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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
캐런 엘리엇 하우스 지음, 빙진영 옮김, 서정민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좀 의외의 책.
테러리즘 때문에 약간 반감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이슬람 세계는 미국제국주의와 맞서는 고유한 문화와 정치체계가 있다고, 서구의 눈으로 재단하지 말자는 일종의 옥시덴탈리즘 같은 분위기의 책이 대부분이라 생각됐는데 의외로 철저하게 사우디 왕가를 까는 책이다.
이런 책도 미제국주의 기자의 편향된 시선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절대왕정이라니, 어떻게 포장을 해도, 아무리 종교와 민족의 특수성, 자율성 뒤에 숨는다 해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 여기자가 오랫동안 사우디아라비아를 취재하면서 분석한 일종의 르포 같은 책이다.
덜 알려진 세계에 대한 외부인의 피상적인 관찰과는 거리가 먼 양질의 취재기이면서도 시종일관 왕가와 종교지도자들의 근본주의적 자세를 비판해 약간 지루하기도 했다.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청년이 나와 사회복지의 천국이고 집과 생활비를 국가에서 대준다고 자랑했던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주거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사막이니 사람들이 거주할 만한 환경좋은 곳이 드물텐데 좋은 땅은 7000여 명에 달하는 왕자들이 점유하고 있어(국가에서 경비도 서준다) 국민들의 거주지는 고사하고 학교 지을 공간도 부족하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내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보조금 역시 기본 생활은 영위할지 몰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양질의 직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21세기 시민들이 원하는 중산층의 삶을 누리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사우디의 가장 큰 병폐가 바로 극단적인 빈부격차라고 한다.
13개 주의 주지사 중 12명이 왕자라고 하니 저자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가 아니라 사우디 왕가의 사유재산이라고 비난한다.
지금까지는 오일머니로 국민들을 억누르고 있지만 석유 매장량은 한계가 있고 2011년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혁명으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 사우디 왕가의 전제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불안한 실정이다.
여전히 종교경찰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국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
태형이 아직까지 실시되는 나라라는 걸 처음 알았다.
개인의 자유를 종교의 이름으로 억압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민주주의를 신에 대항하는 악마로 여긴다) 21세기 사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국가다.
여성들의 억압은 너무 끔찍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 같다.
종교는 왜 특히 여성을 억압하는가?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간통의 위험 때문에 여성 운전이 금지된 나라이고 검은 아바야로 온 몸을 가려야 외출이 가능한 곳이니 종교가 개인을 얼마나 철저하게 억압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비슷한 맥락의 비난에 직면한다.
남자들이 열심히 일하면 가족을 위해 애쓴다고 칭찬을 받는데, 여성이 직장에 비중을 두면 가정을 등한시 하고 특히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비난한다.
왜 양육의 책임은 여성 혼자서 느껴야 할까?
내가 어렸을 때는 심지어 학교 회장은 남자만 출마할 수 있었다.
학급을 대표하는 반장은 될 수 있어도 학교를 대표하는 회장은 여자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 때에 비하면 한국 사회의 여성 위치가 많이 향상된 게 분명하지만 적어도 육아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부장적이고 여성비하적이며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가 한국 사회와 매우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럼에도 한국이 사우디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유교가 이슬람과는 달리 종교가 아니었던 덕분이지 않을까?
서구가 세상을 주도하게 된 것도 어쩌면 기독교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