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영조 시대의 조선 9
이영춘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된 <영조시대의 조선> 시리즈 중 하나다.

150 페이지 정도의 문고판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으나 내용은 알차다.

숙빈 최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던 터라 사실 새로운 건 없었지만 왕실의 장례 문화나 추숭 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기록이 많지 않으니 더이상의 개인사를 구성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김종성씨가 언론에 연재하던 글 중 숙종의 총애가 사라져 숙빈을 궁 밖으로 내쳤다는 기사가 있었다.

숙빈이 정말 숙종의 총애를 잃어서 그랬나, 원래 왕이 죽어야 후궁은 궁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좀 의아했는데 이 책에 답이 나온다.

후궁에게는 궁방을 내주는데 숙빈은 특히 총애가 커서 이현궁이라는 큰 사저를 주었고, 후에 아들 영조가 궁 밖에 나가 살게 되자 병이 있었던 숙빈이 아들 내외의 봉양을 받을 수 있도록 같이 나가 살게 했다고 한다.

왕 외에는 궁궐에서 아파서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아들 집으로 나간 듯 하다.

더군다나 그 당시는 숙종도 만성 질병에 시달리던 때였다고 한다.

(김종성씨에게서 이덕일씨 느낌이 좀 난다)

숙빈의 병도 오래 끌어 만 4년 정도 아들 내외의 보살핌을 받다가 눈을 감았다.

 

얼마 전에 읽은 <권력과 인간>에서는 저자가 숙빈의 신분을 무수리가 아닌 것으로 논증했는데 이 책에서는 무수리로 상정했고, 한미한 집안이기는 하나 선조들과 후손들이 무관직에 나간 것으로 보아 중인 정도의 신분으로 보고 있다.

숙빈이 궁에 들어온 것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수리가 침방 내인으로 승급할 수 있는 걸까?

보통 궁녀는 처음부터 따로 뽑고 무수리는 일종의 노비 같은 신분이라 그런 식으로 승급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좀더 논증이 필요한 부분 같다.

하여튼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0세 전후로 왕의 승은을 입어 아들을 셋 씩이나 낳고 장희빈과의 궁정의 암투 속에서도 무사히 아들을 키워내 최고 빈의 자리에까지 오른 후, 나중에는 정적인 장희빈을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숙빈 최씨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자신의 출신이 한미하기 때문에 노론 명문대가의 딸이었던 영빈 김씨에게 양자로 보낸 점도 놀랍고 노론과 결탁한 것을 보면 정치판 판세를 잘 읽었으리라 여겨진다.

좀더 오래 살았다면 왕이 된 아들에게 큰 효도를 받았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ㅇㅇ 2015-05-20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숙빈최씨의 관한 부정적인 글들이 상당히 많던데
어떻게 이렇게 좋게 포장이 가능한지 궁굼하네여...
영조가 왕이 되서 가능했다고 봐야하나...
그당시 치열했던 당파싸움에서 가장 이득을 본것이
숙빈최씨와 연인군(영조)였으니 ...
이런 숙빈최씨의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 지지않았나 싶네여..
실제에는 돈에 환장한 여인이라던데,
땅투기에 탄핵 탄원 상소 빗발치고 뇌물받은 기록들하며,
불법으로 재산을 불여서 숙빈최씨가 이현궁말고 사저을 3곳이나 더있었다고하니;;
그당시 백성들의 원성을 들어가며 멈추지 않고 땅투기에 한평생을 사신 분...
증거도 없이 장희재남매가 자신을 죽이려한다고 한밤중에 숙종의 침소로 찾아가서 고한 일등등.
인현왕후 저주사건또한 증거도 없이 발고...
과연 이여인이 본모습은 어땟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