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 족보를 통해 본 한국인의 정체성
박홍갑 지음 / 산처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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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지 않고 족보와 성관의 유래에 대해 재밌고 알찬 내용들이 소개된다.

학술적인 성과를 담보로 한 책이라 신뢰감이 간다.

동성동본 금혼법이 얼마나 허구인지도 새삼 느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는 같은 성씨가 왜 이렇게 많냐고 했다는데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해가 갔다.

성관 제도가 생긴 것은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겨우 7세기 무렵이고,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전 인구의 절반 정도가 성과 본관을 가졌다고 하니 동성동본이라고 해서 일족으로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코메디인 셈이다.

조선 후기에 문벌 의식이 강화되면서 유력 성씨에 편입하려는 시도들이 일상화되어 성씨는 바꾸지 않아도 본관은 흔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문중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부계 혈통 중심의 의제적인 친족 집단이 형성되어 사회적 방어망이 되므로 조상을 바꾸는 환부역조 현상이 일상화 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조상이 양반 아닌 사람이 없으니, 상민과 노비들의 자손은 다 사라졌단 말인가?

박씨만 하더라도 신라 경명왕의 8대군이 분봉받은 곳을 본관으로 삼아 퍼졌다고 하는데 수백 만의 박씨가 죄다 경명왕 후손이라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재밌는 것은 다른 성씨는 중국에 기원을 두는 반면, 박씨는 확실한 토성이라고 한다.

한민족이 사실은 여러 민족이 섞인 다민족 국가였다는 책도 본 적이 있는데, 저자는 중국을 숭상하는 모화사상이 일반화 되면서 족보의 권위를 갖기 위해 조상의 기원을 중국 쪽에 두려는 시도 탓으로 보고 역사적 유래가 확실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토성이었다고 본다.

오늘날은 과거처럼 문중이 중시되는 사회도 아니고 오히려 서구적 가치인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인 만큼, 부계 혈통에 매몰되지 않고 먼 시조 조상이 아닌, 자신을 중심으로 뿌리를 찾는 패밀리 트리 형식의 가계도가 훨씬 의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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