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아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 -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한명기.신병주.강문식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잘 아는 내용이라 새로울 게 있을까 싶어 미뤘던 책인데 그래도 저자들이 그 시대를 전공한 분들이라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됐다.

많은 책들이 나왔고 드라마로도 자주 만들어져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약간 맥이 빠진 느낌도 들고.

그래도 정리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읽었다.

250 페이지 정도로 부담이 적다.

 

첫번째 주인공 태조와 이방원은, 처음에는 매우 기대가 큰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의 승인도 없이 독단으로 아버지가 가장 신뢰했던 정몽주를 살해하는 바람에 눈밖에 나고, 이성계는 아들의 권력욕을 경계하여 세자 책봉은 물론 개국 공신 책봉도 안 해 준다.

신덕왕후나 정도전에게 휘둘렸다기 보다는 태조 자신이 이방원을 꺼려 했다고 보는 것이다.

당나라를 세운 이연이 아들 이세민에게 쫓겨 나고, 명나라의 홍무제 사후 영락제가 조카를 죽이고 황제위에 오른 걸 보면 부자간에도 권력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태조가 이방원을 충분히 위험하게 보았을 만 하다.

더군다나 신덕왕후의 사후 역시 태조가 매우 신뢰했던 정도전마저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나온 바지만 조사의의 난도 이성계가 주도한 것으로 본다.

 

아버지와의 불화를 겪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적장자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삼고 많은 비행에도 그를 감쌌으나 결국 폐위하기에 이른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것이나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위했던 상황을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큰 죄였나 약간 의구심이 들긴 한다.

양녕대군의 경우 기생을 궁에 불러 들이고 어리라는 양반의 첩을 뺏어온 게 결정적인 이유였는데 아버지에게 올린 상소에 쓴대로 임금인 아버지는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는데 왜 나는 안 되냐는 항변이 이해가 된다.

왕이 된 후와 세자는 엄연히 다른 신분이라서인가?

혹은 양반의 첩을 뺏은 것은 당시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행동인가?

사도세자 역시 아버지와 갈등이 많았지만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몰래 대궐을 빠져 나가 잠깐 평양에 다녀온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는데 다음 왕인 세자가 그 정도의 자유도 없었던 것일까 의문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사회 분위기였을 것 같다.

아들에게 냉담했던 선조나 인조의 예를 봐도 절대권력인 왕인 아버지 앞에서 세자는 아무리 다음 왕이 될 후계자라 할지라도 또 부모 자식이라는 천륜으로 이어졌다 할지라도 상당히 취약한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