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ㅣ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3
박한제 지음 / 사계절 / 2006년 6월
평점 :
어쩌다 보니 세 번째 읽게 됐다.
이 분 책을 읽으면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어느 정도 정리가 돼서 쉽게 읽을 줄 알았는데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았다.
역사기행문이라는 형식 때문인지 하나의 주제로 명료하게 수렴되지 않고 조금 산만한 느낌을 받았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을 처음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3권은 수당제국을 가능하게 한 선비족이 세운 북위에 관한 내용이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라는 전무후무한 여자 황제가 나온 것도 유목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사회적 배경이 있었고, 그녀에 버금가는 효문제 때의 문명태후가 있다.
북위 3대 황제 태무제의 황후인 문명태후는 손자인 효문제 때 전권을 휘둘러 북위 시대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균전제와 삼장제 등을 실시한다.
그녀가 죽고 난 후 효문제는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서성의 평성에서 하남성의 낙양으로 천도한다.
보통 역사책에서는 효문제가 한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천도했다고 하는데, 저자가 지적한 이런 배경도 작용했을 것 같다.
문명태후가 측천무후처럼 황제에 오르지 못한 까닭은 측천무후가 82세까지 장수한데 비해, 그녀는 겨우 49세로 단명했던 탓으로 본다.
후에 효문제의 며느리이자 선무제의 황후인 영태후 역시 자귀모사제라는 악습을 피해 자신의 아들 효명제 때 전권을 휘둘렀으나 불행히도 이주영에 의해 아들과 함께 황하에 던져진다.
후에 서태후도 그렇고, 확실히 한국에 비하면 중국의 여성 파워가 더 강했던 것은 유목 왕조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저자는 북위를 이은 수, 당 역시 유목 전통이 강한 국가로 본다.
적장자 상속 관습이 약한 유목 왕조에서는 황제가 직접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워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수 양제나 당 태종이 고구려 정벌에 집착한 점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수 양제의 경우, 어머니 독고 황후의 총애로 형을 밀어내고 황제 자리에 오른 까닭에 더욱 고구려 정벌에 매달렸다고 한다.
초라한 수양제와 북주의 건국자 우문태의 무덤을 찾은 부분은 인생무상이 느껴져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북위의 균전제를 특정 산물을 산출해 내기 위한 일종의 할당생산제로 본다.
중앙아시아를 통해 비단 무역이 활발했기 때문에 뽕나무를 강제로 심게 한 것이다.
당나라의 방장제 역시 직능별로 거주지를 구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한다.
주거지가 성밖까지 확대된 송나라와는 달리, 당은 거대한 성곽을 만들고 그 안에 다시 담을 세워 구획된 좁은 공간 안에서만 살게 한 것이다.
유목 왕조가 정복을 통해 영토를 얻으면 강제 사민을 통해 정착시키면서 이들을 감시하고 최대한의 생산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