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역사 - 현대판 노예노동을 끝내기 위한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하정희 옮김 / 예지(Wisdom)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책 표지가 참 예쁘다.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한 책이 아니고, 서구와 아랍 사회에서 노예제가 어떻게 정착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으며 또 해체되었는지를 찬찬히 밝힌다.

일화 중심의 나열식 글쓰기가 아니라 주제를 아우르는 응집력이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노예제가 유지된 가장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이국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 차별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단일 민족 사회를 유지해 온 한반도의 노예제가 무려 19세기 말까지 견고하게 지속된 까닭은 무엇일까?

보통 노예는 전쟁포로를 통해 공급되었고 유아 유기, 납치 등에 의한 노예무역을 통해 거래됐다.

예를 들어, 이슬람 세력과 오랜 기간 동안 싸워 왔던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노예로 삼으며 긴 역사를 이어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흔히 대항해 시대 이후 서양인들에 의한 신대륙으로의 아프리카 노예 공급을 떠올리지만,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아랍 상인들이 사하라 사막 이남의 노예무역을 주도해 왔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점을 조심스레 지적한다.

물론 구대륙으로 팔려나간 이러한 노예들은 신대륙으로의 집단적 체계적 이주와는 처우나 역할 면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랍 세계에 의한 노예무역이 무려 19세기까지 지속됐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회가 노예제 기반의 사회였던 반면, 중세로 넘어가면서 더이상 전쟁을 통한 노예 공급이 어려워지고 해방 노예들이 늘어났던 만큼, 또 제국이라는 거대한 중앙집권적 방어막이 사라져 봉건제도를 통해 사적으로 종속과 보호의 계약을 맺어야 했던 만큼, 토지에 예속된 농노가 생겨난다.

농노는 세금과 부역을 통해 재화와 노동력을 바치고 주인이 먹여 살리지 않아도 스스로를 부양하므로 중세 유럽에서 노예는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약탈과 전쟁, 노예무역 등을 통해 구대륙에도 노예 계층은 존재했다.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유럽인을 열광시킨 설탕의 생산을 위한 사탕수수 농장을 지탱하기 위해, 허약한 인디언 대신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이 공급된다.

저자는 이러한 노예 산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여 19세기의 산업혁명이 가능해졌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노예제가 비인간적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얻어 사라져 간 과정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노예제 폐지에 별다른 목소리를 낸 적이 없고, 오히려 저자는 퀘이커 교도나 감리교도들의 집단적인 노예해방 노력에 주목한다.

물론 노예제의 생산성이 점차 떨어져 임금 노동으로 대체되었다는 경제적 원인도 분명하게 있었으나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 왔던 노예제가 인권의 발달과 함께 소멸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실 외국의 노예제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매우 직접적인 차별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운데, 단일 민족인 한반도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견고하게 노비층이 존재해 왔다는 게 신기하다.

한반도의 노비제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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