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전작보다는 좀 떨어지는 책이다
사랑, 혹은 남녀 관계에 대한 그의 뛰어난 성찰이 돋보이는 두 권의 책들보다는 실망스럽다
그래도 평작은 된다
작가의 필력이 워낙 상당하니까
그는 여행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들을 유명한 사람들의 기행문과 섞어서 글을 전개키신다
그래서 다소 산만한 면도 있다
아무래도 철학을 공부해서인지 위인들의 저술에 관심이 많고 또 그들을 신뢰하는 것 같다

그는 특히 플로베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 보통의 삶의 철학 산책" 에서도 "보봐리 부인" 에 관해서 긴 글을 썼는데 여기서도 플로베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플로베르는 특이하게도 프랑스 사회를 혐오하고 이집트를 동경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이집트도 동양으로  불린다
그러니 우리나라나 일본을 극동이라 하겠지
어쨌든 미개하다고 알려진 19세기의 이집트를 동경해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평생을 두고 그리워 한다
플로베르가 혐오하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은 부르주아의 위선이었다
있는 척, 고상한 척 하는 허위 의식에 염증을 내면서 차라리 이집트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의 순박함을 편하게 느꼈다
정작 본인도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아 부르주아 계급에 합류했으면서도 말이다

드 보통은 특정한 문화권이 마음에 드는 이유를 자신의 기질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동의하는 바다
이국적인 정서가 호기심을 끌고 특정 문화권의 가치 체계와 내 기질과 일치하다고 느끼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더욱 염증을 느끼면서 타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커져 갈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은 얻기 어려울 것 같다
경쟁적인 한국 사회가 싫다고 호주나 미국 등지로 이민간 사람들이 거기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혹시 60년대처럼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릴 때라면 몰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엇비슷 할 것 같다
말하자면 우리는 타 문화권에 대한 환상이 강하다는 얘기다
플루베르 역시 이집트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면 프랑스 못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에 부딪칠 것이다
여행과 거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자연이 주는 숭고미를 여행의 의미 중 하나로 꼽는다
이 번역된 단어가 올바른 느낌을 전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랜드 케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등의 대자연 앞에 서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찬양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단순히 볼거리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른바 "관광" 이라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울 때는 오히려 고속도로의 휴게소 같은 쓸쓸한 장소로 떠나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에 동의한다
원래 군중 속의 고독 같은 상대적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나 뿐만 아니라 타인도 혼자 있다면 내가 겪는 외로움은 평범한 것이 된다
그렇지만 다들 즐겁게 어울리는데 나만 소외되어 있다면 나는 훨씬 더 큰 외로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모텔이나 주유소 그림 등을 통해 보여 주는 이러한 충고는 참으로 적절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순간 현대인의 고독 같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는데, 남들도 다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우리는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단지 사진 속에 풍경을 가두는 것만으로는 자연을 보고 느낀 감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러스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로 묘사하라고 권한다
그는 데생이 외국어나 수학처럼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고 누구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직접 묘사하면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관찰력도 향상될 수 밖에 없다
즉 사진을 찍는 것은 자연을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지만 (셔터만 누르면 되니까), 직접 그린다고 생각하면 풀잎에 맺힌 이슬 방울까지도 주의깊게 보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것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좋은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겠지만 데생하면서 자연을 보다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 특징을 잡아 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나는 이미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자신있는 것은 글로 묘사하는 것이다
여지껏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저 감탄할 줄 밖에 몰랐는데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해 보도록 애쓰겠다
기행문이란 단순히 여정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여행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자세히 서술하는 과정임을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고흐가 살았던 프로방스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팡세는 풍경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그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는 감탄한다고 비웃었지만, 화가란 자연을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저자는 반론을 편다
즉 화가는 자연을 똑같이 묘사할 필요가 없다
그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또 그 감정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흐일 것이다
(현대 추상 미술은 제쳐 두고)
고흐는 프로방스의 자연을 그릴 때 강렬한 원색을 썼다
말하자면 그는 프로방스의 밀밭이나 교회 등을 볼 때 격렬하고 화려한 감정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흐의 그림을 통해 프로방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호기심일 것이다
훔볼트는 아메리카 적도 지역을 여행한 후 자연 생태계 보고서를 쓴 사람이다
저자는 자신의 마드리드 여행과 훔볼트의 아메리카 여행을 비교하면서 호기심이 여행의 질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설명한다
훔볼트는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자연 환경과 인간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끝없는 관심을 표한다
저자는 마드리드의 문화에 대해 별 흥미가 없다
그의 스페인 여행이 지루한 것은 당연하다
반면 훔볼트는 여행지의 모든 풍경에 대한 관심이 왕성하다
그가 흥분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것도 당연하다
저자는 훔볼트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마드리드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여행을 시작한다
예술품처럼 여행도 심미안이 있어야 진짜 맛을 알게 되는 모양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내용은 여행에 대한 기대 부분이었다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역시 드 보통이군,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여행지로 떠난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환경은 며칠만 머물러도 금방 식상해진다
우리의 감각은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적응한다고 해야 하나?
기대감이 사라지면 일상의 불편함을 더욱 분명히 느끼게 된다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지루하고 식상하긴 하지만, 적응된 곳이다
여행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한 곳이다
여행지의 기대감이 사라지면, 즉 실체를 접하고 나면 결국 집 떠나온 불편함만 남을 것이다
익숙한 곳으로의 회귀라고 할까?

마지막으로 "자기 방으로의 여행" 에 대해 언급하겠다
어찌 보면 말장난 같기도 한데, 자신의 주변 환경을 새로운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것들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익숙한 것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끔 새로운 시각으로 주위를 둘러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얼마나 호기심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활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또 워낙 바빠서 띄엄띄엄 읽어 산만했다
그렇지만 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제목 그대로 여행에 대한 새 기술을 습득한 기분이다
풍경을 그림이나 글로 묘사하라던가,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으면 다르게 보인다는 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가까운 곳을 여행하더라도 반드시 기행문, 혹은 감상문을 쓰겠다
그래야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