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권영필 외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책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띈 책.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읽게 됐다.
생각만큼 아주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아프라시압 벽화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고구려와 서역의 관계라는 새로운 분야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스페셜>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우즈베키스탄 유물전에서는 벽화에 나온 조우관을 쓴 두 명의 남자를 당연히 고구려인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역사스페셜>에서는 당시 수&당과 대립하던 연개소문이 보낸 사신이라고 단정지어 방송했는데, 이 책의 여러 필자들에 의하면 고구려인인지 발해인인지 신라인인지 불분명하고 심지어 어떤 필자는 한반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역시 방송은 너무나 자극적이인 매체다.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가, 고구려인이라고 따로 표기된 게 아니고 관 모양과 칼, 복식 등으로 추정한 것이니 당연히 여러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벽화 아래 새겨진 명문에서 당시 재위하던 왕 이름이 나와 대략적으로 7세기 후반 정도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설명이 있어 그런가 보다 하고 보니까 그렇지 워낙 박락이 심해 대충 보면 뭔 그림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 필자 말로는 새 깃털을 관에 꽂는 풍습은 당시 유목민들에게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현지 학자들은 고대 한반도인이라고 추정하고, 우리 학계에서는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새롭게 발견한 인물은 바로 고선지다.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저자의 편파적인 견해에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에 패배한 것을 두고 유능한 고선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밑의 부장이 문제가 있었고 또 용병 무리인 케루크부중이 배반해서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책임은 당연히 대장이 지는 것이고 자꾸 사료의 이면을 읽는다, 당시 정황을 추론해 보면 이랬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신뢰할 만한 역사적 기록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고선지가 고구려 유민임이 분명하고 그 덕분에 후세 한국인들의 조명을 받아 발굴된 점은 무척 다행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미화시키거나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서에 고선지가 탐욕스러워 재물을 긁어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려 유민이다 보니 부하 장수들을 재물로 통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느니, 중국적인 시각에서 본 악의적인 평가라느니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건 다른 인물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 보인다.
당나라가 이민족에게도 기회를 준 것은 세계제국으로서의 큰 포용력을 가졌다는 것도 충분히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그렇다고 해서 민족적 차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탈라스 전투의 의의가 종이의 서전이라는 정수일씨의 글도 흥미롭게 봤다.
비단길, 도자기길 못지 않게 이 종이길도 중요하다고 학계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는데 역사란 있는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저자는 신라에서 최초 목판 인쇄술이 발명됐다고 하는데,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최초의 인쇄술 발명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조들의 업적과 역사를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현재의 자부심과 연결시키는 건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어찌 됐든 고구려를 한반도 넘어 서역의 관점에서 본 점은 무척 흥미로웠고 동북아 역사재단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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