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행기록화 - 옛 그림으로 읽는 한중관계사
정은주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미술 분야, 사행기록화.
예술적 관점 보다는 역사적 의의에 더 중점을 둔 책.
사행기록화는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아서 호기심에 읽게 됐는데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상당히 학술적이지만 대신 고증과 설명이 상세하여 조선 시대 사행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명나라가 세워진 후 홍무제는 3년 1공을 주장했으나 조선에서는 예의를 내세워 1년 3공을 주장하여 조선을 우대하는 뜻에서 여러 차례 사은사를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인물들도 자주 사행에 참가했는데 의주와 산해관을 거친 육로보다 산동 지방의 등주를 통해 가는 해로가 훨씬 위험하여 사행 도중 배가 난파되어 사망한 이들도 있었을 만큼 위험한 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정몽주가 사행길에 올라 조난당했다는 얘기도 읽었던 생각이 난다.
그동안 알고 있기로는 이방원이 왕자 시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던 중 황자로 있던 영락제를 만나 번왕으로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그의 특출함을 간파했다고 하는데, 책에서는 그 주인공이 이방원이 아니라 조준으로 되어 있다.
그 고사는 조선 후기에 과거 시제로 제시될 만큼 매우 유명했다고 하니 내가 본 책이 잘못된 기록이었던 모양이다.

 

명나라가 후금에게 쫓기어 만주를 차단당하자 명은 조선이 후금과 내통할 것을 우려하여 안전한 육로 대신 위험한 바닷길을 고집해서 명청 교체기에 해로를 이용하다가 난파당한 사신들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명에 대한 사대를 지킨 조선의 소중화주의자들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로 보이나, 당시로서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의리를 지킨 훌륭한 도덕주의자들로 봐야 할까?
그러나 18세기부터는 청이 명의 문화를 계승하고 국력이 커지면서 조선에서도 연행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인식되어 북학이 유행할 만큼 세계관이 변했다고 한다.

서양인 선교사들이 유입되어 천주교 성당의 서양화나 천체 관측 등이 조선 사신들에게 자극을 주어 서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600 페이지가 넘지만, 150여 페이지는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이라 실제로는 450여 페이지 정도 돼서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은 도판이 작아서 본문에 나온 설명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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