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첸의 세계명화비밀탐사 탐사와 산책 8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르네상스 그림 설명에 슬슬 질려가던 나에게 재미를 주는 책이다
새로운 각도로 미술사에 아이콘으로 작용할만한 그림 여덟 점에 대해서 다각도의 분석을 시도했다
일단 시도 자체가 새롭고 흥미롭다
외국 사람이 쓴 책은 아무래도 우리 정서와 달라서 그런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공감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이 책은 괜찮은 편이다
작품이 주는 미술사적인 의의 뿐 아니라 외적인 가치와 발표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여덟 점의 그림만을 깊게 분석한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 미술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다

이 책의 첫 등장인물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다
피렌체의 아카데미노 미술관에 있다는데 이탈리아 갔을 때 가 볼 생각조차 안 했다
지금이라면 기를 쓰고 유명 그림이나 조각을 찾아 다닐텐데, 그 때는 워낙 무지할 때라 피렌체를 왜 가나 했었다
여행 일정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참 아쉽다
어쨌든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조각품을 제작한 미켈란젤로의 성이 부나로티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또 처음 이 조각이 제작됐을 때 성당 바깥에 세워져 왠 미치광이의 돌에 맞아 팔이 세 조각으로 부서진 일도 있었을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된 걸 보고 놀랬다
걸작들이 처음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대우받기는 어려운가 보다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고 여러 세대들에게 감동을 준 후에야 비로소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 같다
다비드상은 늘 완벽한 신체 구조의 대표로 언급되곤 하는데, 실제로는 해부학적 비례에 어긋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처음 계획은 천정에 매달아 놓을 생각이었으므로 (불안정 그 자체가 아닌가!!) 아래서 위를 올려다 보는 양식으로 제작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겨우 155cm에 불과한 미켈란젤로가 4m에 이르는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 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다비드상 제작에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메디치 가문과 교황 세력을 몰아내던 혼란의 시기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돌팔매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처럼 독재 가문에 대항하는 공화국의 승리를 빗댔다는 것이다
예술가라면 돈과 상관없이 작품에만 매달릴 것 같은데,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명성을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얘기를 읽을 때면 의사가 돈벌이에 눈이 어둡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예술도 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직업인데, 왜 예술가가 돈 버는 것에 사람들은 민감한 걸까?
명성에다 돈까지 얹혀지면 배가 아픈 시기심 때문일까?
어쨌든 평생을 가난과 싸운 고흐와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르네상스 화가들은 그림을 신분 상승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걸작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바꿔야 할 따름이다

제일 관심있던 화가는 고야였다
유명세에 비해 내가 느낀 감동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고야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역시 그냥 얻은 명성은 아닌 모양이다
고야의 유명한 "1808년 5월 3일" 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총을 맞는 흰 옷의 사내와 총을 쏘는 군인이 각각 두 개의 광원에 의해 비춰지고 있다는 식의 해설은 무척 유용했다
이런 전문적인 해설이 아니라면 절대 내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피카소나 폴락 등도 그렇지만 어떤 형식이든지 처음 시도한 사람의 창조성은 늘 감탄의 대상이 된다
이 그림에서 보여 준 구도는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재창조 되고 하나의 영감으로써 작용했다
마네만 해도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에서 이 그림의 구도를 그대로 인용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흰 셔츠와 노란 바지를 입은 희생자가 두드러져 보이면서 그 손바닥에 있는 혈흔까지 눈여겨 보게 되고, 결국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겹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눈을 가리지도 않고 아무 무기도 없는 가엾은 시민에게 총을 들이대는 프랑스 군인들의 잔혹함에 나도 치를 떨게 됐다

