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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 그 깊은 역사 - 500년 조선사회를 이끈 정신 ㅣ 조선의 양반 문화 2
권오영 외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4월
평점 :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알찬 내용이었다.
경주 최부잣집, 이런 식의 뻔한 미담 스토리일까 봐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내가 원하던 방향의 깊이있는 내용이라 재밌게 읽었다.
1권인 <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도 같이 읽어 볼 생각이다.
책에서는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조광조의 한양 조씨, 성혼의 창녕 성씨, 남명 조식의 창녕 조씨, 윤증의 파평 윤씨, 가사 문학의 대가인 정철의 영일 정씨, 류성룡의 풍산 류씨 등을 소개하고, 뒷부분에서는 역사적으로는 덜 알려진 임진왜란 당시의 무인 박의장의 무안 박씨,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를 거쳐 근대화에 성공한 여주 이씨 등 10개의 가문을 소개한다.
대부분 고려 말 향반들이 사족과 이족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과거 급제를 통한 중앙 관료화와, 공신전 등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명문가로 자리잡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급제였고, 후대로 갈수록 관직에 나가기 어려워지자 유교적 예를 실천하고 문집을 내고 서원을 건립하는 등의 학문 숭상으로 명성을 얻고 주변 명문가와의 혼인을 통해 향촌 사회에서 기반을 다졌다.
조선 전기만 해도 남녀균분제가 시행되는 시기라 외가나 처가에 정착해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가 많았다.
처가 조카를 양자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17세기로 들어서면서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딸이나 사위는 재산 상속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처가 쪽 정착도 어려워졌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