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송호정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이성재씨의 낙랑, 에 관한 책을 읽고 요서 지방 청동기 문화를 고조선의 것으로 볼 수 있느냐에 의문이 생겨 재독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분량이 많고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은 부분도 많았는데 다시 보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고고학적 편년 자료가 되는 토기나 동검의 변화 양상을 설명하는 부분은 여전히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략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은 알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표지 유물이므로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는 곳은 고조선의 세력권이라고 이해했다.
국사책에도 비슷하게 설명이 되어 있고 역사스페셜이나 이덕일씨 같은 사람들의 책을 보면 그렇게 나온다.
그런데 일단 비파형 동검과 고조선은 1:1로 대응하는 관계가 아님을 밝힌다
특히 기원전 20세기 무렵까지 소급되는 요서 지방의 청동기 문명은 한민족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고조선의 것이 아니라, 산융 등의 유목민이 일군 문명으로 요동 지역의 문화와 구별된다고 본다.
요동과 서북한 지역의 문명도 넓은 범위로는 하나의 권역이지만 거리차로 인하여 구별되는 문화를 가졌다고 해석한다.
낙랑군이 만주에 있었네 하는 주장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

이성재씨의 책에서는 낙랑국과 낙랑군의 차이에 거의 모든 지면을 할애했는데 이 책에서는 부연 설명 할 것도 없이 위만 조선, 즉 후기 조선의 도읍지 왕검성에서 발견되는 중국계 유물 등을 근거로 당연히 고조선 멸망 후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세워졌을 것으로 기술한다.
또 기자동래설을 한대에 삽입된 전설로 보고 청동 명문으로 새겨진 고죽국이나 기후 등의 나라는 상족의 후예들이 산융이 기거하는 요서 지방에 분봉된 것이므로 고조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한다.
조선은 이 산융보다 훨씬 더 동쪽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덕일씨의 책을 보면 심지어 은나라 문명까지도 한족과는 구별되는 동이족, 곧 한민족의 문명권으로 본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한 얘기임을 깨달았다.
동이족은 일종의 범칭으로 한민족의 시원과 연결지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또 연나라의 화폐인 명도전이 서북한 지역에까지 발굴되는 것을 두고 국사 교과서에서는 연과의 무역이 활발하고 고조선에서도 통용됐었다고만 했는데 이 책에서는 명도전이 발굴되는 지역을 연의 세력권으로 이해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연의 화폐가 대량으로 발굴되는 지역을 연나라 세력권으로 이해해야지 고조선과 연결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요동 지역에는 예맥족이 있었고 서북한에는 고조선이 각각 존재했고 느슨한 연맹체, 역사서에 조선후라고 명명되는 정치체를 이뤘다고 본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연의 장수 진개의 공격을 받아 고조선은 청천강 이남으로 물러났고 진나라의 통일 후 패수, 즉 압록강 이남부터 청천강 이북까지는 너무 먼 지역이기 때문에 통치력이 미치지 않은 일종의 빈 공간에 연의 유민인 위만이 위만조선을 세웠다고 기술한다.
이 위만조선의 실체에 대해 단순히 지배층의 출신국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의 방향성을 봐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예시로 든 남월국과 비교해 보면 위만조선의 실체가 명확해진다.

위대한 고대 제국을 꿈꾸는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책이겠지만 역사와 이념은 구별되어야 하니 보다 객관적으로 고대사를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알려준 책이라 하겠다.

단군 신화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삼국시대 신화 등도 모두 무의미한 것이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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