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 조선남녀 상열지사 [dts] - [할인행사], 일반판
이재용 감독, 전도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를 우여곡절 끝에 드이어 봤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깔끔하고 보기 좋은 영상을 보여줘 뒷맛이 개운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자연스러웠고 결말도 긴 여운이 남는다

이 영화의 압권은 사극의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 준 배용준이 아닌가 싶다

어쩜 그렇게도 핸섬하고 쿨하게 나오는지...

고리타분한 조선 시대 선비상을 싹 없애줬다

현대물에서는 배용준이 잘 생겼다거나 매력적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갓 쓰고 도포 입은 사극에서 그의 매력이 훨씬 더 많이 발하는 것 같다

부용정의 조씨 부인과 조원은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남에게 발설조차 못할 금지된 사랑이었으니, 둘은 사촌 관계였다

결국 서로를 마음에 품은 채 각자 결혼을 했으나 조원은 일찍 부인이 죽은 뒤 이 여자 저 여자를 탐하며 세월을 보내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조씨 부인 역시 시댁의 부를 이용해 화려하게 치장하며 자유로운 성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연정은 여전했으니...

선수는 선수끼리 논다고 조씨 부인은 조원에게 우리가 사랑에 빠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부끄러워 할 일 아니냐고 힐난한다

또 그녀는 조원에게 무너진 숙부인 정씨를 두고 절개가 다 무슨 소용이냐, 사내맛을 못 볼 때 얘기지 하며 비웃는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린 시절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강렬하고 절대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성이라는 개념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키스나 포옹 정도가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 정도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 남녀 간의 사랑에 성이 빠진다면 그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성적 욕구는 사랑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알게 됐다

숙부인 정씨도 조원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면서 몸을 허락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조씨 부인은 조원이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나는데도 여전히 그 마음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섹스는 별개인가, 혹은 일치할 수도 있고 별개일 수도 있는, 사실은 별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인가?

어쩌면 성적 욕구와 사랑이란 감정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큰 상관 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볍게 성적 욕구를 푸는 것을 비난할 수도 없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거의 절대적인 가치라고 교육받아 온 순결이란 개념 때문에 성적인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며, 그나마도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남자들은 성적 욕구를 푸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쪽은 성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일상적인 일로 치부하니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 성적인 표현을 할 때 남자가 주도권을 갖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조씨 부인의 당당한 성격은 그녀가 숙부인과는 달리 성행위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성행위가 자연스런 욕구의 발산이라면 숙부인 정씨가 수절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생의 기쁨을 모른 채 하는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조원을 사랑한 후 삶의 행복을 모른 채 살아 온 지난 날을 후회했다

조씨 부인의 비웃음이 맞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주장하는 순결이라거나 정조 개념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관습을 깨뜨릴만큼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제 의식 정도는 가질 수 있다

조씨 부인의 질투도 이해할 수 있다

조원이 숙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한 뒤 그녀가 남자와 사통했음을 소문낸다

힘있는 자가 연적을 죽이는 복수를 자행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그녀의 강한 집착에 조원은 오히려 누이의 마음에는 가지려는 마음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 뿐인 것 같다면서 오히려 염증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질투심이 모든 관계를 파괴시킨다

조원은 어이없게도 숙부인 시동생의 칼에 맞아 허망하게 죽고 만다

그의 종놈이 양반으로 태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냐고 탄식하는 말에서 그의 죽음이 얼마나 어이없고 덧없는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죽으면 다 그만이라더니 참 모든 게 어이없게 끝나고 만다

숙부인 역시 조원의 죽음을 들은 후 얼음이 언 호수로 걸어 들어가 빠져 죽고 만다

순식간에 빠져 죽는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조금의 여운도 남기지 않은 채 한순간에 죽음을 보여준 후, 그녀의 빨간 목도리가 위로 떠오르는 것으로써 세련되게 긴 여운을 준다

조씨 부인 역시 조원이 그린 화첩이 유통된 후 시댁 식구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느껴 먼 곳으로 초라하게 도망간다

얼마나 어이없는 결말인가!!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갖고자 한 여인의 질투심이 부른 허망한 파멸이다

만약 권력을 가진 조씨 부인이 무사히 이 위기를 넘겼다면 영화는 훨씬 더 비정했을 것 같다

자신의 질투심으로 상대는 물론 사랑하는 남자와 본인까지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이 사실적이고, 또 불행하게 느껴진다

결국 원만한 종말을 위해서는 조씨 부인이 질투심을 억누르고 사랑하는 이를 연적에게 보내 줬어야 할까?

그녀는 힘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에서 위안을 찾아야 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힘이 충분했기 때문에 연적을 응징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 속의 나였다면...

연적을 응징할 힘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불행히도 지금까지 그런 힘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늘 뒤에서 눈물짓고 가슴 아파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조씨 부인 같은 권력이 있다면...

아마도 자제력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행복을 위해 보내 준다는 말은 어쩌면 현실에서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에 대한 자기 위안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숙부인과 조원이 조씨 부인의 간섭없이 잘 됐더라면 과연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조원은 바람둥이일 뿐더러 섹스에 대해 자유분방하다

아마도 그는 숙부인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여자들을 건들었을 것이며 어쩌면 조씨 부인과도 관계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사람의 본성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보면 조씨 부인은 차라리 그들의 사랑이 식기를 기다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도령과 사통하는 것을 두고 누이 역시 다른 사내를 마음에 품은 게 아니냐는 조원의 비난에, 내 앞에서 도령의 목을 벤다 해도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라는 조씨 부인의 대답은, 사랑과 성행위는 다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상대가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것, 조씨 부인은 그 점을 간파했기 때문에 조원이 단순히 숙부인을 데리고 노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만약 조원이 숙부인을 정욕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면, 남자와 사통했다는 소문을 낸 자신에게 화를 낼 까닭이 없을테니까

조씨 부인은 오랫만에 보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섹스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그야말로 현대적인 인물상이 아닐 수 없다

조원 역시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 쿨한 캐릭터이다

요즘처럼 사랑과 성이 자유로운 시대에 어울릴만한 인물들이다

스캔들이 기존의 사극과 다르다면, 화려한 의상이나 셋트보다는 바로 현대적인 캐릭터에서 그 차이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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