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비슷한 포맷을 만드는 한국 PD는 매달 한 개씩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품 어쩌고 할 시간이 없다
문화나 시스템이 비슷한 일본 방송을 자연스레 참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표절 문제를 단순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변명할 수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는 일리있는 항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방송계도 한 PD가 자기 작품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제작 여건이 나아지길 기대해 본다

 

제목은 선정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차분하고 새겨들을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에필로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60세를 못 넘겼기 때문에 자신 역시 단명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부분에서는 자못 엄숙함이 느껴졌다
50세 이후부터는 생을 정리하면서 살아 온 자신이 벌써 64세를 넘겼으니 나머지 생은 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자기로써는 굳이 한국인에게 잘 보일 것도 없고, 일본인에게 칭찬받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인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욕먹을 책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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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0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출판사들이 이렇게 얍삽한 제목 안 지었음 좋겠어요.

marine 2006-10-02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겠죠 어떤 분이 추천하길래 읽었는데 프랑스 기자가 쓴 한국인 비판 책과 거의 흡사했어요

마법천자문 2006-10-0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에 조영남 아저씨가 쓴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이라는 책도 있죠. 역시 특별히 색다른 내용은 없는... ㅎㅎ

marine 2006-10-0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