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 - 가람역사 30 조선사회사 총서 1
신명호 지음 / 가람기획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 역시 출판될 당시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다시 한 번 빌려 읽었다


그 때 용의 눈물이 인기 있을 때라 한참 조선 왕 시리즈가 나왔었다


일반인이 쓴 에세이 형식의 흥미 중심이 아니라 전공자가 꼼꼼하게 기술했고 (뒷편에는 본인의 논문도 실었다) 실록을 바탕으로 한 거라 신뢰감이 생긴다


 


절대 권력자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과로와 스트레스로 단명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왕들의 수명이 무척 짧았다


영조나 숙종 같은 경우만 환갑을 지냈을 뿐, 다들 40대에 일찍 죽었다


최고의 의료진이 돌보는 국왕의 수명이 이 정도인데, 일반인들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52년간 재위한 영조는 82세로 천수를 다 누렸는데, 식사 시간을 반드시 지켰다고 한다


신하들을 장악하고 있던 영조는 절대 쉽게 결제를 안 해 주고 토론을 벌일 때가 많아 종종 저녁 시간을 넘겼는데, 웃긴 건 자신은 시간만 되면 칼같이 식사를 하고 온다는 거다


당연히 신하들은 대전에서 대기


저녁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온 왕과 다시 격론이 벌어지면 배고프고 지친 신하들이 지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이 같은 건강 습관이 영조를 장수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고 한다


 


조선 왕들 중 가장 금슬이 좋았던 커플은 세종 대왕


아버지 태종에 의해 처가가 몰살을 당하고 왕비의 어머니는 제주도 관노로 유배 갈 정도로 몰락해 한이 많았을 소헌 왕후를 무척 사랑해 둘 사이에는 8남 2녀라는 굉장한 자식을 낳는다


그렇다고 세종이 한 여자만 바라보는 건 아니었다


성군답게 (?) 궁의 많은 여자들에게도 골고루 사랑을 나눠 주어 세종은 조선 국왕 중 가장 많은 자식을 둔다


소헌 왕후가 말년에 낳은 막내 아들 영응대군의 육아를 후궁인 신빈 김씨에게 맡긴 걸 보면, 왕비와 후궁 사이의 관계도 아주 좋았다고 생각된다


친정이 몰살되면서 한이 많았을 소헌 왕후가 자식도 많이 낳고, 첩들과도 잘 지낸 걸 보면 세종이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 탓도 있겠지만, 그녀 자신이 무척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었을 것 같다


 


후궁을 한 명도 안 둔 왕은 숙종의 아버지 현종이다


현종 시대에는 예송 논쟁 외에는 별 사건이 없어 사극에 등장을 안 해서인지 좀 낯선 인물이다


그는 명성 왕후에게 1남 3녀를 낳았을 뿐 다른 후궁을 얻지 않았다


바람끼가 없고 점잖은 타입이었을 게 분명하다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고 해도, 왕이라는 신분상 한 여자만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히 본인 성격 탓일 거다


후궁 때문에 속끓일 일 없는 명성 왕후는 아들도 턱 하니 낳았으니 아마 제일 행복한 왕비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대비들에 비하면 빨리 죽는다 그것도 아들 병 낫게 해달라고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하다가...)


 


27명의 조선 국왕들 중 제일 불쌍한 사람은 광해군이다


최근 들어 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폐위된 후 무려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라는 척박한 유배지에서도 18년을 버틴 걸 보면, 폐위되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오래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병약한 연산군은 폐위되자 마자 적응 못하고 몇 개월 만에 바로 죽어 버렸으니까


빨리 죽는 게 속 편할 뻔 했다


왕으로 있다가 서인으로 떨어지는, 조선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은 광해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실록에 보면 유배지에 배속된 관리인들마저 (신분이 최하층민인데도) 그를 비웃고 함부로 대했다고 하는데, 그 모든 수모를 감내해 내고 긴 수명을 유지한 걸 보면, 그는 마인드 컨트롤의 대가였을 것 같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 순간은 인목 대비에게 폐위 교서를 받을 때였을 것이다


철천지 원수였던 그녀에게 자신의 죄목을 조목조목 들어야 했을 때, 그 기분이 어땠을까?


사실 광해군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책임이 상당 부분 그녀에게 있다


10여세나 어린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것만도 부담스러운데, 시집 오자마자 떡하니 적자 아들을 낳아 주니, 서자 출신 컴플렉스를 갖고 있을 광해군으로서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황 판단 못하고 아들을 질투하던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 활약상이 뛰어나 신망을 얻는 터라) 광해군의 지위를 흔들다 세자를 바꾸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바람에 늦게 본 귀한 적자 영창대군만 권력싸움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말았다


 


왕비가 적자를 생산하지 못해 후계자 문제로 복잡해질 때가 많았는데, 폐위된 불행한 두 왕비들은 (연산군과 광해군비) 아들도 셋씩이나 잘 낳았다


자식이 없었으면 그나마 자기선에서 끝났을텐데, 자식들마저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두 왕비 모두 인심을 잃은 남편들에 비하면 좋은 평가를 받던 후덕한 여인들이라 더욱 그녀들의 삶이 비극적인 것 같다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왕을 들자면 역시 숙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장래가 걱정되고 밉다 하더라도 아들, 그것도 세자를 낳아 준 여자에게 사약을 내릴 수 있을까?


더구나 그녀는 기존의 왕비를 폐비시키고 국모의 자리로 올려 줄 만큼 열렬하게 사랑했던 여자가 아닌가?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인현왕후를 폐위시킨 것이나, 그녀를 다시 복위시키고 장희빈을 사사한 걸 보면 숙종은 대단히 변덕스럽고 잔인했던 것 같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영조 역시 자식을 뒤주 속에 가둬 죽였을 것이다


하긴 성종 역시 아들, 그것도 세자를 낳아 준 윤씨를 폐위시키고 사약까지 내렸으니 역시 보통 잔인한 성격이 아니다


연산군의 피 속에는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성종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 잔인한 왕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


그렇게 따지면 경빈 박씨와 복성군을 죽인 중종도 마찬가지긴 하다


더구나 복성군은 비록 서자이지만 큰 아들인데...


 


조선 국왕들의 일상 생활과 이면을 살펴 본다는 건 무척 매력적인 일이다


현재와 가까이 있고, 문화적으로도 훌륭한 국가를 운영했기 때문에 사료도 풍부해 그들의 일상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생동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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