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 자유교육의 선구자 프란시스코 페레 평전 프로그래시브 에듀케이션 클래식 2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왜 이 책 제목을 듣고 김혜자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했을까?
왠 착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김혜자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운동 하는 걸 보고 이상하게 연관을 시켰던 것 같다
간혹 착각은 우리를 황당하게 만든다

교사인 엄마 말에 따르면 요즘 교육계에서는 이 책 제목이 유행이라고 한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페레가 한 말인지 박홍규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체벌 논란이 한창인 요즘 정답을 주는 말 같다
체벌은 폭력 문화를 낳는다
인권이 발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될수록, 또 박홍규가 꿈꾸는 아나키즘적인 세상이 될수록 모든 종류의 폭력과 억압이 사라지리라 믿는다
체벌이 교육적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아이를 어른이 원하는 대로 빚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된다
스티븐 핀커의 "빈 서판" 에서도 읽은 말이지만, 나는 본성을 더 믿는 편이다
과연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될까?
결국 근대의 교육이란 지배와 복종을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학교는 규율을 통해 학생들을 통제하고 근본적으로 국가와 사회, 모든 종류의 기득권과 권위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친다
또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지식 전달의 창구로 작용한다
대안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간다

페레가 주장하는 교육이란 간단히 말해 주체성을 가지고 모든 권위에 저항하여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성 양성이다
지식 전달이나 사회화는 목표가 아니다
한국 교육계를 봐도 지식 전달은 학원에서 훨씬 잘 한다
사회화도 굳이 학교에서 체험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학연이라는 인맥을 위한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랬지만 고등학교만 가면 수업 시간에 자고 학원에서 배운다
한국의 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한 중간 거점 역할 밖에 못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목적에도 부합되지 못한다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3년 동안 배울 내용을 2년 만에 끝내고 고 3 때는 수업 시간에도 문제집만 푼다
음악, 미술, 체육 같은 예체능 과목은 아예 1학년 때 다 끝내 버린다
지금도 이런 기형적인 시스템으로 학교가 운영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요즘은 학생들의 자율성이 많이 신장되고 어지간 하면 대학은 다 가니까 좀 바뀌었을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연예인이 선망 직종 1위에 오를 만큼 다양화 되었으니까

만약 내 아이라면 나는 어떤 학교로 보낼까?
대안 학교도 사실은 불안하다
주류에서 벗어난 시스템이 인정을 받으려면 주류보다 두 배는 더 훌륭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정도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쉽게 존재할까?
솔직히 페레의 교육 시스템도 신뢰감이 잘 안 간다
뭐, 지금까지 자유 학교가 유지되는 걸로 보면 지속성을 가질 정도로 견고한 것 같기는 한데, 그 성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
페레는 완전히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교재도 그저 부수적인 역할 밖에 안 하고 모든 것은 경험을 통해 체득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교사는 학생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평등한 관계다
또 학부모와 지역 사회 역시 한 표씩을 행사할 수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전권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학생과 상의하면서 교육 방향을 결정한다
과연 10여 세의 어린이들에게 이것이 가능할까?

페레의 자유 학교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어린이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 때 목표는 지적인 인간 혹은 도덕적이거나 규범적인 모범생 양성이어서는 안 된다
상벌의 폐지는 당연한 얘기다
평가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페레처럼 자유 학교 시스템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면 정말 그 애가 완전히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세상의 모든 권위에 저항하고 진정한 휴머니즘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의 본성이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의 유토피아는 불가능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살기 좋아질지 모른다

사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들이 살아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업 교육을 통해 먹고 사는데 필요한 지식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필요한 사람만 배우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12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페레가 말하는 그 "자유로운 인간상" 인지도 모른다
미적분이 사는 데 얼마나 필요할까?
국어나 영어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페레는 과학 교육을 대단히 중시한다
과학은 과거의 무지와 교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눈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방식이다
그러므로 일반 학교에서 열심히 외우는 과학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실증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가르친다
정말 이렇게만 된다면 세상이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보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점은 남아 있다
과연 이렇게 배운 아이들이 과연 경쟁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자유 학교 아이들이 기득권층에 편입할 수 있다면 이 학교는 곧 주류로 승격할 것이다
인간은 편견과 어리석음에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익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유 학교가 기득권 획득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당장 아이들들 이 곳으로 보낼 것이다
아무리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판단한다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획득에 실패한다면, 즉 생각없는 부자 대신 지각있는 노동자가 되는 것은 대부분이 거부할 것이다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유 학교가 통할 수 있을까?
구조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자유 학교는 그저 꿈으로만 존재하든가, 아니면 소외 계층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자유 학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할까?

페레는 끔찍하게도 사형당하고 만다
바스크 민족에 대한 발포를 거부한 군사 반란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언도받는다
가히 스페인의 박정희 시대라 할 만 하다
체포 한 달 만에 사형당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그 전에 자유 학교 문제로 당국에 찍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전에도 모던 스쿨의 사서가 국왕 암살을 기도해 체포된 적이 있다
그 일로 모던 스쿨은 문을 닫는다
그렇지만 페레의 자유주의 교육은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섬머 힐이 대표적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교육의 다양화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대는 탈권위주의와 다원화로 대표되는 시대다
한 가지 방법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시대 정신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도 다양한 형식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저자 박홍규는 정말 대단하다
본받고 싶은 사람이다
어쩜 이렇게 다양한 인문학적 관심을 유지하고 글을 쓰는지...
강준만 보다 한 수, 아니 몇 수 위다
글도 전체적으로 다 수준있다
자유주의 교육을 역설하는 자리에서 전교조 선생들에게 날린 한 마디
교사들의 인권을 주장하려면 학생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체벌도 폭력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참교육 운운하는 전교조 선생들도 아이들 통제하려면 체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위선과 착각이 인간의 본래 모습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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