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로 지은 경복궁 - 동양 미학으로 읽다
임석재 글.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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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건축가라서 고건축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성리학에 대한 이야기다.

접근이 신선했고 조선이 성리학적 질서로 어떻게 운영됐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성리학적 이념이 국가 전체를 지탱했던 것 같고, 그것이 심화된 게 예송논쟁이었구나 싶다.

아쉬운 점도 많은 책이다.

일단 너무 두껍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중언부언이 많고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 한다.

870페이지라는 분량의 30% 정도는 줄여도 충분할 만큼 동어반복이 많다.

글쓰는 스타일이 원래 만연체로 반복하는 것 같은데 하여튼 너무 늘어지는 게 단점이다.

맨 첫 챕터에서 주례에 나온 궁궐의 건축원리인 5문 3조에 너무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글이 많이 늘어졌다.

한국 뿐 아니라 유학의 발상지인 중국마저 고대 궁궐 건축의 원리를 정확히 구현하기 힘들고 또 수천 년 전의 원리를 어떻게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하겠는가.

변형이 당연한데 그 원칙을 경복궁이나 자금성 같은 궁궐에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바람에 분량이 한없이 길어졌다.

대략 이런 원칙에 맞춰 지어졌다고만 해도 충분할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왜 조선의 궁이 규모가 크지 않고 전반적으로 사대부 문화가 담백했는지 이해가 됐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성리학의 발생지인 중국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성리학을 국가 운영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내제화 시켰던 나라였다.

단순히 경제력 차이 때문에 중국처럼 규모가 큰 궁궐을 짓거나 화려한 도자기를 굽지 못했던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화 자체가 그런 사치 풍조를 지양하고 검소와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에 문화 또한 과시적이기 보다는 담백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나 역시 상당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이나 중국은 전통문화가 너무나 화려해 볼 것이 많은데, 조선은 생산력이 낮아 소박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도자기만 해도 백자나 달항아리 정도의 소박한 미감인데 비해 중국 청화자기의 화려함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이고 일본 역시 유럽으로 수출됐던 자기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조선은 이런 화려함을 경계하고 의도적으로 담백하고 단아한 미감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자기 절제와 검소함을 숭앙하는 성리학을 이렇게도 철저하게 추구한 나라에서는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고 생산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려는 자본주의는 도저히 발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많이 부정되고 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조선 후기에 실학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이론이 국사 교과서에 실렸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20세기 현대인의 눈으로 성리학 사회인 조선을 봤던 인식의 오류였던 셈이다.

세종 대왕이 정말 훌륭한 군주지만 중국 전체를 통틀어 이보다 더 훌륭한 황제는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오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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