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DTS - [할인행사]
이창동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남들이 다 좋다는 영화를 비판할 때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오류가 발견될 시에는 가차없는 공격을 수십명으로부터 당하기 때문이다
오아시스에 관한 비판의 글인 '납득할 수 없는 환호'를 읽어 봤다

또 그 비판에 대한 수많은 악의적인 비판 역시 잘 읽어 봤다

한 영화가 뜨면, 즉 수많은 사람들이 다 좋다고 인정을 하면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역시 좋은 영화라고 느껴야겠구나, 무조건 이런 식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건가?

이거야 말로 집단주의의 발로 아닌가!!

예전에 서편제 영화 떴을 때 그거 안 좋다고 말하면 헐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져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몰렸던 것처럼, 오아시스에 대한 나쁜 평을 내 놓으면 장애인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모독한다는 식으로 내모는 자세는 영화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제가 바람직할 때, 특히 휴머니즘이나 민족주의, 애국, 등등의 내용일 때 영화는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전체적인 내용인 떨어지더라도 쉽게 비판해서는 안 된다

왜냐, 도덕적인 얘기니까

오아시스의 경우 억지 감동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기존 영화보다 세련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휴머니즘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눈물 안 흘리면, 혹은 이 장면에서 감동하지 않으면 인간미가 부족한 사람 아닌가, 이런 자책감을 들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영화의 기본적인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영화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아시스는 휴머니즘을 주제로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전개를 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초록물고기를 만든 감독의 역량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모든 화면이 너무 단조롭고 지루하다

영화 기법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평론을 읽어 보니 헨드 헬드라고 감독이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기법이라 그런 것 같다

사실주의 영화라 일부러 선택한 거라고 하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너무 단조로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공주가 갑자기 일어서서 종두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뇌성마비의 신체를 벗어 던지고 정상인처럼 사랑을 나누고 싶은 공주의 안타까움이 잘 묻어 났으나 한 번만 보여줬음 더 좋았을 뻔했다

그런 장면들이 여러 번, 그것도 갑작스레 몇번 씩 등장하니까 왠지 어색하고 감동도 옅어지는 기분이다

특히 코끼리와 인도 무희가 등장해 꽃을 뿌리고 둘이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지루하고 어색했다

배우 역시 감독과 갈등이 많은 부분이라고 했던 마지막 경찰서 장면도 공감이 덜 간다

종두가 강간범으로 몰렸을 때 한 마디 변명도 못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몇 시간 전에 여자 친구라고 어머니 생일 잔치에 데려온 여자를 강간했다고 동생이 잡혀 들어 갔는데 형제들이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가족에게마저 버림당했다고는 하지만 종두를 책임져야 할 입장에서 최소한의 상황 증거는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종두가 아무리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종두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

형을 대신해 뺑소니로 감옥에 간 종두가, 가해자로의 학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피해자로서의 삶이 내면화되어, 변명이라는 기본적인 방어 기제조차 사용할 수 없는 처지라고 나름대로 이해하기로 했다

오아시스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사실적인 상황 설정은 대단히 칭찬해 줄만 하다

특히 설경구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누가 설경구를 공공의 적에 나오는 그 다혈질 형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사회에서 소외됐으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나름대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약간 부족한 홍종두를, 과연 설경구만큼 잘 소화해 낼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조연들의 연기도 모두 빛났다

평론가도 지적했지만, 공주 시누이나 종두 형수 역의 배우들 역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족한 가족을 둔, 착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쁘지도 못한 어설프게 위악적인 우리 소시민의 애환을 잘 표현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러운지 정말 우리 일상을 조금의 가감없이 잘 보여줬다

마치 현실의 일부를 찍어 놓은 기분이 들었다

교도소에서 처음 나와 밥값이 없어 다시 경찰서에 잡혀 갔을 때 형사가 사람답게 살아야지, 이러면 되겠냐고 타이를 때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두가 안타까워 눈물이 찔끔 났다

사실 그가 악한 사람은 아닌데 지능이 좀 부족하기 때문에 늘 소외되고, 심지어 가둬지는 게 아닌가!!

(난 그가 지능이 약간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촬영할 때 감독은 형사가 종두를 윽박지르는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경찰서에서 실제 형사가 시범 보이는 걸 보고 타이르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역시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착하고 순박하지만 단지 머리가 좀 모자라 제대로 사람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던 종두가, 공주에게 예쁘다면서 꽂을 건네주고 강간을 저지를 때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동정을 받는 이유는, 마음은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가 좀 모자라 일반 사람을 상대로는 못하고 자기보다 더 부족한 사람을 상대로 나름대로의 힘을 휘두른다고 생각하니,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위선적인 동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정상적인 여자의 몸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장애인의 몸을 탐하는 종두의 모습은 인간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 종두에게 전화를 거는 공주의 모습도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자신을 강간하려고 한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다는게 가능할까?

그 사이에 공주가 종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건을 삽입했으면 좀 더 전개가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내용과는 별도로, 내 가족이 장애인이 됐을 때 과연 나는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반성도 들었다

동생만을 남겨 둔 채 동생 이름으로 된 새 아파트로 이사간 오빠 부부를 보면서 비인간적인 사람들이라고 욕하긴 했지만, 뇌성마비자를 평생 돌볼 의무를 지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그 가족을 비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생일이라고 케익을 사서 배부른 몸을 이끌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시누이의 모습에서 100% 착할 수 없는, 이기적인 본성을 가진, 그렇지만 또 100% 나쁘지도 못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끼는 기분이었다

영화의 주제와는 다소 벗어난 기분이 들지만 장애인 문제는 그 가족의 책임으로만 떠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짐이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 사회가 같이 책임져 줘야 할 문제 같다

음식점에 들어 온 공주와 종두를 위해 가장 편한 자리를 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이런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오아시스'는 일단 좋은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장애인과 지능이 약간 모자란 남자의 사랑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다만 느끼게 해 주는 감독의 역량이 상당하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평면적이고, 물 흐르듯 단조롭다

다음 영화에서는 감독이 좀 더 입체적인 전개와 화면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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