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를 가다
국립중앙박물관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 전시실에 대한 도록.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같은데 따로 기록을 안 해 놨더니 헷갈린다.
역시 기록이 중요하다.
직접 전시를 보면 사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유물은 없는데 도록으로 엮인 한 권의 책으로 보니 의미있고 고려시대를 조명할 수 있는 것 같아 좋다.
표지고 예쁘고 도록 설명도 훌륭함.
특히 맨 뒷장에 실린 고려 왕실 세계표는 일목요연하게 왕위계승과 혼맥 관계를 살펴 볼 수 있어 정말 유용했다.
복사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느낀 점과 궁금한 점 몇 가지.
1) 고려 시대 향리층의 존재.
흔히 관아의 이방이나 호방 같은 아전으로 인식되는 조선시대 향리와는 매우 다른 존재였던 듯.
일종의 지방 자치제가 실현되고 있어 지방을 방위하고 세금을 걷어서 중앙에 올리는 향리의 신분이 높았던 것일까?
과거제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하면서 명문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귀족 사회면서도 과거제가 약간의 숨통을 틔워준 것인가?

2) 원나라에 바치는 공녀 문제.
저자 말로는 정복자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공녀를 요구했다고 하는데 공녀는 일종의 여자 노예였을까?
청나라 때 끌려간 공녀를 되찾아 올 때도 돈을 지불했다고 하니 전쟁 후의 노예 매매 같기도 하고, 고관들의 첩이 된 걸 보면 반드시 노예 개념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이 공녀의 존재가 참 궁금하다.
나중에 충선왕의 장인이 되는 홍규도 딸을 공녀로 보냈을 정도니 신분의 높낮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모양.

 

3) 쌍절록의 주인공 김주.
지금 관점으로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고려가 망했다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압록강을 건너지 않고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다시 중국 땅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충신불사이군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뱃속의 아이 이름만 지어 보냈다고 하니, 두문동에서 불타 죽은 고려 유학 72인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4) 고려 왕실의 근친혼.
세계표 정리하다 보니 신라 못지 않은 근친혼이 성행했던 것 같다.
갑자기 화랑세기가 궁금해질 정도로 고려 시대 근친혼도 대단했다.
이복남매끼리 혼인은 기본이고 인종의 경우 이모들과도 결혼해서 결혼이 일종의 집안 결속력을 다지는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후기로 갈수록 줄어든 걸 보면 확실히 유교의 영향이 큰 듯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혼인은 촌수를 따지지 않아서 혈연관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겹사돈 형식의 결혼은 매우 흔했던 걸 보면 높은 신분일수록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혼인으로 중첩된 관계를 맺었음이 분명하다.

 

도록의 장점은 유물, 즉 확실한 증거를 통해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
잘 찍힌 사진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