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양반의 생활세계 - 義城金氏 川前派 고문서 자료를 중심으로
문옥표,박병호,김광억,은기수,이충구 지음 / 백산서당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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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책 표지는 지루하게 생겼지만 내용은 알차다.

학자들이 쓴 책이라 어렵고 따분할 줄 알았는데 조선 후기 양반들이 갖는 특성에 대하여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늘 느끼는 거지만, 좋은 책은 문장이 훌륭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 할지라도 독자에게 전달이 잘 되는 것 같다.

안동의 명문 세족인 학봉 김성일의 의성 김씨 문중 고문서들을 이용해 17세기 양반들의 생활사를 잘 구현해 놓은 책이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외손봉사나 재산균분제, 처거제 등이 잘 시행되었는데 왜란과 호란을 겪고 나서 오히려 종법 질서가 강화되어 유학 일변도의 닫힌 사회가 된 점은 특이할만 하다.

변란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체제가 안으로 단단해진 것인가?

보통 조선 후기를 정체된 사회라 일컫고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양반들을 무능하고 수구적인 존재로 묘사하기 쉬운데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도 자신들의 권한을 잘 지켜낸 걸 보면 근대 사회에는 맞지 않을지라도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큰 역량을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도 잘 묘사되지만 단지 양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특권이 보장됐던 것은 절대 아니고, 의성 김씨 일문처럼 문중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또 지역 유지로써 기반을 다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수대에 걸쳐 기울였다.

퇴계 이황의 학파였던 의성 김씨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남인들이 정권에서 소외됨에 따라 영남 지역에서 세족으로서 권위를 지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한다.

조선 후반기로 갈수록 왠 서원들이 그렇게 많이 생겼나 했더니, 서원 건립이야 말로 대외적으로 문중이 인정받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서원 건립은 남설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제한을 했던 만큼 문중의 어른을 서원에 모시려면 주변 유림들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학봉 김성일만 해도 진주성에서 순사한 후 바로 서원에 배향된 게 아니라 문중에서 60여 년을 공을 들인 끝에 비로소 서원에 모셔질 수가 있었다.

오늘날 제사가 단지 여성들을 억압하는 기제로만 인식되고 있으나 제사야 말로 문중의 결속력을 내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의례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남자 친족 위주의 여러 관습들은 사회가 변함에 따라 점점 힘을 잃어 가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만으로 계속 고수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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