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5
심재우 외 지음 / 돌베개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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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기대했던 책인데 내용은 평이한 편.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사료의 한계 때문에 연구를 많이 한다 해도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은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신선한 시도이기는 하다.

왕비를 단지 왕실 암투의 주인공으로만 보지 않고 역사적, 정치적 존재로써 바라본 점은 신선하다.
학문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저자들의 서문에 밝힌 바대로, 한중일 삼국의 왕비를 비교한다든지 아니면 유럽 사회의 왕비의 역할과 비교 분석하는 시도가 있어도 참 좋을 것 같다.

대비의 수렴청정이 외척의 발호라는 부작용을 가져왔으나, 대신 어린 왕이 즉위해도 왕권을 뺏기지 않고 왕조가 무사히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평가받을 만하다.
조선 초기의 수렴청정인 경우, 이를테면 정희왕후와 문정왕후는 성종과 명종이 20세가 될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는 20세를 성인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종이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어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반면 숙종이 14세에 즉위하여 대비의 수렴청정 없이 바로 친정을 했기 때문에 후기의 대비들은, 즉 정순왕후와 순원왕후는 순조와 헌종이 14세가 될 때 그 고례에 따라 물러났다고 한다.
성인의 기준이 낮아진 셈이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이 책에서는 궁녀가 아닌, 숙의로 입궁한 것으로 나온다.
드라마 등에서는 가세가 몰락하여 양반가 자손이면서 궁녀로 입궁한 것으로 그려지는데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다.
궁녀는 대체적으로 공노비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후궁으로 입궁한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명문가의 여식인 정현왕후와 같이 입궁했다는 점으로 봐도 그렇다.
삼간택에 뽑히면 왕비로 간택되지 않은 나머지 두 명의 여인은 평생 수절해야 한다고 알려졌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 예로 알려진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경우, 왕이 특별히 마음에 들어해 후궁으로 들인 특별한 경우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간택에 참여했다고 해서 혼사를 못하게 했다면 간택 단자를 대부분 내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가 아니라 간택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종성의 책에 따르면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숙종의 마음이 총애가 사라져 이현궁으로 내쳐졌다고 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대궐을 나가 산 게 아니고 국왕의 사후 궁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미리 집과 전답을 하사한 것으로 나온다.
오히려 숙종은 연잉궁을 총애하여 혼인을 한 후에도 내보내지 않고 20세가 될 때까지 궁에서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숙빈 최씨는 왕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해 병구완으로 잠깐 대궐을 나가더라도 문안을 드리기 위해 곧 돌아왔다고 하니, 아무래도 숙종의 총애가 식었네 어쩌네 하는 건 김종성씨의 상상력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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