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임용한씨가 요즘 책을 많이 내는 것 같다.
학자가 쓰는 글이니 기본은 보장하는 듯.
이덕일씨와는 달리 민족주의 사관이나 과도한 자의적 해석에 매몰되지 않아 읽기 편했다.
박제가는 실학파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는데 한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 역사에 가려진 인생이 보이는 것 같다.
똑똑한 천재였으나 신분상의 불운, 즉 서얼차별법 때문에 관직 사회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한을 평생 품고 살았다.
문기 있는 소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능호관 이인상 역시 자신도 아닌, 증조부가 서얼이었기 때문에 평생 외방으로만 전전했다고 하니, 정약용처럼 남인으로 노론에 밀려 평생 유배지를 전전한 양반들도 있지만 본시험에 진출조차 못한 서얼들이 얼마나 한스러웠을지...

박제가는 이순신의 후손인 이관상의 서출 딸과 결혼하여 장인의 지원을 물심양면으로 받는다.

선조한테 미움받아 자살했다는 설까지 나돌았지만 정조 당시에 고위직을 역임한 무관 가문이었다고 나오는 걸 보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구국의 영웅을 내팽겨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천재적인 성품 때문에 억울한 차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에서만 빙빙 돌다가 정조의 배려로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어 13년 동안이나 관직 생활을 하고 청나라 사신으로도 네 번이나 다녀온다.

김정희가 한 번 청에 가서 그 인연을 평생 이어갔는데 박제가는 무려 네 번씩이나 다녀 왔으니 답답한 조선 사회에 대한 울분이 얼마나 컸을지.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이 바로 <북학의>다.

민족주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발언이 많은데, 이를테면 중국어를 쓰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중심 내용은 사회를 안정화시킨다는 구실로 국가적 가난을 강요하는 농본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상공업 진흥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명이 망하고 청에 항복한 이유 이른바 소중화가 조선을 휩쓸어 진경산수화 같은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높였다고만 들었지, 그 소중화가 사회를 얼마나 정체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조한 학자를 못 봤다.
그런 면에서 조선 후기 사회를 직시하자는 박제가와 저자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사생아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을 수 있으나 법으로까지 차별을 명시하고 대대손손 그 신분적 차별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혹하다.
19세기 말까지 존속했던 노비제를 두고 조선왕조는 노예제 사회였다고까지 말한 서양 학자도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신분제가 철폐됐는데 조선은 갑오개혁까지도 노비제가 유지됐으니 사회 역동성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책을 보면서 얼핏 자본주의적 시각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일단 조선 사회는 대단히 가난했고 자본주의의 맹아니 하는 소리는 후대 학자들이 하는 얘기 같다.

내수 산업의 활성화를 말하면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유층의 사치스런 소비 행태가 빈부격차를 부른다고 문제시 한다.

명품이나 골프, 외제차도 신분 과시용으로 사긴 하지만 대놓고 자랑하면 욕 먹는다.

그러니 인간의 본능인 소비욕구를 조선사회에서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많은 저작을 낸 정약용과는 달리, 함경북도 끝 종성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주변 지원이 미흡해 변변한 저작을 남기지 못한 박제가는 정순왕후의 배려로 풀려나긴 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자신의 뜻은 다 펴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래도 역사에 한 줄 이름이 남아 후대 사람들이 실학자로서 평가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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