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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족을 멸하라 - 명청시대 형벌의 잔혹사
펑위쥔 지음, 김태경 옮김 / 에쎄 / 2013년 4월
평점 :
고대 중국의 형벌사를 논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러 가지 사건을 개별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오늘날의 형법과 고대의 형법이 어떻게 다른가, 어떤 관점에서 법이 적용됐는가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밝히고 있다.
명청대 이른바 기이한 사건이라는 7가지 경우가 나온다.
명나라 때의 네 가지 사건은, 개별적인 형사 사건이라기 보다는 황제에 의해 자행된 일종의 숙청이었고, 청나라 때의 세 가지 사건이 오늘날 같은 유명한 형사 사건들이다.
주원장에 의해 자행된 곽환이나 호유용 모반 사건, 아들 영락제에 의해 자행된 방효유의 이른바 10족을 몰살한 사건 등은 역사책에서 익히 바온 바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이가 죽었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중국은 황제의 절대 권력이 강한 나라이고 인구가 많다 보니 숙청 규모도 상상을 초월해 수만 명에 이른다.
호유용 모반 사건 등은 무려 10여 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 살해된 이가 3만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 주원장은 놀라운 독재자다.
아들 영락제 역시 자신의 즉위를 반대한 방효유를 죽이는 것으로 모자라, 친족 9족에 추가로 선생, 제자, 친구까지 포함시키는 10족을 죽이라는 전무후무한 연좌제를 적용한다.
이런 학살을 자행한 왕으로는 얼핏 연산군이 떠오르는데 그는 왕위를 뺏겼던 반면, 명 태조와 영락제는 굳건한 독재 정치를 굳혔으니 공포정치도 정치력이 출중해야 가능한 모양이다.
고대 형벌과 고문에 대해 자세히 나오는데 너무 끔찍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적어도 형법 문제에서는 인권이 확실히 놀라울 정도로 진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그림이나 모형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닌데도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기본적으로 고문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합법적인 수사 방법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과학적 수사 기법이 전무했을 때이니 자백을 범죄의 증거로 삼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물증을 찾아낼 수 없는 이상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고문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랬다고 자백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봉건사회 형법은 오늘날과 같은 무죄추정의 원칙 대신,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됐다.
잡혀 오면 죄가 있다는 전제 하에 모든 수사는 그것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할 점은, 옛날이라고 해서 무조건 법관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입증할 근거, 즉 범죄자의 자백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러니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은 필수적일 수밖에.
범죄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누가 범인인지 의심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묶지도 말라고 했던가.
관습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주변에서 의심을 하게 되고, 어떤 사건이 터지면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
거인에 합격했던 양내무와 평민 소백채의 남편 살해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너무 황당하고 기막힌 경우라 읽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
소백채는 집주인 양내무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하고 자주 싸운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며칠 앓더니 사망하게 된다.
고열에 시달리다 죽었다.
평소 며느리 행동을 못마땅해 하던 시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 독살당한 것 같다면서 소백채를 남편 살해범으로 고발한다.
그런데 독살당했다는 근거가 너무나 희박하다.
몸에 부어 올랐다는데 더운 날씨 때문에 시신은 충분히 부패할 수 있다.
독살 여부를 대체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더군다나 며칠간 열이 나서 죽은 걸 보면 병력이 분명하고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으니 감염질환으로 며칠 앓다 죽는 경우도 흔했을 것이다.
여인의 행실에 대해 완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관리는 마을의 소문을 믿고 양내무를 잡아들여 사건을 짜 맞춘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고문이 행해진다.
소백채는 남편 살해범으로 능지형에 처해질 뻔 했으나 거인까지 합격한 양내무 집안의 노력으로 자희태후에게까지 탄원서가 들어가 3년의 소송 끝에 혐의가 벗겨지고 방면된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과정에서 벌어진 고문과 옥살이에 대한 보상은 커녕, 의심을 살 만한 정황들에 대한 처벌로 장형이 각기 수십 대 부과됐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국가가 옥살이 한 날을 전부 금전으로 보상해 줘야 할텐데 오히려 매을 때리다니!
고대 형법은 법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제권을 유지하고 관료제가 잘 돌아가기 위한 안전장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요즘의 관점으로 당시의 판결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