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왕후 독재와 19세기 조선사회의 동요
변원림 지음 / 일지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일단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정조 이후는 어쩐지 소외된 시대 같고 세도정치로 망했다 정도로 밖에는 조명되지 않는 것 같아 늘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특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주제로 삼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결론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한다.

저자는 안동김씨 일가의 세도정치였다기 보다, 순원왕후 1인 독재였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다.

내가 읽은 <순원왕후의 한글편지>는 중국의 여태후나 서태후 같은 독재자의 모습이라기 보다, 구중궁궐에 살던 궁중 여인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 일선으로 나서 조심하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적으로는 네 명의 자녀와 남편, 손자까지 먼저 보낸 불운한 여인으로 비춰졌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편지들이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고도의 술책으로 야심을 숨기고 있다고 해석했다.

본심은 권력지향적이면서 겉으로는 백성을 걱정하고 매사에 조심하는 모양새로 비춰지길 바래서였다고 본다.

그 증거로, 이런 편지가 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었겠냐고 한다.

그렇지만 남도 아니고 친정 오빠와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이니 매우 사적인 것인데 과연 저자의 주장처럼 가식적으로 쓴 편지라고 판단해야 할까?

그렇게 따지면 사적인 일기나 편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모든 사료 역시 전부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추론을 너무 확대한 나머지 친할머니인 순원왕후가 헌종의 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독살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까지 주장한다.

정조, 익종 독살설에 이어 헌종까지!

근거는 하나도 없이 정황으로만 이런 논리의 비약을 주장하다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혜경궁이나 순원왕후 모두 친정을 위해 왕가인 시댁을 버렸다고 하는데 한문도 제대로 모르는 순원왕후가 정치 일선에 나섰으니 본가에 의지하는 건 당연해 보이고 오히려 그런 수렴청정 덕분에 겨우 8세에 즉위한 헌종이 무사히 성장해 이씨 왕조를 이어갔으니 왕조의 안전성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부분일 것이다.

물론 당시 인사들이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혜경궁이 친정을 위해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에도 여러 다른 책들을 종합해 보면 동의할 수가 없다.

남편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살아 남았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 외에 공감할 만한 주장들도 많았다.

수렴청정 때 안동 김씨가 전적으로 전횡을 휘두른 게 아니라 여러 벌열 가문들이 권력을 나눴다는 주장이나, 조선 후기의 민란이 민중들의 의식 성장 결과가 아니라 권력에서 소외된 지방 양반들의 반란이었다는 주장, 또 내재적 자본주의 발전론의 근거가 전혀 없다는 주장 등에 나도 동의하는 바다.

아마도 조선은 개항을 피할 수 있었다면 계속 왕조 시대를 이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혁명 때의 민권의식 같은 것을 조선 후기 사회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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