그런데 정말 훌륭한 것은 이 그림과 짝이 되는 "1808년 5월 2일" 이다
페르난도 7세를 프랑스 군인들로부터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왕궁을 습격한 사건을 그린 것인데, 고야는 한 사람의 영웅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민중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보통 민중의 반란은 좋은 쪽으로 미화되기 마련이고, 어떤 그림이든 사건을 주도하는 영웅들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고야는 있는 그대로 폭도의 모습으로 민중을 그린다
그림만 봐서는 프랑스 군인이 옳은지, 민중이 옳은지 분간이 안 간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 폭력 사태를 화가의 냉철한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이념에 물들지 않은 이런 구도가 마음에 든다
사실 고야는 왕실의 전속 화가였고 그림 그려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적군인 프랑스 장군의 초상화도 기꺼이 그려줬다
그가 그린 프랑스 장군의 초상은 퍽이나 인자하고 멋있어서 그 장군은 자기 조카의 초상화까지 의뢰했다고 한다
이념 지향적인 화가보다는 그림 자체로 승부하는 생각없는 천재들이 더 끌린다
인간성 나쁘고 별 노력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작품은 기가 막히게 만드는 사람이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천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고야가 전혀 의식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쨌든 피카소와 함께 스페인 최고의 화가인 고야의 그림을 꼭 보고 싶다

에두와르 마네의 올랭피아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나는 격렬한 그림보다 마네 그림처럼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이 더 끌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고흐 그림에 관심이 덜 간다
올랭피아를 보면 색깔이 선명하고 선이 아주 분명하며 평면적이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마네의 현대성을 드러내는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에서 보여지는 그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마음에 든다
저자의 설명처럼 너무 냉정하기 때문에 (화가의 감정이 전혀 삽입되지 않은 듯) 더욱 비극성이 강조된다

올랭피아가 그토록 무수한 비난을 들은 까닭은 일반적으로 그려지던 누드가 성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여신의 이미지였던 반면, 올랭피아는 매춘부였기 때문이다
마네는 흑인 하녀를 등장시켜 매춘부의 하얀 피부를 더욱 뚜렷히 대조시킨다
대놓고 몸 파는 여자의 나체를 그렸으니, 19세기 파리 시민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알 만 하다
르네상스 그림에서 흔히 등장하는 나신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평면적이고 선명한 색과 분명한 선으로 등장한 올랭피아가 얼마나 뻔뻔하게 보였을까?
더구나 유순한 개 대신 음흉한 고양이를 등장시켰으니 더욱 느낌이 안 좋았을 것이다
선구적인 그림들의 혁명성과 창조성을 제대로 평가해 줄 비평가란 이렇게 귀한 것일까?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은 아마도 모나리자일 것이다
웃을 듯 말듯 한 신비한 미소와 함께 정확히 누구를 그린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비밀에 싸인 이 그림은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재창조 되고 있다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하나의 우상이 되어 모나리자의 가치를 깍아 내리는 식의 우상파괴도 성행한다
저자는 그것도 위대한 그림에 대한 변형된 예찬이라고 본다
물론 동의하는 바다
뭐가 됐든 평가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구에 회자되고 아직도 생명력을 지닌 것이리라
모나리자를 남성으로 만들어 콧수염을 붙이거나 다리미판으로 그리는 등의 시도는 우상 파괴의 의미로 시도됐다
그런데 재밌는 건 한 마르크스주의 화가가 걸작들을 노동자도 볼 수 있도록 야간 개장을 하라고 미술관에 촉구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모나리자 그림 앞에만 몰려 들어 다른 그림은 보려고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그림을 음미할 수준이 안 됐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또 누군가의 말처럼 유명한 작품이 관객들을 미술관으로 이끌면 다른 그림도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스타 작품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기현상일 정도의 모나리자 숭배는 좀 우습기도 하다

