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사생활
하영휘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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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에는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른바 하잘 것 없는 주제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연구를 하는 것 같다.

이런 미시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참 좋다.

이 책은, 황윤성의 이재난고나 무인이었던 노상추의 일기와도 비슷한 계통이다.

중앙 관직에서 멀어진, 지방 유림의 생활사를 밝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인공 조병덕은 19세기 충청도 지역의 양반으로서, 3대가 과거 급제에 실패해 몰락의 과정을 걷고 있었으나 나중에 문집을 간행할 만큼 지역에서는 학자로 존중받고 있었고 조두순이라는 당시 정승과도 연결이 되어 있고, 지역의 향반들과는 거리를 두고 노론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나 집안은 양반으로서 체면을 차리기에는 곤궁했고 청백리 행세를 하려고 해도 관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평생 빚 걱정에서 떠날 날이 없었던 사람이다.

둘째 아들은 장시 근처에서 살았는데 상민들에게 토호질을 하여 귀양가기까지 한다.

황윤성이나 노상추에 관한 책에서도 지역 양반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자세히 나오는데, 양반이 이 정도라면 (노상추는 관직까지 있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피폐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양반으로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 조병덕은 논밭을 계속 팔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곤궁해진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주변에 선물할 부채나 달력, 혹은 글을 쓸 때 필요한 육촉, 종이, 붓 등으로 일상 생활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만 양반으로 체면을 유지하려면 필수적인 일종의 위세품이었다.

그러고 보면 관직에 나가지 않으면 평생 글을 읽는 유학으로 산다는 양반의 모습이 너무 잘 나타난다.

평생 실제적인 노동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19세기라면 이양선이 출몰하고 개항을 눈앞에 두고 있을 시기인데도 여전히 유학의 가치를 붙잡고 있는 전형적인 유학자의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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