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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나> 와 비슷한 느낌?
같은 편집자의 책이라 그런가?
열 여섯 명의 과학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지적 설계의 모순을 지적하고 진화론의 타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약간은 산만하고 깊이가 얕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나는 진화론의 확신범이기 때문에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왜 여전히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는지 궁금해서 이런 류의 책을 읽게 된다.
이른바 자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 조차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여전히 창조론을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교회 부흥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미국의 유명 대학 천문학 교수라는 분이 나와서 여호수와가 팔을 들어 해를 멈추게 했다는 성경 구절이 천문학적으로 어떻게 옳은지를 설명하는 걸 듣고, 미국 교수라고 해도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 있구나 깨달은 적이 있다.
단지 개인의 권위 하나만 가지고 정설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할까?
넓게 보면 민간 요법으로 암을 이겼다든지, 어떤 의사가 알려진 것과 다른 치료법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의사이기 때문에 신뢰해야 된다는 말도 틀리다.
과학이 자연법칙을 설명하는데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수많은 동료 과학자들에게 끊임없이 검증을 해야 하고 수많은 반증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지 과학 그 자체가 갖는 권위 때문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창조론과 교회가 맹위를 떨치는 것은, 책에 나온대로 유사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인 것도 같다.
특히 이단이라 불리는, 극렬한 종교적 열정을 공유한 집단들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위안을 얻고 같은 믿음과 의식을 공유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무리짓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봐도 모여서 함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이 교회라는 집단이 사라지기는 참 어려운 일 같다.
또 사람들은 과학이 종교를 공격하고 짓밟아 버리면 도덕도 함께 붕괴될 것이라 우려한다.
지적 설계론, 혹은 창조론에 동의하는 대중의 심리 속에는 종교가 도덕을 지탱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스티븐 핑커의 지적대로 과연 종교가 도덕의 기반이 될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오히려 종교는 여전히 사람들을 편협하고 불관용으로 이끈다.
우리와 다른 타인으로 구별짓고 그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도덕적일 거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정말 교인들이 도덕적 양심을 일반인보다 더 많이 지닌 사람이라면 오늘날 거대 교회를 둘러싼 돈에 관한 잡음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핑커의 지적대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도덕적 감각이 진화하면서 우리는 고대보다 훨씬 더 자비로워졌고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육체를 잔혹하게 처벌하는 형벌도 사라졌지 않은가.
종교와 도덕의 분리야 말로 종교의 속성을 보다 정확히 보는 관점이 될 것 같다.
의식에 대한 과학적 증명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죽음으로써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을 두려워 하는 감정은 확실히 과학만 가지고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 같다.
나 역시 한 때는 죽음에 관한 해결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기독교적인 신을 의지하기도 했다.
내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내가 계속 나 자신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기독교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태어나기 전 의식이 없던 시절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 때를 모른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또 어린 시절의 내가 과연 지금의 나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다고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는 바로 이 순간, 숨쉬고 생각하는 지금만이 온전히 나로써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사람은 과연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그 사람은 과거의 자신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공포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잠들어 있을 때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잠깐 동안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 이른다.
단지 깨어날 거라 예상하기 때문에 잠드는 것이 두렵지 않을 뿐, 그 상태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잠드는 그 순간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시간이 흘러 종교관이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무신론자이고 종교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과학이 진보한다고 해도 여전히 인간은 사회적 울타리와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종교를 버리지 못할 것이므로 불필요한 논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히 과학의 진보를 방해하는 지적설계론을 공교육에 도입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일축해야 한다.
그야말로 중세로의 퇴보가 아닌가?
확실히 종교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힘이 좀 더 약화될 필요는 있다.