지나친 가치 평가의 대표적인 예로 고흐 그림을 들 수 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일본의 한 기업에게 약 4천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4천만 달러라면 무려 5백억원이다
해바라기 그림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절박감도 없이 그저 재산 가치로서 소유하려 하는 일본 기업을 비판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다
뭐가 됐든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그 작품의 진짜 가치를 올려주는 일이다
지금처럼 지나치게 고평가 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모나리자 열풍처럼 결국 고흐 그림도 또 하나의 우상이 되는 게 아닌가?
"가셰 박사의 초상" 은 약 8천 달러에 팔려 "해바라기" 의 기록을 가볍게 경신했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어마어마한 그림들이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100억 가까운 돈을 처 바른 그림이 실은 가짜일 수도 있다니, 고흐가 들으면 뭐라고 할까?
평생 단 두 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인 고흐가 사후 이러한 가열 현상을 본다면 기가 막힐 것 같다
마치 네덜란드를 미치게 만든 튤립 광풍을 보는 기분이 들어 씁쓰름 하다

뭉크의 "절규" 도 기념비적인 작품인데 이번에 다시 도난당했다
아직까지 찾았다는 소리가 없는 걸로 봐서 혹시 전설로 남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하긴 모나리자도 4년 만에 되찾았으니 다시 찾긴 하겠지
개인의 체험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본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뭉크와 같은 상황이면 우울해질만 할 것 같기도 하다
뭉크는 폐결핵으로 어머니와 형제들을 잃고 누이 동생은 정신 병원에 수용됐으며 본인도 우울증과 폐병을 앓았다고 한다
더구나 북유럽의 자연 환경은 화가들의 우울한 성격 형성에 일조한다고 한다
특히 자연 환경에 개인의 내면을 투영하는 낭만주의적 감상법이 일반화 되서 뭉크처럼 우울 경향이 강한 사람은 더욱 주변을 우울하게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스크림"이나 "나홀로 집에" 등도 실은 뭉크의 "절규" 를 패러디 한 거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림 속의 남자가 외치는 절규는 무엇일까 관심이 생긴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불안감, 고통, 괴로움 등등 안으로 삭일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짖누를 것이다
원래 인생은 다 그렇게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법이다
자기만의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도 실은 그렇게 절규하고 있는 건 아닐지...

잭슨 폴록의 그림은 솔직히 별 감동이 안 온다
추상주의는 아직 나에게 무리 같다
그렇지만 그 의의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물의 이미지를 탈피해 완전히 추상적인 것으로만 작품을 완성하고 또 제작 과정이 최종 작품 못지 않게 중요시 되는 그림 형식은 가히 혁명적이다
뭐든지 처음 시작한 사람의 창조성이 평가받는 법이다
캔버스에 그림을 흘리는 식으로도 예술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 누가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여섯 살 짜리 애도 그릴 수 있는 거라고 혹평을 한다지만, 여섯 살 짜리 애도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대 미술이 완전 비구상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결과 같다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르네상스 기법이 퇴색한 것처럼, 요즘 같은 이미지의 시대에 더 이상 구상이 예전 같은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성을 표현하는 길은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되어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비구상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현대 미술의 감상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이 생긴다

피카소 역시 아직은 감동스럽지 않다
그 유명한 "게로니카" 나 "아비뇽의 처녀들" 이 가지는 의의는 알겠지만 마음으로부터 감동은 없다
큐비즘이라는 새 사조를 만들었고, 인체를 다각도에서 분해하여 그렸다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솔직히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대상이 해체되어 통일된 느낌이 없다
차라리 "세 무희" 쪽이 더 낫다
어찌 됐든 조금이라도 이미지가 남아 있어 통합된 느낌을 주는 그림이 대하기 편하다
피카소 그림에도 감동을 못하는데 잭슨 폴록을 이해하는 건 무리지, 싶다
어쨌든 90이 넘게 장수하고 당대에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가장 행복한 화가임은 분명하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그림들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접할 수 있게 되서 좋은 시간이었다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 하리라
언젠가 이 그림들을 직접 보고야 말리라는 새로운 결심이 생긴다
그와 더불어 그림에 대한 내 나름의 느낌들이 형성되어 가는 것 같아 기쁘다
이제 나도 전문가들의 천편일률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나만의 고유한 감상법을 터득해 가는 것 같다
역시 아는 것 만큼 보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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