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개혁가들 - 역사의 변화를 선택한 사람들, 개정증보판
임용한 지음 / 시공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제나 믿고 보는 임용한씨의 책.

<난세에 길을 찾다>의 개정판인 모양이다.

앞의 책에서는 의자왕, 궁예가 나오고 개정판에는 이 사람들이 빠지고 대신 대동법의 주인공 김육이 등장한다.

기왕이면 같이 실어 줬으면 좋았을텐데.

이 부분은 다시 읽어 봐야할 듯.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17세기로 넘어가면서 조선은 더이상 농본주의와 고립주의로만 살아갈 수 없는 사회로 바뀌어 가는데 여전히 과거의 유습을 붙들고 시대의 변화에 저항해 가면서 그것을 유지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결국은 왕조의 멸망과 함께 식민지 지배로 끝나고 말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비판이다.

고려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왕조를 개창해 문벌귀족사회에서 관료제 사회로, 국방을 튼튼히 하면서 안정된 농촌사회를 만들어낸 15~16세기까지는 조선왕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사회는 급변해 가는데도 교역을 거부하고 성리학 교조주의로 폐쇄된 농촌사회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니, 지리상의 대발견이라는 16세기의 세계적 변화와 정반대되는 행보라 안타까운 일이다.

왜 대동법의 시행이 그토록 늦어졌나 봤더니만, 시장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 대신 쌀로 대신 내게 되면 국가는 시장을 통해 물품을 구입해야 하고, 나라에 바치는 대신 백성들은 이익을 위해 시장에 물품을 내어 놓을 것이니 자연스레 화폐가 유통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고, 그러면 신분제와 성리학 위주의 사회가 흔들릴 것이다.

지배층은 사회가 이렇게 변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 했기 때문에 공납에 오랫동안 집착했다는 것이다.

대동법을 주장했던 김육은 쌀로 내는 것을 뛰어넘어 화폐로 지불하자고까지 한다.

도로나 수레 등 운송시설이 낙후되어 쌀로 걷어도 중앙에 납부하는 게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대동법에 반대하는 지배층은 나쁜 놈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기저에 이런 본질적인 사회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고립되고 닫혀 있는 사회는 변화하기 힘들고 정체될 수밖에 없음을 역사를 통해 느낀다.

위청척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멍청한 벽창호라서가 아니라 문을 여는 순간 그동안의 안정된 농촌 위주의 견고한 신분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 변화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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