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희망 - 세계문화예술기행 5
김명인 지음 / 학고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역시 작가가 쓰는 여행기는 뭔가 다르다
여정이나 싸구려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반성이 들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스페인 여행기와 한 씨리즈인데 그것보다 더 괜찮은 것 같다
스페인 기행기는 여정이 거의 없어 여행기라기 보다는 감상문 같았는데, 이번 독일 여행기는 여정도 자세히 나열하고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도 많아 더 좋았다
아무래도 저자에게 독일은 특별한 곳인 것 같다
스페인 여행기를 읽을 때는 그저 스페인이라는 독특한 나라를 가서 느낀 점만 쓴 것 같은데, 독일 여행기를 읽으면 저자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이 밀려 온다
한 때 학생운동에 가담해 사회주의를 꿈꾸던 청년이, 수년 후 망해 버린 사회주의의 탄생지에 갔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을지 알 만 하다
인생에 대한 반추라고 할까?
이루지 못한 젊은 시절의 열정에 대한 한탄이라고 할까?

나는 독일의 뮌헨에 갔었는데 어이없게도 숙소에만 머물렀다
그 전날 야간 열차를 타고 오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시원한 호텔에서 꼼짝 달싹도 안 하고 잠자고 먹기만 했다
독일에 도착했을 때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 분위기에 놀랬다
뮌헨은 원래 독일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도시라고 한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 에어컨이 없다는 얘기 듣고 깜짝 놀래기도 했다
호텔 방은 비교적 크고 깨끗했다
주유소 안의 편의점 가서 샌드위치 사 먹던 기억이 난다
뮌헨에 있는 큰 맥주집 겸 양조장에 가기도 했다
흑맥주와 구운 소세지를 시켰는데 사람이 어마어마 하게 많았다
독일 사람들은 신이 나서 춤추고 난리도 아닌데 난 그저 소외감만 들었다
즐겁게 논다는 건 바로 저런 거구나, 그런 생각만 했다

저자는 스페인 기행기처럼 아들을 데리고 간다
나중에는 아내도 합류해서 자동차 여행으로 다닌다
자동차를 타고 가니까 교통이 편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자는 닫힌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하긴 버스 타고 길도 물어 가면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일 것이다
의외로 유럽의 도시는 작아서 길 찾기가 쉽다
런던 같은 경우는 관광지가 한 곳에 모여 있어 걸어 다닐 수도 있다
지하철 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역시 뭘 좀 알아야 깊이 있는 여행이 되는 것 같다
독일 학문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저 무감각하게 박물관이나 건축물을 볼 것이다
자신의 전공 탓인지 저자는 작은 기념물에도 크게 감동한다
하긴 모든 사물이 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의 차이지만 말이다
베를린의 박물관은 가 볼 생각을 못했는데 거기도 만만치 않은 예술품이 있다고 한다
이집트나 그리스 등지에서 건축물을 떼어 온 것을 두고 저자는 안타까워 한다
건축물이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면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강대국의 문화재 약탈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잘 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뭐라고 평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한 해에 한 번씩 한 나라만 집중적으로 돌아 다녀도 좋을 것 같다

독일은 분권주의 나라라고 한다
중앙 집권화가 늦어 근대 국가 탄생도 늦었지만, 모든 도시들이 각각의 특색을 지닌 채 고르게 발전해서 오늘날 지방주의가 잘 발달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다 잘 꾸며져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관 등도 풍부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서울로만 집중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부럽다

솔직히 독일은 별 감흥이 없는 나라였는데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 보고 싶은 곳이 참 많았다
저자의 자세한 여정과 설명, 또 풍부한 감상 탓이다
독일 문학이나 사상이 인류 문화에 기여한 바가 참 크다
전혜린이 사랑한 도시가 바로 뮌헨인데, 이국적 정서가 그녀에게 딱 어울렸던 모양이다
낯선 곳에서 향수병을 앓지 않고 오히려 그 곳을 사랑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유학 생활이 되겠지

책을 더 많이 읽고 예술과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류 문화의 보고들을 돌아보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어느새 독서처럼 여행도 나의 중요한 취미가 되버렸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돈이 좀 없어도 책과 여행을 벗 삼으면 외롭지 않게 살 것 같다
나도 다음에는 꼭 여행기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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