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가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갈 때마다 아쉬운 건 책 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북디자인이 독립된 영역으로 인정받으면서 책이 세련되고 화려해질수록 그에 비례해 책 값도 부쩍 뛰어 버려 기본적으로 만 원은 있어야 한 권을 살 수가 있다
그림이나 사진이 좀 들어가면 2만원은 줘야 한다
그래서 늘 만지작만 거리고 도서관에서 빌려 봐야겠다고 나오지만, 신간은 잘 안 들어오고 시간도 없어 결국은 못 읽고 만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페이퍼백이 활성화 되어 부담없는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거기에 딱 맞는 책을 만났다
"살림"에서 인문학 지식을 망라한 살림 지식 총서를 발간했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도 좋긴 한데 그림이나 사진이 많아 역시 가격은 8,9천원으로 만만치 않았는데 살림 총서는 그림이 없는 대신 가격을 팍 낮춰 겨우 3300원으로 책정이 됐다
100페이지 미만이라 지식의 깊이가 좀 얇긴 하지만 일단 가격애서 경쟁력이 있고, 부담없이 짧은 시간에 읽을 수가 있어 좋다
오늘 처음 고른 책은 김성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가 쓴 "영화로 보는 미국"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정확히 말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관심이 무척 많은데 이 책은 비교적 숨겨진 이면에 대해 제대로 짚어 주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약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게 다 문화의 차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영화는 그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야 관객을 쉽게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 문화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교두보가 된다는 것이 늘 비판받지만, 사실 미국 문화가 곧 세계화라는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가 그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헐리우드는 작가 정신으로 무장한 뛰어난 감독과 배우, 기술진이 모여 훌륭한 영화를 만든다음, 거대한 자본을 매개로 한 광고와 배급을 통해 그것을 파는 방식으로 이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헐리우드 영화를 매도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미국은 상업성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우리 나라는 양반 문화로 대표되는 지배층의 고급 문화가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반면, 미국은 그 특권층을 피해 온 보통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문화도 지극히 대중적이고, 상업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것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헐리우드 영화가 기본적으로 상업적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비판할 꺼리가 못 되는지도 모른다
상업주의가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상호 규약을 잘 지키고, 법치주의가 발달했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대대로 상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법을 지키지 않는 초월적인 특권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라는 의식이 팽배한 반면, 미국은 개인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라,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고, 결국 상호간의 규약인 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에 준법 정신이 투철하다고 한다
또 우리 나라는 법을 무시하는 초월적인 특권층이 있는 반면, 나머지는 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만큼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급화가 안 되있는데 미국은 누구나 법을 지키는 반면, 철저한 계급 사회이고, 그에 따른 차이를 인정한다
그래서 부자들의 거주지와 슬램가는 철저하게 분리된다고 한다
간혹 미국은 워낙 나라가 크기 때문에 서로 간섭받지 않고 각자의 문화를 유지해 가면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 5천만이라는 인구가 사는 인구 밀도가 아주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간섭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어찌 보면 재산에 따른 계급의 분리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게 훨씬 현실적인지도 모른다
평등이란 법 앞에서 기본적으로 차별받지 않는 범위에서 지켜지는 것이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모두가 똑같은 위치를 가지고 똑같이 누리자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공산주의 논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부금 입학 문제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같이 학벌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사회에서는 기부금 입학제가 자칫 부와 가난의 철저한 세습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보다 양질의 교육 환경을 위해 기부금 입학을 허락하는 것도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미국의 영웅들은 모두 고독하다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그랬고,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역시 언제나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한다
또 평상시에는 숨어 지내다가 재난을 만나면 짠 하고 나타나 해결해 준다
미국은 고독한 영웅을 원한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국가가 자신을 통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영화들이 국가의 통제에 따른 개인의 자유 박탈에 따른 불안감을 보여 주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던가, 애너미 어브 스테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같이 국가 권력이 최소화 된 나라에서 그 정도의 작은 간섭도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국가 권력의 어느 정도 간섭을 당연히 하는 우리와는 기본적으로 정서가 다른 게 분명하다
우리 나라가 충, 효, 예를 중요시 하는 반면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가장 우선시 한다고 한다
미국의 가장 큰 갈등은 인종 문제, 즉 흑백 갈등이다
흑백 갈등이라, 사실 단일 민족의 국가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낯선 문제인데 생각보다 아주 심각한 것 같다
영화에서 백인 주인공을 돕는 흑인 친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룰 수 없는 흑백 공존의 바램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은 유전자 조작을 통한 변형 인간이라던가,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다루는 영화가 많아졌는데, 아예 관심의 대상이 우리와 종이 전혀 다른 쪽으로 옮겨져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는 정도만으로는 타자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될 때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